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는 잘 짜인 시스템에서 태어난다

도파민의 천장, 안정의 역설, 그리고 기술자의 피로에 대하여

by 삥이


Prologue.


우리는 종종 시장을 '돈의 구조'라 착각한다.

하지만 실상, 시장은 감정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파도다.


감정은 우리 인간이 외부 세계를 해석하고 대처하기 위한 최초의 생존 기술이었다.


그 기술은 도구를 낳고,

도구는 망원경이 되어

우리는 그것으로 930억 광년을 바라보게 되었다.


감정은 결국, 가장 멀리까지 나아가는 연료였던 것이다.





<Ludovico Einaudi - Experience>




자본주의의 꽃은 '광고'라고 하는데,

광고가 자본주의의 꽃이 되는 근원은,

감정을 끌어모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후킹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감정의 위계는 질서를 낳고,

그 질서는 화폐를 만들며,

그 화폐는 유입의 구조를 타서,

감정을 수익으로 전환시킨다.






사람이 모이는 곳은 광고 시장이 형성되고,

광고 시장이 형성될 만큼 사람이 모이면 돈이 나온다.


그러나,

매우 아쉽게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진리인양 돈을 좇고,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신인양 돈이 쫓아온다.









삥이의 브런치 56번째 이야기.

권태는 잘 짜인 시스템에서 태어난다

도파민의 천장, 안정의 역설, 그리고 기술자의 피로에 대하여



기술자는 실행만 한다.

기획자는 감정을 설계한다.


권태는 기획자의 영역이 아닌,

구조 안에서만 움직이는 기술자의 피로다.






안전은 감각이고,

안정은 감각의 누적이다.


감각은 순간적이며,

누적은 구조를 짠다.


그리고 그 구조 아래 태어나는 것은,

이 변덕스러운 종(種, Species)이 품은 '권태'다.


게으를 권(倦)

게으를 태(怠)


즉, 움직이지 않음에서 비롯된 정체(停滯).


권태란 삶의 궤도를 유지하면서도,

감정의 흐름이 멈춰버린 상태겠지.






주식 그래프가 박스권을 뚫지 못할 때,

초보 투자자는 지루함에 손절하고,

세력은 그 박스 내부에서 조용히 물량을 매집한다.

권태란, 겉으론 정체지만 속에선 변화가 꿈틀거리는 전환의 지점인 것이다.


누구는 지루하다고 떠나고,

누구는 그것이 축적의 신호임을 캐치하는 이 기이한 구조.


결국,

권태는 그리하여,

감정의 피로이기도 하지만

구조를 아는 자에겐 기회의 타이밍이요, 침묵을 해야 할 때이다.






안전한 투자는 안정적인 수익을 만든다.

하지만 그 수익은, 더 이상 올라가지 않는 순간부터

'도파민 천장'을 형성한다.


그리고,

그 천장을 깰 의지를 품지 못하는 자는,

기업 대표자와 교수, 석박사들이 좋은 래퍼런스를 보여주며 교육을 해도


"듣질 않는다."


이는 뇌의 보상 회로가 자극에 반복 노출되며 민감도를 잃어가는 '쾌락 순응(Hedonic Adaptation)' 현상과 유사하다고 한다.


같은 자극을 반복해도 더 이상 도파민이 분비되지 않기에, 그들은 '재미없어졌어' 혹은 '아웅.. 어려워잉..' 라고 느낀다는 것이다.




반응이 안 나오세요?


"그건 알고리즘 문제가 아니라, 쾌락 회로의 구조적 한계일 수도 있으니, 조금만 더 믿음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제발,

부디.






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는

하루만 해도 자고 나면 몸이 변한다.

하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더는 변하지 않는다.


블로그,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 기업의 매출.

이 모든 곡선은 초기에 가파르다.

그러나 언젠가 평탄해진다.


틱톡, 릴스 알고리즘은 초반 도달률을 극단적으로 높여 '성장의 환상'을 심어준다.


즉, 쉽게 말해서

'Dopamine-Driven Spike'를

의도적으로 설계함으로써,

사용자가 콘텐츠 초기 성과에 중독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이는 '착시형 성장곡선(Fake Growth Curve)'을 낳고, 실제 성장은 A/B 테스트 통과 + 지속 생산 + 누적된 계정 신뢰도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니,

채널을 키우다가,

3년간 1,000개도 안 만든 채로 접어놓고,

"그거 돈 안됨 ㅋㅋㅋ 운빨임 ㅋㅋ" 이러고 있다지.


