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은 반사된 진리의 빛이란다.. 그래요..?
우리에겐 사랑 그 자체로서 충분하다. - 헤르만 헤세.
필자는 지금까지 '해체주의'를 목 놓아 외치는 사람인 것처럼 모든 단어를 해체하여 그 속에서 인간.. 그리고 인간을 넘어 존재하는 것들이 느낄 수 있는 모든 아름다움을 날 것으로 보고자 했다.
'불행'과 '행복'이라는 단어를 해체해 이분법적인 사고를 벗어나려 했고,
'시간', '사람', '설렘'을 해체해 <ㅅ의 법칙>을 세우며 사랑을 이어보려 했고,
그 과정에서 시와 소설을 공개하기도 했었다.
허나, 때로는 사과 껍질을 굳이 벗겨보지 않아도,
그 속의 노란 속살을 보지 않아도 빨간색의 껍질만으로도 만족되는 때가 있다.
우리 인간은 '미학'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시각적인 아름다움에 심연 속부터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고, 진화되어 와서 그런지 몰라도 어떤 이는 이별조차 '이별의 미학'이라며 찬가를 읊는다.
모든 학문이 그렇듯이 미학 역시 '이것은 뭐농...?"라는 단순한 의아함에서 출발하는데 미학은 말 그대로 '아름다운 것은 무엇일까?'로 출발하는 학문이다.
여러 갈래의 미학이 있는데 시각적으로 뇌에 꽂히는 문구부터 디자인 요소, 그림, 동영상이 그러하고, 청각적으로 듣는 것, 촉각적으로 만지는 것, 혹은 영혼의 무엇인가로 느끼는 것 역시 '미학'의 한 요소가 된다.
신학자이며 철학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Tommaso d'Aquino, 시칠리아 왕국, 1225~74년)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Pulchritudo est splendor veritatis.)
이는 진리(Veritas) 자체는 불변의 것으로 규정하며, 이를 '세계의 질서'라고 이해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진리'라는 것은 우리의 육안으로는 관측할 수 없는 개념인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이 진리 자체를 인식할 수 없으며, 그저 빛처럼 반사된 것을 통해 '아름다움'이라는 감각적 체험으로나마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아름다움이란 진리의 그림자, 진리의 빛.
필자가 서울대에서 교수 정도를 하고 있는 정도의 지식인은 아니지만 그저 존재 중 하나로서 이해하기에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적 이론은 다음과 같이 받아들인다.
"아름다움은 본질을 감각으로 옮긴 순간이다."
무슨 말이냐면,
진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관계 속 기억과 감정 역시 눈과 말로는 설명이 어렵다는 것이다.
또 무슨 말이냐면,
빛은 반사될 때 육안으로 인식되는 과학적 근거처럼
말은 울릴 때, 감정은 머물 때 그제야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인간은 영혼의 닫힘을 느낄 때 단어를 해체하여 속 뜻을 파헤치기 위해 연구를 하며,
반대로 인간은 영혼의 해방을 느낄 때 단어를 그대로 받아들여 겉 뜻을 품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이라는 단어가 빛에 반사되지 않을 때 어둠을 헤쳐 나가기 위해 벽을 더듬거리며 길을 나아가는 과정과
아름다움이라는 단어가 빛에 반사될 때 눈으로 그저 바라보고 서있는 어떤 인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800년 전 살았던 어떤 신학자 아저씨 '토마스 아퀴나스'.
당신의 말을 다음과 같이 느낀다.
"아름다움은 반사된 진리의 빛이란다. 삥이야."
"그렇군요, 아름다움은 본질을 감각으로 옮겼을 때 느껴지는군요, 아저씨!"
결국 매일같이 증명되는 것처럼 진리는 언제나 간단하다.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사명 '사랑'.
신이 매일 노래하는 가르침 '사랑'.
성인들이 목놓아 외치며 내뱉은 '사랑'.
노벨상을 탄 이들이 소감을 말할 때 '사랑'.
이 세상 모든 진리의 key에는 사랑이 있고,
그 사랑을 해체하면
철학이요,
과학이요,
기술이며,
학문이고,
결국 본질이다.
내 생각은 그렇다.
반박 시 님 말이... 반박하면 때리겠다.
(뻥입니다.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