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3편 : 우대식 시인의 '강이 휘돌아 가는 이유'
@. 오늘은 우대식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강이 휘돌아 가는 이유
우대식
강이 휘돌아 가는 이유는
뒷모습을 오래도록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직선의 거리를 넘어
흔드는 손을 눈에 담고 결별의 힘으로
휘돌아 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짧은 탄성과 함께 느릿느릿 걸어왔거늘
노을 앞에서는 한없이 빛나다가 잦아드는
강물의 울음소리를 들어보았는가
강이 굽이굽이 휘돌아 가는 이유는
굽은 곳에 생명이 깃들기 때문이다
굽이져 잠시 쉬는 곳에서
살아가는 것들이 악수를 나눈다
물에 젖은 생명들은 푸르다
푸른 피를 만들고 푸른 포도주를 만든다
강이 에둘러 굽이굽이 휘돌아 가는 것은
강마을에 사는 모든 것들에 대한 깊은 감사 때문이다
- [설산 국경](2013년)
#. 우대식 시인(1965년생) : 강원도 원주 출신으로 1999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평택 진위고에서 국어를 가르치다 명퇴한 뒤, 현재 모교인 숭실대 문창과 강사로 시 창작 교육에 애씀.
<함께 나누기>
아마도 시인 가운데 꼬불꼬불한 고갯길보다 곧게 쭉 뻗은 길을 더 좋아하는 분은 안 계실 겁니다. 마찬가지로 구불구불 흐르는 곡선의 강보다 쪽바로 흐르는 직선의 강을 좋아하는 분도 안 계실 겁니다.
그래서 시인들은 이렇게 말하지요. 직선은 인간이 만든 선이라면, 곡선은 자연이 만든 선이라고. 그러고 보니 맞는 말인 듯. 구불구불 자연스럽게 흐르는 물줄기를 가둬 댐을 만들고, 그 물이 곧게 흐르도록 물줄기를 조절하고.
오늘 시는 한 연으로 돼 있습니다만 내용 면에서 보면 두 연이 됩니다. 첫 행과 8행까지, 9행부터 끝 행까지. 두 부분의 시작 행이 당연히 유사할 수밖에요. 한 번 볼까요?
“강이 휘돌아 가는 이유는/뒷모습을 오래도록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강이 굽이굽이 휘돌아 가는 이유는 / 굽은 곳에 생명이 깃들기 때문이다”
이리 나누면 두 시행 뒤에 이어지는 다른 시행은 이 두 시행을 해설하는 느낌을 줍니다.
“강이 휘돌아 가는 이유는 / 뒷모습을 오래도록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요즘은 주인공끼리 포옹하면서 끝나는 장면만큼 헤어지면서 끝나는 영화나 드라마도 꽤 많이 보입니다. 헤어질 때 사내가 곧은길 대신 살짝 굽이길로 접어들 때까지 여인의 시선 머무는 장면이 제법 길게 느껴졌는데 오늘 시를 보면서 그 까닭을 압니다. 바로 ‘뒷모습을 오래도록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그 여운을 즐기라고.
“직선의 거리를 넘어 / 흔드는 손을 눈에 담고 결별의 힘으로 / 휘돌아 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화자에게 휘돌아 흐르는 강은 단순히 자연이 아닙니다. 결별의 과정에서 아쉬움과 그리움을 잔뜩 머금은 이를 비유하는 표현입니다. 조선시대 소재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과거 보러 떠나는 님을 동구 밖까지 나와 배웅하는데 그의 마지막 그림자가 굽이길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는 아낙의 모습처럼.
“강이 굽이굽이 휘돌아 가는 이유는 / 굽은 곳에 생명이 깃들기 때문이다”
쪽바로 흐르는 강물보다 휘돌아 흐르는 강물에 고기가 많다고 함은 낚시를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은 잘 알 겁니다. 직선은 물살이 거칠지만 곡선은 물살에 여유가 넘칩니다. 그 여유로운 곳에 생명이 잘 깃들지요.
“굽이져 잠시 쉬는 곳에서 / 살아가는 것들이 악수를 나눈다”
요즘 시골마다 물줄기를 직선으로 대체하는 공사가 한창입니다. 우리 마을도 마찬가지라 공사 뒤 흘러내릴 때는 무자비하게 흐르다가 보통 때는 확 말라버립니다. 예전부터 달내계곡에 살던 가재와 버들치는 이제 보이지 않습니다. 곡선의 개울이라야 물이 고이기도 하련만, 이제 세차게 흐르거나 말라버리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강이 에둘러 굽이굽이 휘돌아 가는 것은 / 강마을에 사는 모든 것들에 대한 깊은 감사 때문이다”
하회마을이 관광지로 유명함은 여러 요소가 있지만 마을을 휘돌아 흐르는 강 때문이라는 말이 가장 가슴에 와 닿습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하회(河回)란 한자를 뜯어보면, ‘강(河)이 휘돌아 흐르는(回) 곳’이라는 뜻이니까요. 누구든지 그 마을에 들면 마음이 편안해지는데, 가장 큰 이유가 강물이 휘돌아 흐르는 안정감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늘 시를 읽으면서 휘돌아 흐르는 강을 떠올리며 곡선의 의미를 찾는 하루를 만들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