사실,

어느 순간부터 통계가 눕는 타이밍을 캐치하는 감각이 있다면


그때부터는 업로드가 아니라 기획이,

감정이 아니라 전략이 필요해진다는 것을,

파도가 잦아들었을 때, 조류의 방향을 읽는 건 고인물의 감각이라는 것을 조용히 깨닫는다.






초기 성장의 재미는 순식간이고,

지속 가능성 안정은

오히려 권태의 전조를 부르기도 한다는 말이다.





이때부터, 계산기가 등장한다.


'이번 달 ROAS는 어땠지?', '담달도 이 정도 퍼포먼스 나오겠지?'


그렇게 반복된 숫자의 잣대는

처음 그들이 왜 이 사업을 시작했는지를 흐릿하게 만든다.


그때 그 마음은 어디로 가셨는지요.


속도는 경로를 지워버리고,

방향은 종종 계산기 아래 눌려버릴지도.


기업으로 가는 게 아니라,

구멍가게로 전락하다가 정권 한 번 바뀌면 파산으로 이어질지도.




이것은 아마,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도파민 시스템이 가진 구조적 한계이지는 않을까?





"이만큼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라며 생각했던 감각이 지속되는 순간

"더는 재미없어졌어"

라고 말하는 스스로를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건 우리 인간이 가증스러운 존재여서가 아니라,

감각의 감도가 시간이 지나면서 둔화되기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는 늘,

초기의 자극만을 기억하고,

초기의 반응만을 기억한다.




밤하늘의 별도 따다 줄 것 같은 남친이,

남편이 되는 순간 변해서 무심해지듯이


그래프가 바닥을 치면, 팔아버리고

몸이 안 변하면, 운동을 그만두고

조회수가 정체되면, 채널을 닫고,

연애가 일상이 되면, 사랑을 의심한다.


그리고 말하겠지.

"재미없어졌어."

"식은 것 같아."

"이건 망한 것 같아."





아니다.




그건 실패가 아니라,

너무 정밀하게 설계된 삶의 부작용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권태는,

구조가 완성되었음을 알리는 정직한 알람일지도.






더 쉽게 말해볼까.


그건 실패가 아니라,

도파민의 민감도 저하를 감정의 죽음이라 착각한 우리의 슬픈 오해일 수도 있다는 거야.












돈이 돈을 번다.





아주 쉬운 문장이다.

아주 유명한 문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진짜일까?


표면을 보면 "가진 자"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경제와 관련된 지표를 다루다 보면 자산이 자연스레 증식하는,


마치 버그처럼 반복되는

'자산 증식의 공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감정이 만든 반복 패턴이 구조처럼 보이는 착시일 뿐이다.


열등감, 위축, 비교, 우월욕 같은 감정이 시장을 움직이고,


그 흐름이 자산의 곡선이 된 것이다.



누군가의 어머님 아버님이 돈이 많다고 하면,

자연히 열등감을 품으며 '나랑은 다르겠구나'하는 위축이라는 감정의 근원.






하지만 이는 무지(無知)다.






주식시장에서 득세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따져보자.


첫 수익의 순간.

도파민이 터지고, 인간은 그 감각을 기억한다.

문제는, 그게 지속되지 않으면 재미없어지기에 매도를 택한다는 것이다.


캔들 차트가

몇 주, 몇 달 정체되면

"망했다"라는 판단을 불러오는데,

문제는, 그 정체를 인간의 뇌가 감당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혹은

"왜 오르는지, 왜 빠지는지"

구조를 모르는 채로

분위기 따라 매수/매도를 반복하게 되는데 이는

거시경제나 산업구조에 대한 이해 없이 감으로 투자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쉽게 보자.

권태는 '이제 재미없다'는 감각,

공포는 '이젠 무섭다'는 감정,

그리하여, '도망치자'라는 본능.





부동산은 어떠한가.



사례1) 감정을 좇는 투자자.

뉴스를 흘려듣고, 집값이 오르면 "사야지!"만 반복하는 사람.

단기 시세만 좇다 기준금리나 입법 구조를 놓치는 사람.


사례2) 구조를 읽는 투자자.

공급 계획을 추적하고, 제도의 흐름을 유추라도 해보는 사람.

시간의 이자율을 믿고, 정책의 반응을 기다려야 된다는 것을 인지하는 사람.


결국, 시장은 감정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조를 아는 자에게, 미리 '들어오쉴?'이라며 시그널을 건네는 듯 싶다.




그렇더라.

