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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등수, 4등

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제9편)

*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등수, 4등 *



얼마 전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상대의 이름이 휴대폰에 뜨는 순간 나의 첫 말은 이랬다.

"어이 사등, 웬일이니?"

가끔씩이나마 안부나마 묻는 몇 안 되는 제자 가운데 한 명이다. 혹 '사등'이 이름인가 하여 오해할까 봐 미리 밝혀둔다. '사등'은 그의 이름이 아니다. 즉 ‘박사등’, ‘김사등’, ‘이사등’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별명은 제자와 나 둘이만 사용한다. 이런 별명이 붙게 된 사연은 이랬다.


이십여 년 전쯤 인문고에서 3학년 담임을 할 때였다. 입시 형태가 지금과 완전히 달랐다. 지금이야 성적이 나오면 서너 군데쯤 대학을 지원해 합격한 곳 가운데 마음에 드는 학교를 고르면 되지만 그때는 오직 한 대학만 택해야 했다.

하나의 대학만 지원하다 보니 웃는 학생과 우는 학생이 생겨났다. 즉 예년에 이 성적이면 충분하리라 여겼던 과에 원서가 몰려 커트라인이 올라가는가 하면, 거꾸로 아주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던 과엔 서로 기피하다 보니 경쟁률이 하락하여 커트라인이 떨어지기도 했다.




- 4등, 나에게는 가장 의미있는 등수 -



그는 우리 반 중위권 성적이었는데, 서울 명문대 들어가는 게 꿈이라면서 올해는 진학을 포기하고 재수할 생각이니 그냥 명문대에 원서나 한 번 내보고 싶다고 했다. 학부형조차 그러니 어쩔 수 없었다. 부모가 책임진다고 하니 나도 부담 없어 이왕 그럴 바에는 가장 높은 법대로 넣게 했다.

한데 기적이 일어났다. 60명 모집에 62명이 지원하였다. 다들 많이 몰릴 걸 예상하고 기피한 모양. 허나 보통 법대인가. 우리나라 두 번째쯤인데. 기적은 본고사 입시 날에도 이어졌다. 한 명이 오지 않았다 한다. 아마 그 애도 혹 미달될까 하여 넣었는데 두 명이나(?) 떨어져야 하니 포기했던가.


그는 시험 치는 내내 긴장감에 떨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원한 걸 후회했다나. 떨어지면 정말 창피스러웠겠지. 딱 한 명 떨어지는데 그 한 명이 자기라면... 그 긴장감으로 시험을 어떻게 쳤는지 모르게 1교시가 끝나고 2교시가 시작되자 자기 옆자리가 비더란다. 감독교사 두 사람이 살며시 주고받는 말을 엿들으니 그 학생이 1교시 후 위장에 탈이 나 병원으로 직행했다나.




- 4등, 남보다 더 힘들여야 얻는 등수 -



그 뒤 그가 그저 주워 먹기로 명문대 법대에 합격했다는 소문이 교내에 쫙하니 퍼졌다. 그 시선이 굉장히 부담되었던 모양이다. 합격하고서도 졸업식 때까지 고개를 못 들었으니 말이다.

졸업식 날에도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졸업장을 직접 준다는 빌미로 한 명 한 명 교탁에 불러내 진학하는 학생에게는 대학 생활을 잘하라는 내용으로, 재수하는 학생에게는 내년에 좋은 결과를 빈다는 내용으로 얘기해 주다가 그의 차례가 왔다. 일부러 모두에게 들릴 만큼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며칠 전 네가 다닐 대학교 아는 교수님을 만나 네 얘기 들었는데, 네가 4등 했다더라. 논술 시험 아주 잘 친 모양이다. 축하한다.”

그의 눈이 커지고 다른 애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사람은 한 번씩 자기 능력 이상의 실력을 발휘할 때가 있는데 아마 네가 그랬던 것 같구나.”

아이들이 다 떠나고 책상을 정리할 즈음 학년실 문이 열리고 그가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내 앞에 와 섰다.

“선생님, 왜 거짓말하셨어요? 논술시험 잘 치지 않은 건 제가 더 잘 아는데요.”


그때 내가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선생님은 초등학교 다닐 때 운동회날이 가장 싫었다. 아무도 오지 않아서이기도 했지만 달리기를 워낙 못해 한 번도 등수 안에 든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치고 집에 가면 아버지가 꼭 물으시더라. 몇 등 했냐고? 당시 1등 2등 3등까진 상품이 있어 거짓말할 수는 없고 해서 늘 4등 했다고 했어.

