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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독자

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제5편)

* 나는 중독자 *



<하나 : 쇼핑 중독>



박영희 씨는 오늘도 홈쇼핑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봅니다. 문득 침대가 눈에 띄었습니다. ‘침대?’ 하다가 화면에 적힌 ARS 번호를 누릅니다. 그때 딸애의 방문이 열리면서 컵을 들고 나옵니다. 아마도 주스 같은 음료수를 마시려 가는가 봅니다.

순간 박영희 씨는 휴대폰을 재빨리 감춥니다. 그 모습은 마치 소매치기가 남의 포켓에 집어넣었다가 자기 호주머니로 집어넣는 것보다 더 빠릅니다. 하지만 청출어람(?)이랄까, 딸의 눈은 셜록 홈즈보다 더 빨라 이미 엄마의 휴대폰을 본 뒤였습니다.


"엄마, 또 저질렀지? 이번엔 뭐야?"

"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거짓말 마 휴대폰 이리 줘 봐" 하는 말과 동시에 딸의 손에 휴대폰이 들어갔습니다. 그 손길에 고수의 향기가 풍깁니다. 워낙 많이 겪은 뒤 얻은 엉뚱한 학습효과라 할까요.


"아휴 내 못 살아."

하는 말 뒤에 딸은 TV 쪽으로 눈을 돌립니다. 거기에는 아직도 침대 선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번엔 뭐야, 침대잖아! 아니 침대 필요한 방이 어디 있다고 또 침대를 구입해!"

"네 침대야."

"내 침대가 왜 필요한데? 석 달 전에 새것 샀잖아."

"머리맡 무늬도 좋고 또 크고…"

"어휴, 내가 우리 엄마 땜에 못 산다. 커튼 갈았다가 한 달도 안 돼 바꾸고, 멀쩡한 전기밥솥을 다시 들이지 않나, 아파트에 분재를 어떻게 키울 거라고 백만 원이나 들었고… 어휴, 내 못 산다, 못 살아. 쇼핑 중독인 울엄마 땜에 제 명대로 못 살 끼다."




<둘 : 니코틴 중독>



김철수 씨는 사내 게시판에 오른 어느 여직원의 제안을 보고 열이 받쳤습니다. 대뜸 그의 입에선 욕이 튀어나왔습니다.

"쓰벌! 건물 안에서 피울 수 없다 해 밖에서 피우기로 하잖아." 하고는 잠시 주위를 둘러봅니다. 마침 점심때라 사무실엔 아무도 없습니다.

"머어? 회사에선 안이든 밖이든 담배를 피우지 않기로 하자구. 그럼 어디서 피우란 말이야!!"

열불이 쉬 가라앉지 않는 듯 씩씩대다가 다시 혼잣말을 합니다.


"너거가 내 담배 사는데 한 푼 보태준 적 있어? 나 같은 애연가가 있어 세금 많이 내서 너거가 복지 누리는 건 생각 안 해."

휴지통에 “캭!” 하고 가래침을 뱉습니다. 휴지통에 꼭 휴지만 들어가는 게 아니잖습니까. 모기장에 모기만 들어가는 게 아니듯이.

“니기미, 담배 피우는 사람을 완전 범죄자 취급하잖아. 작년에는 인사고과에 반영한다고 해 가장 나쁜 고가를 받았고… 또 올핸 해외여행 보너스도 양보해야 했고… 그 정도면 됐잖아. 나 같은 애사, 애국자가 어디 있다고!”


철수 씨의 씩씩거리는 소리가 하늘에까지 올라갔다가 메아리 되어 내려올 정도로 요란합니다. 이제 점심 끝날 시간이 다가옵니다. 여직원들이 올 때가 다 돼 옵니다. 철수 씨의 '홀로왕국'도 문을 닫아야 합니다. 철수 씨는 담뱃갑 오르는 일보다 담배 피우는 공간이 줄어드는 게 너무 아쉽고 열불 납니다. 전에는 하루에 두 갑 반 피웠는데, 요즘 한 갑으로 줄였으니 나름 굉장한 억제력 아닌가요? 그런 마음을 왜 다들 몰라 주는지...



<셋 : 휴대폰 중독>



몇 년 전 가을, 중남미 여행 중 나흘간 와이파이 잘 터지지 않는 지역에 가 있었습니다. 토요일, 일요일은 괜찮았으나 월요일과 화요일이 문제였습니다. 왜냐면 글 배달을 해야 하니까요.

