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제4편)
'평화밸브'의 김평화 사장은 참 괴짜입니다. 깡촌에서 여덟 남매의 일곱째로 태어나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거라곤 알몸뚱이 하나뿐. 대장간 조수로 들어가 배운 기술로 도끼, 호미, 삽 등의 농기구를 만들다가 정밀공구로까지 사업을 확장해, 이제는 제법 어엿한 중견기업까지 되었으니 특별한 점이 없다면 더 이상하겠지요.
우선 지독한 구두쇠입니다. 얼마나 아끼는지 시시콜콜 다 못 꺼내지만 한 가지만 예를 들면 사장실의 집기류는 재활용센터로나 보내야 할 정도로 낡았습니다. 그런데 이 구두쇠가 전혀 예상 못하는 곳에는 돈을 팍팍 씁니다. 이렇게 일관성이 없으니 주변 사람들은 갈피를 못 잡아 어떻게 할지 망설일 때가 한두 번 아닙니다.
사훈(社訓)에서도 괴팍한 점이 드러납니다. ‘사랑 자유 풍요를 지향하는 ○○그룹’, ‘정직 봉사 열정을 지닌 사람이 되자’, ‘인화와 신용과 의리로 뭉친 우리’ 등의 좋은 사훈이 많건만, 이 회사 사훈은 ‘이기적인 사람이 되자’입니다.
다른 멋진 말을 두고 하필 이기적이라뇨. ‘이기적’이란 말은 ‘자신의 이익만 꾀한다’는 뜻이니 절대로 좋은 의미로 해석할 수 없는 낱말 아닙니까? 사원들이 사훈을 바꾸자고 했건만, 김 사장은 오히려 정문에 더욱 크게 이 문구를 붙였습니다.
"이기적인 사람이 되자."
재작년 가을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생산직 사원 한 사람이 업무 중에 심하게 다치는 사고가 났습니다. 사고 내용을 알아보니 그 사원이 생산 공정 과정을 점검하던 그때 이층 난간에 기대 있던 공업용 청소기가 뭔지 모를 흔들림에 넘어지면서 아래로 떨어졌답니다.
그대로 두면 바로 자기 앞의 측정 계기를 망가뜨리게 될 즈음 그가 순간적으로 몸을 날려 막았답니다. 그는 그 기계가 한 달 전에 들어왔으며, 억대에 이르는 비싼 물건임을 알았고, 그러니 담당자로서 본능적으로 몸을 날렸다고 봐야겠지요.
다행히 팔이 부러지는 정도의 가벼운(?) 부상만 입은 대신 비싼 기계를 건지게 되었습니다. 아마 다른 회사 사장 같았으면 칭찬했을 겁니다. '회사 기계를 제 몸처럼 아낀 사람'이라고. 허나 김 사장은 매우 화를 냈습니다. 병원에 함께 온 직원들 앞에서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질타를 했습니다.
그때 회사를 위해 희생한 사원을 너무 몰아붙인다고 생각한 직속 과장이 나서서 한마디했습니다.
“사장님, 오 사원이 한 행동은 회사의 이익을 위해 몸 바친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행위가 아닙니까. 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바람직한 이기적인 행위가 되니까요.”
“이 과장, 그게 어찌 회사를 위한 이기적인 행동이야? 오 사원은 앞으로 우리 회사에서 20년은 더 근무할 일꾼인데, 팔만 부러져 다행이지 만약 몸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다쳤다면 얼마나 큰 손해야! 그게 어떻게 이기적인 자세야? 기계야 저 사람 2년 치 연봉이면 다 해결되지만 사람은 아니잖아.”
그해 연말에 성과급으로 연봉의 30%를 더 받았다는 사실은 사장과 오사원 둘만의 비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