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4편 : 함순례 시인의 '꼴림에 대하여'
@. 오늘은 함순례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꼴림에 대하여
함순례
개구리울음소리 와글와글 여름밤을 끌고 간다
한 번 하고 싶어 저리 야단들인데
푸른 기운 쌓이는 들녘에 점점 붉은 등불 켜진다
내가 꼴린다는 말을 할 때마다
사내들은 가시내가 참, 혀를 찬다
꼴림은 떨림이고 싹이 튼다는 것
무언가 하고 싶어 진다는 것
빈 하늘에 기러기를 날려보내는 일
마음속 냉기 당당하게 풀면서
한 발 내딛는 것
개구리울음소리 저릿저릿 메마른 마음 훑고 간다
물오른 아카시아 꽃잎들
붉은 달빛 안으로 가득 들어앉는다
꼴린다, 화르르 풍요로워지는 초여름밤
- [뜨거운 발](2006년)
#. 함순례 시인(1966년생) : 충북 보은 출신으로 1993년 [시와사회]를 통해 등단. 현재 대전에 살면서 ‘작은 詩앗 채송화’ 동인으로 활동하며 연간 2회 무크지를 발간
<함께 나누기>
처음 이 시가 발표되었을 때 '발칙한 시'라는 평을 받았지요. 나이 마흔에 쓴 여인의 시에 ‘꼴린다’란 외설적인 낱말이 툭 튀어나왔으니까요. 헌데 시를 읽은 이마다 초여름밤의 짝 찾는 개구리울음소리를 표현함에 저보다 더 적합한 낱말이 있을까란 찬사가 터져 나왔습니다.
지금 시골의 논엔 어느 곳이든 할 것 없이 물이 가득 담겨 있고 거기에 개구리들이 요란스러울 정도로 붐빕니다. 아무리 붐벼도 인기 있는 녀석과 없는 녀석이 있는 법. 당연히 경쟁이 붙어 수컷이 암컷 찾아 짝짓기를 위해 울어댑니다. 즉 구애의 노랫소리라 할까요.
시로 들어갑니다.
“한 번 하고 싶어 저리 야단들인데 / 푸른 기운 쌓이는 들녘에 점점 붉은 등불 켜진다”
개구리 수컷이 암컷이랑 짝짓기 하고 싶어 부르는 구애의 노랫소리라 정의했는데, 시에선 훨씬 직설적으로 ‘한 번 하고 싶다’로 표현했습니다. 사실 이런 표현 남자들은 저들끼리 있을 땐 곧잘 하는데 여자가 하기엔 부담스러우련만 시인은 아무렇지 않게 합니다.
그 말 듣는 사내들의 반응은 뒤에 ‘가시내가 참!’으로 이어집니다. 한 마디로 여자가 그런 말 하니 기가 막힌다는 뜻이지요.
“꼴림은 떨림이고 싹이 튼다는 것 / 무언가 하고 싶어 진다는 것”
이 시행에 이르면 꼴림의 실체가 엿보입니다. 꼴림은 떨림이고 싹이 튼다는 것이라고. 꼴림이 떨림으로 이어짐은 당연한데 싹이 튼다 함은? 여기서 꼴림의 세계가 단순히 성적 떨림이 아니라 ‘생명 탄생의 싹’과 연결돼 모성을 담았음이 드러납니다.
“마음속 냉기 당당하게 풀면서 / 한 발 내딛는 것”
이제 꼴림이 단순히 짝짓기 과정이 아니라 냉기를 풀며 한 발 내딛는다고 합니다. 즉 화해를 통해 진취적인 상황을 이끌어낸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꼴림엔 우리 삶에서 몸속 피돌기를 빠르게 만들고, 살만하다고 여기는 어떤 것도 다 해당된다고 봅니다.
빈 하늘이, 마음속 냉기가, 개구리 울음소리가, 물오른 아카시아꽃이, 붉은 달빛이 우리를 화드득 꼴리게 만듦도 마찬가집니다. 꼴림이 있어서 떨림이 생기고, 떨림이 있어서 생명의 팔딱거림이 생겨 세상은 활기를 되찾아 풍요롭게 됩니다.
“꼴린다, 화르르 풍요로워지는 초여름밤”
초여름밤이 지난 한여름밤이지만 귀를 기울이면 어디선가 꼴림의 소리가 들려올 겁니다. 생명의 풍요로움을 이끄는 소리가. 꼴림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고, 피돌기가 활발해지고, 짓눌렸던 모세혈관이 다시 팔팔하게 뛰논다면 우리도 꼴려볼 필요가 있을 터.
이 아침 꼴림을 찾아 떠나는 길, 그 길에 나서는 그대에게 작은 행운이 찾아오기를.
<뱀의 발(蛇足)>
혹 ‘배알이 꼴리다’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이때의 뜻은 ‘비위에 거슬려 아니꼬움을 느끼다’란 뜻의 관용구입니다. 원래 배알은 ‘창자’를 의미하니, 창자가 꼬일 정도로 몹시 기분이 나쁘다란 뜻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또 얼마 전 예능프로그램에서 이 꼴림이란 말을 이용해 표현하는 경우를 여럿 보았습니다. ‘가장 꼴리는 음식은?’ 이 표현으로 제재를 받았다는 기사를 읽지 못했으니 그 정도는 이해할 사회 수준(?)이 되었다는 뜻일까요?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어떤 회사 회식 중에 술이 거하게 된 직장상사 남성이 “여기 나를 꼴리게 하는 사람이 있다”라고 했는데 이 말이 성희롱에 해당된다 하여 징계를 먹었다고 합니다. 그는 꼴리게 하는 사람이라고 했지 ‘여자’라고 하지 않았다고 항의했지만 그 말의 분위기가 여성을 향한 말이라 징계가 적합하다 했다니 남성분들은 조심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