6시(우리나라 시각)가 다가오면서 글 기다리는 사람 별로 없으련만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안절부절못했습니다. 올릴 시 배달 자료는 휴대폰의 노트에 저장해 갔기에 복사해서 올리면 될 터. 문제는 와이파이였습니다. 와이파이가 안 되면 올릴 도리가 없었으니까요.


여든 명 가까이 글벗에게 보내야 하는 카톡은 느리지만 배달되니 걱정을 덜었으나, 밴드는 꼭 와이파이가 되는 곳이어야 했습니다. 휴대폰이 낡아선지, 설정을 잘못해선지, 워낙 출력이 약해선지 “와이파이가 연결되었습니다.” 하는 글자가 떴다 싶으면 이내,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하는 메시지가 뜨니 환장할 노릇이었습니다.

시차가 우리나라보다 한 시간(정확히는 23시간) 늦는 곳이라 제때 보내려면 한 시간 먼저 일어나야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은 와이파이 잘 터지는 곳 탐색. 그 모습을 누군가 보았으면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헤매는 킬로만자로의 표범이라 했을까요?

그때부터 저는 진짜 똥 마려운 강아지가 되었습니다. 방보다는 호텔 카운터가 좀 더 잘 터지리라 여겨 거기를 왔다 갔다 하니 그곳 까무잡잡한 로비 담당 아가씨가 신기한 듯 쳐다봅니다. 미칠 지경이었다가 아니라 정말 미치는 것 같았습니다. 만약 그때 첫 밴드에 올린 글에 ‘완료’란 메시지가 뜨지 않았으면 … 어찌 됐을까요.




헌데 다음이 또 문제였습니다. 밴드 여러 곳에 글 올려본 이들은 알 겁니다. 한 곳에 올린 글을 다른 글에 올리려면 ‘다른 밴드에 올리기’를 선택하면 열 개든 스무 개든 1~2초 만에 올려진다는 사실을. 아니었습니다. 쉬운 게 아니었습니다. 똑같은 현상의 반복이었습니다. “와이파이가 연결되었습니다.”에 이어 이내, “연결이 끊어졌습니다.”로.

연결과 끊김이 3초 이내로 바뀌는 그 순간을 노림은 얼룩말을 사냥하는 사자의 노림이라 할까요. 찰나를 잡아야 한다는 것. 그 찰나는 쉬 잡기 힘들다는 것. 그래도 저는 의지의 한국인. 마침내 붙잡았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무려 40분이나 흘렀고... 그걸로 끝인 줄 알았는데... 밴드에 올린 이들의 댓글을 보려 하면 연결 안 되고, 연결되었다 싶으면 답글을 못 쓰고…


곁에 있던 아는 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선생님, 뭐 그렇게 열심히 해요?”

차마 진실을 말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리 말할 수밖에.

“꼭 필요하고 중요한 글 올리려니 잘 안 되네요.”

보는 사람 별로 없는, 하루 이틀 안 올려도 항의할 사람 하나 없는, 댓글 달지 않아도 뭐라 하지 않건만 왜 저는 똥 마려운 강아지가 됐을까요? 어느새 저는 박영희 씨와 김철수 씨 같은 사람이 된 게 아닐까요? 그녀가 쇼핑 아니면 살 수 없듯이, 그가 담배 없이는 살 수 없듯이.




<넷 : 나는 SNS 중독>



저는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는 곳에, 아니 SNS가 없는 곳에선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인간이 된 건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저도 중독자입니다. 그녀가 쇼핑에 중독되듯이, 그가 담배에 중독되듯이 나는 SNS에 중독되었습니다.

쇼핑 중독자와 담배 중독자는 스스로의 의지로 언제든 끊을 수 있다고, 그래서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끊을 수 있어!”라고 큰소리 뻥뻥 칩니다. 허나 안 된다는 걸 다른 사람들은 다 압니다. 병원에 가 치료를 받거나 상담을 받아야 고칠 수 있다는 걸.

저도 그렇습니다. 언제든지 SNS를 끊을 수 있다고 속으로 다짐했는데… 기억력이 너무 나빠져 치매 예방하려고 글 쓴다고 했는데... 산골생활 못하는 분들에게 대리체험하라고 글 쓴다고 했는데... 댓글 수와 상관없이 오직 읽어만 줄 사람을 위해 글 쓴다고 했는데...


중단할 수 있을까요?

SNS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건 아닐까요?

간들 치료가 가능할까요?


*. 셋째 사진은 [중앙일보](2017.11.08.)에서, 넷째는 [동아일보](2012.06.02)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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