돈이 돈을 번다라는 개념은

단순히 돈 많은 사람이 이기는 현금 싸움이 아니라,


감정을 조절하고 권태를 견디며 구조를 읽는 사람만이 실현할 수 있는 문장이었던 것이다.





권태로운 횡보장에서 버티고.

공포의 하락장에서 사고.

돈을 버는 게 아니라, 구조를 읽고.


때문에,

시장 경제에는 당연한 말이 있는데


기업의 리더가, 숫자를 좇으면 구멍가게가 되고,

기업의 리더가, 가치를 좇으면 그룹이 된다는 자명한 진리.


결국 모든 시장은 감정의 연장인 것이다.


자산은 불안의 파생상품이며,

투자란 감정을 지연시키는 계약이기에.


시장이 감정을 이기지 못하는 이유는,

시장이 구조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구조를 읽는 인간이 감정을 이기기 때문이기에.









자본주의 제도는 곧 감정의 산유물이다.





시장은 공포와 탐욕으로 움직이며,

그리고 주식은 사람들의 기대와 불안으로 가격이 뛴다.


아울러

부동산은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욕망이 만든 열망의 산물이고,


동시에

자본은 사랑받고 싶은 욕구, 지켜주고 싶은 책임감에서 흐른다.




즉,

자본은 신뢰를 담는 그릇이고,

신용은 감정이 켜켜이 쌓인 증거물이라는 것이다.




잘 사는 사람,

잘 사는 기업,

잘 사는 나라 속 거래의 대다수는

'신용 거래'로서 유지된다.


이 신용이라는 것은 즉,

결국 '미래의 자본'을 당겨 쓰는 일이다.


그 자본의 배경에는 늘,

'신뢰'라는 감정이 깔려 있다.


그리고 이 신뢰는,

더 자주, 더 크게 신용을 부른다.


그래서 신뢰가 많은 사람, 기업, 나라는

자본도 더 쉽게 증식된다.


그래서 신용 거래량이 많은 것이

선진국의 특징이다.


버블이 끝나기 전,

모두가 믿고 있었던 일본처럼.





그러니,

많은 이들의 감정을 움직이는 기업들은

주식을 발행한다지.


테슬라가 전기차를 팔기 위해 '혁신'을 유동화하고,

나이키가 운동화를 팔기 위해 '도전'과 '자기 서사'를 상장한 것처럼,

샤넬이 가방을 팔기 위해 '우아함'과 '나로 살아가는 태도'를 유산처럼 상장한 것 말이야.


감정을 유동화한 브랜드만이,

주식을 발행할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즉,

감정의 산유물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만든 제도이기에,

결국 감정을 부정하기 위해 만든 감정의 구조물이기에


"어캐 돈버누" 가 아니라,

"어떻게 굴릴까?" 가 조금 더 믿음직스럽고,


"어캐 잘 사누" 가 아니라,

"어떻게 신뢰를 줄까?" 가 더 정확한 질문이다.




돈을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시장을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당신의 삶을 읽는 것이 곧


자본주의 제도이다.





시스템은 감정이 없는 줄 알았지.

알고 보니, 너무 정교해서 감정처럼 안 보였던 거야.









진짜 가난한 자들은, 사실.





권태는 인간의 감정이다.


하지만 더 깊이 보자면,


권태는,

모든 가능성을 가졌기에 선택이 무의미해지는 순간에서 조용히 태어난다.


그래서 신(神)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이고,

인간은 그 권태를 흉내 내다 결국 위태로워진다.


권태는 가난한 감정이 아니기에,

오히려 가져본 자만이 맛볼 수 있는 특권이기에,

그 특권은, 감정의 흐름을 구조로 읽어낼 수 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기에.


가진 자에겐 '지루함'이지만,

못 가진 자에겐 그 모방이 '파산'이기에.




그래서 우리는 부자를 동경하면서도,

그들이 왜 위험을 감수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때때로 우리는 상위권을 부러워하면서도,

그들의 '하이라이트 3분' 뒤에 숨은 '1,000일의 노력'을 외면한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노력하면 모든 게 될 거니까,

열심히 살으라는 개나 소나 해대는 말을 나보고 들으라는 말인가?





아마 당신네들이 여쭐 질문일 수도 있다.





Yes.

믿음을 잃은 자가 성공하는 꼴을 본 적이 없기에.


Yes, again.

재능, 노력을 찍어 누르는 것은 반복이었기에.


Yes, beyond reason.

부정하려 해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기에.


Yes, until words are no longer needed.

이제는 굳이 말 안 해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는 자명한 사실이기에.


데이터는 거짓말을 못 하니까,

장기적 반복은 언제나 우연을 이기니까.








