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제10편)
사람들에게 최초로 개미에 관한 생활 습성을 이해하도록 쓴 글이 이솝우화 속의 「개미와 베짱이」 이리라. 이솝이 이 우화를 쓴 BC 6세기 이후부터 무려 이천오백 년 넘게 우리에게 ‘개미는 부지런함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그 뒤 수많은 곤충학자들이 개미에 관한 연구서를 내놓았고, 특히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개미]란 소설을 쓰면서 개미에 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그 소설 한 부분을 보자.
“한 개미가 만신창이로 곧 죽을 몸인데도 불구하고 계속 전진하다가 죽을 때가 되자 길옆으로 비켜서 동료의 진행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하였다.”
부지런함의 상징에 이어 희생의 대명사까지 추가되었으니 개미에 대한 추앙은 끊이지 않은 셈이다.
(여기까지를 편의상 "개미의 제1법칙"이라 하자)
그 뒤에도 개미를 관찰하는 학자는 늘어났으면 늘어났지 줄어들지 않았다. 이어진 곤충학자들의 탐구욕으로 주목할 만한 관찰 결과가 하나 나왔다. 어느 집단에서든 일개미 전부가 다 일하지 않고 75%만 일하고 25%는 논다는 법칙. 이 법칙은 ‘모든 개미는 부지런하다’라는 등식을 깨뜨렸다는 점에서 다소 충격적이다.
그 뒤 곤충학자 가운데 더 세밀히 관찰한 사람도 있었던 모양이다. 이번에는 부지런히 일하는 개미만 떼놓고 관찰했더니, 웬걸 거기서도 25%의 개미가 농땡이 친다는 결과를 얻었으니... 그 이론은 더 충격이었다. 모든 일개미들은 일한다는 정의(?)가 무너졌을 때보다도 더. 어떻게 부지런한 개미마저 게으른 개미가 된다는 말인가.
(여기까지를 편의상 "개미의 제2법칙"이라 하자)
그렇게 개미에 대한 이론은 정리 완성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일본의 '하세가와 에이스케' 연구팀이 개미를 다른 방향에서 관찰해 본 모양이다. 그 팀은 일하지 않는 25%의 개미들이 그저 놀고만 있는 게 아니라, 일하다가 지친 개미들이 휴식하면 그동안 놀던 개미들이 그들을 대신해 일하기 시작함을 발견했다. 즉 '온전히 노는 개미는 없다'는 사실을.
이 팀은 또 다르게 관찰해 보려고 부지런한 개미만 모아 놓았더니 25%의 게으른 개미가 생기기는 마찬가지지만 몇 번 거듭되니 정말 부지런한 개미들만 남았다 한다. 그런데 한 마리도 게으름 피우지 않는 이 개미집단에서 문제가 생겨났다.
오직 일만 하는 부지런한 개미들은 모두가 지쳐 얼마 뒤 집단 자체가 해체돼 버리는 현상을 보였으니... 신기한 결과였다. 게으른 개미(휴식할 때 거드는 개미)가 어느 정도 있는 집단은 계속 유지하는데 반하여 부지런한 개미만 있는 집단은 무너진다는 결과. 하세가와 에이스케 팀은 연구보고서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휴식을 보장하는 집단과 보장되지 않은 집단 중 튼튼한 집단은 휴식을 보장하는 집단이다.’라고
(여기까지를 편의상 "개미의 제3법칙"이라 하자)
사람의 일을 사람에게서만 찾는 시대는 이미 지난 듯하다. 개미처럼 하찮은 미물을 관찰한 결과가 사람들에게 바로 적용되지 않는가. 이 점에 착안해 휴가를 알뜰히 이용하게끔 챙겨주는 기업이 는다고 하는데 아직 그렇지 않고 일만 시키는 기업주가 있다면 정말 개미보다 못한 인간이 아닌가.
올 초 할 일을 정했다. "관찰하기" ‘개미 관찰하기’는 이미 많은 사람이 해서 내가 끼어들 여지가 없으니 우리 밭에 수시로 출몰하는 ‘두더지 관찰하기’로 바꾸었다. 녀석들은 땅콩이나, 고구마, 야콘, 돼지감자 같은 뿌리식물에게 아주 나쁜 짓을 한다. 캐보면 알맹이가 없거나 한쪽이 떨어져 나간 게 수두룩하다.
그렇게 두더지 관찰하기로 정했는데 한 해가 다 돼 가는 지금 얼마나 관찰해 보았느냐고 누가 캐묻는다면 할 말이 별로 없다. 두더지 잡기에만 골몰했을 뿐 관찰은 뒷전이었으니. 이제 날이 추워지면 더욱 두더지 볼 일은 끝. 결국 올해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끝낸 셈이 된다.
목표를 이루지 못함은 큰 실패이나 다음 해 또 이어갈 수 있으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 결국 관찰에 대한 마음만 잊지 않는다면 되리라. 산골에 사니 주변에 관찰할 거리가 좀 많은가. 조그만 연못에 무시로 드나드는 개구리, 좀 따뜻해지면 계절과 관계없이 눈에 띄는 거미와 들쥐... 굳이 애써 찾지 않아도 보이니 나는 관찰만 열심히 하면 된다. 그래서 관찰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고 싶다.
끝맺음으로 관찰에 관한 최고의 시를 소개한다. 이미 몇 차례 언급한 시다. 마종하 시인의 「딸을 위한 시」
“한 시인이 어린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 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 온 아이가 누구인가를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