네가 속한 법대 수석과 차석은 이미 소문이 나 있을 테고 3등은 본인이 알고 있어 나중에라도 곤란할 수 있지만 4등은 아무도 기억 못 한다. 나는 네가 몇 등 했는지 모른다. 허나 너는 앞으로 네가 4등 했다고 믿어라.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 등수지만 너만 기억해야 할 등수가 될 테니까.”




- 4등, 기억해주는 사람은 없으나 필요할 때 가장 빛나는 등수 -



나는 운동을 한 가지도 잘하는 게 없지만 구경은 좋아하는데, 특히 축구와 야구에 관심이 많다. 축구 뉴스에서 ‘세리에 A’ 유벤투스 소속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관련 기사가 뜰 때마다 자세히 읽는다. 그의 이름 앞에는 ‘세계 2인자’란 수식어가 붙는다. 세계 2위라면 엄청나지 않은가. 그 덕으로 엄청난 부자가 됐다. 하지만 조금만 성적이 안 나오면 비판대에 오른다.


“호날두, 이제 황혼기에 접어들다”,

“호날두, 다섯 게임째 승점에 기여하지 못하다.”,

“호날두, 페널티킥 실축하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먹튀 논란'으로 욕을 엄청 들어먹는다. 이 글은 그의 그런 인성을 다루는 게 아님을 양해 바람)




호날두 다음으로 세계 3위에 해당하는 인물은 ‘리그앙’ 파리 생제르맹 소속의 네이마르다. (요즘은 같은 팀 소속의 음바페가 더 뜨고 있지만) 아시다시피 네이마르는 바르셀로나에서 메시와 한솥밥을 먹다가 프랑스로 옮겼다. (지금은 메시도 다른 팀 소속임) 옮긴 이유는 딱 하나, 메시와 있는 한 2인자밖에 안 되기 때문이라나. 그의 일거수일투족도 매스컴의 단골 메뉴가 된다. 좋은 내용도 있지만 좋지 않은 내용이 더 많이 나온다.


“네이마르, 선배 카바니의 페널티킥을 빼앗아 차다”,

“네이마르, 팀원들과 불화”,

“네이마르, 실력보다 인간성 키워야”

그런데 세계 4위로 오면 달라진다. 일단 4위가 누군지 확실치 않다. 앞에 든 음바페 말고도 어떤 이는 토트넘의 해리 케인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맨시티’의 케빈 더 브라이너 (우리나라에선 이 선수의 이름 앞 글자 ‘K D B’를 우리식으로 만들어 ‘김덕배’라고 함)를 들먹이고, 또 어떤 이는 바이에른 뮌헨의 레반도프스키나, AT 마드리드의 수아레스, 도르트문트의 홀란드를 거론하기도 한다.

달리 말하면 4위가 누군지 모른다는 말이다. 헌데 이들은 메시나 호날두나 네이마르처럼 욕을 들어먹는 경우가 별로 없다. 오히려 잘하면 그 이름이 올라갈 뿐. 기억해주지 않는 4등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는 셈이다.




- 4등, 눈에 띄지 않으나 평범한 사람 기 살리는 아름다운 등수 -



물론 기억해주고 싶은 4위도 있다. 한국의 연간 ‘산업재산권 출원’이 처음으로 50만 건을 돌파했다. 세계 4번째(2019년 기준) 1946년 대한민국 첫 번째 발명이 출원된 이후 73년 만에 달성한 기록이다. 일본,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4번째다.

이 성과를 기억해주길 바라지만 4등은 잘 기억해주지 않는다. 대학교 합격 순위에서도, 운동회 달리기에서도, 축구선수 가운데서도. 그러나 얼마나 아름다운 등수인가. 누구를 스트레스받게 하거나 본인이 받을 필요가 없는 등수가 아닌가.


‘사등’이란 별명의 제자는 동료들이 다들 고등고시에 매달릴 때 방향을 바꿔 대학 4학년 때 7급 행정직에 합격하여 그 길로 나갔다. 재작년인가 사무관 진급 소식을 들었는데 행정고시에 합격한 동기들보다 나중엔 더 빨리 진급할 거라나. 내가 가끔씩 불러주는 '사등'이란 호칭이 듣기 싫지 않느냐 하니 오히려 자랑스럽다 하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선생님, 제가 시험에서는 4등일지 몰라도 제 인생에서는 1등입니다. 제 처가 참 착하고, 아이 둘이 건강하게 자라주고, 저도 직장에서 신뢰받고 있으니까요.”


*. 오늘 글은 목우씨의 일기장(2018.10.27)을 정리해 올립니다.

*. 둘째 사진은 [삼육대학교](2024.10.8) '치열한 미대입시'에서, 셋째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하여 2016년 4월 13일 개봉한 「4등」 영화 포스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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