기획자는 어떻게 믿음을 얻는가.


기획자는 믿음을 사지 않는다.

신뢰를 증명하는 사람이다.



말을 하고,

말을 반복하며,


그 말을 행동으로 옮기고,

그 행동을 반복하여 결과로 만든다.


감정을 설계하고,

그 감정에 투자하고,

그 투자로 구조를 세운다.


구조는 곧 상품이 되고,

상품은 시장이 되고,

시장은 숫자를 말한다.


숫자가 신뢰를 부른다는 것이다.


그제야 사람들은

그의 말을 다시 듣는다.

이것이 기획자의 신뢰 구조다.


그리하여 안전,

누적되어 안정감을 의뢰인에게 부여하는 과정을 통해 신임을 얻는 것이다.




전략기획,

상품기획,

생산기획,

광고기획,

모든 기획은 결국

'자본과 구조'에 봉사한다.


그리고,


그 정점엔

예산과 세제를 설계하는,

국가의 기획자들

기획재정부가 있다.


그들은 신뢰를,

단지 말이 아니라 법과 수치로 설계할 뿐.


세금 정책은 감정이 아닌 구조이지만,

그 구조는 결국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국가'라는 감정에서 작동할 테니까.





그 믿음이 무너질 때,

제도는 감정을 버리고 권태로 죽는다지.




2011년,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사건이

위 논리를 당연하다는 듯 뒷받침해 준다지.


2008 리먼 브라더스 사태, 2020 대한민국 코로나 재난지원금 편차 논쟁, 2023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모든 것이

제도가 감정을 버리고,

권태로 죽어버린 사례였다지.










Ending.

이상할 만큼 조용한,



딱히 나쁜 일은 없었는데도,

가끔 너무 좋은 날들이


'왜 이렇게 반복되나..'


싶을 때가 있다.



문득, 그런다.


"오늘도 맛있고, 일도 잘 되고, 사람도 나쁘지 않은데..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모든 게, 어쩌면 '그냥 살아지는' 건 아닐까"


라며 말이다.



그렇게,

권태는 아무 이유 없이 오기도 한다.


어쩌면,

너무 정밀하게 설계된 삶의 부작용.

구조가 완성되었음을 알리는 정직한 알람.

도파민의 민감도 저하를 감정의 죽음이라 착각한 우리의 슬픈 오해.







우리 가끔은,

도파민도 한 스푼씩 넣어보자.


집에서 살짝의 불편함을 주어,

내가 예쁘게 있으면 와이프의 설렘이 지속될지도 모르듯이


삶에서도 살짝의 불편함을 주어,

'나비효과'를 불러내보는 거지.





음..

무리하게 대출받고,

아 조졌다.. 싶게 살아보기..?




흠..

아니, 그러면 진짜 조져질지도 모르니까





그냥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퇴근길 골목길 말고,

뒷문으로 한 번 돌아가보는 정도?


그도 아니면..

집 가는 길에 꽃 한 송이 사서,

사랑하는 이에게 건네보는 정도?





지구의 얇은 보호막.

오존층의 안정감이 사라질 때

과학자들은 말하지.

"아.. 있을 때 잘할 걸"




그 감정.

그 작은 균열.

그 얇은 어긋남이,

오히려 권태를 흔들고,

관계를 다시 단단히 묶는다는 걸

우린 이미 알고 있다지.





그러니 때때로,

균열은 사랑의 새로운 정의를 꺼내놓는 법이다.


조졌다고 생각한 그 자리에서,

"이만큼 사랑하고 있다"라고 고백하게 되니까.









아,

거시경제였나이까?

추상적이었나이까?








아뇨,

뼈의 재형성,

외상 후 성장.

물리적 증명이었더이다.









하긴,

반복을 버티지 못하는 자에게,

권태를 다시 안정감으로 돌리지 못하는 자에게,


그런 머리 검은 짐승에게,

어떻게 신뢰를 줄 수가 있겠어.


또,

내 앞에서 뱀의 혀를 내밀고,

내 계좌 이체만 기다릴 거면서.











이번 글이 '권태'와 '위태'를 썼다면, 이전 글은 '안전'과 '안정'을 썼습니다.


네,


우리 인간 모두에게 익숙한 '맞물린 감정선'이죠.


그 익숙한 감정이,

어느 날엔 '지루함'으로,

또 어느 날엔 '위태로움'으로 바뀌기도 하잖아요.


아직 읽지 않으신 독자님께서 계신다면,

이전 글도 잘 읽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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