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을 넘는 사랑, 종이 울리는 순간.
필자 삥이,
내 한 번 오늘의 감정에
도입을 넣어보리다.
<Yiruma - River Flows in You>
끄적임을 누가 알아봐 주면
끈적임이 되고,
쓰여진 것을 누가 읽어주면
쓰임이 된다.
버림받은 자를 누가 주워주면
그것은 누군가에게
사건의 '벌임'이 되고,
존재하지 않는 자를 누가 불러주면
실존재, 혹은 현존재(Dasein)가 된다.
서양 철학에 주먹질을 하는 자.
마르틴 하이데거. 그가 말했지.
"존재는 홀로 있지 않는다."
그럼, 그 말을 들은
자연계는 대답하지.
"네, 그거슨 양자역학입니다."
우리가 지켜보기 전까지,
전자는 파동이자 입자이며,
존재는 관측에 따라 바뀌는 법이니까.
철학도, 물리학도, 결국 이 말로 수렴된다.
"당신이 나를 보았기에, 내가 여기 있다."
수학을 깊게 파면 철학이 나온다.
자명한 진리겠지.
언어를 깊게 파면 심리학이 나온다.
완벽한 논리겠지.
법학과 정치학, 그리고 경영학을 깊게 파면
자연계와 인문계와 언어가 동시에 호출된다.
끄덕일 수밖에 없겠지.
그리하여,
학문을 깊게 파면 감정이 나온다.
그리고,
감정을 깊게 파면 내가 나온다.
여기서 대다수는 도망치니까
감정이 어려워 보이고, 돈이나 좇으며,
그게 진리인 듯 여기다가 나중엔
"돈이 전부가 아니더라"라고 인스타에 릴스를 찍지.
(갑분 싸없새 죄송합니다)
"그럼 당신이 나온다."
결국 인문사회학, 자연과학, 응용융합의 모든 학문.
즉, 철학으로 시작해서 물리학을 거쳐, 의학을 짚은 뒤 경영학과 정보과학으로 끝나는,
인류가 감각한 23개의 학문 종류는 모든 것이 "사랑"이라는 한 감정에서 출발하여 곧 귀결된다는 진리.
그것이 바로 "나, 너, 그리하여 우리"라는 딱 한 문장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그것은 창세기에 등장한
최초의 인간 아담(אָדָם),
그리고 두 번째 인간 하와(חַוָּה).
그들이 머문 에덴동산(낙원/樂園)이 우리 인류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필자 종교 없음. 무신론자임)
여기에 사랑과, 관계와, 진리와, 자본이 다 담겨있다.
내가 본 세계에 의하면,
학문은,
공부는,
자명하게도, 앎은 머묾이었고.
결국 당신은,
그래서 나는 그렇다.
나라는 인간은,
이런 정의를 내리는 사람이다.
CHAP 01.
우리 아빠는 어릴 적 <동물의 왕국>을 자주 봤다.
아빠가 틀어준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UEFA 유로 2000을 보고 충격을 먹은 유치원생의 꼬마 삥이가
서방 사회를 동경하고, 철학과 역사와 문화를 사랑하여 어느 날에 인플루언서로서, 교육방의 리더로서 성장하였듯이,
아빠가 어릴 적 비디오테이프로 틀어준 '100만 마리의 누우 떼가 나일강을 건너며 사자와 악어와 치타와 표범에게 살아남던 장면들의 연속'은 내게 엄청난 경외로서 다가온 것이었다.
2025년,
여전히 YouTube에서
동물의 왕국을 시청하는
어른이 된 삥이라는 소년은,
생물을 사랑한다.
너무 사랑한단말이야앙.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돌고래는
매번 가장 먼저 링을 통과하고,
가장 높은 점프를 하여 그 무리군의 알파이자 오메가가 된다.
사람들은 환호하고,
생선이라는 화폐는 그 돌고래에게 향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돌고래는 조련사의 눈만 보기 시작한다.
그래,
돌고래는 링을 넘는 게 아니라,
사람의 기대를 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어.
알파가 되면 모든 걸 가질 수 있을 줄 안다.
먼저 먹고, 먼저 자고, 모든 암컷을 "소유"할 수 있어 보이니까.
아니, 오히려
알파 하이에나는 마음을 곯고,
베타 하이에나는 배를 곯는다.
알파 사자는 자유의 이방인들에게
암컷들과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고,
패배하면 사지가 뜯겨 죽는다.
선두에 선 기러기는
무리 전체의 공기 저항을 이겨내지만
방향을 틀 수는 없다. 대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앞에 선 기러기는
방향타가 아닌 "이미 정해진 방향을 버티는 알파"였기에.
사회적으로 흔한 말이 있다.
명예란, 존경의 자리란,
"합격한 날", "박수받는 무대"에서 도파민이 터지고,
그 순간을 제외한 모든 날이 지옥 같다는 말.
누군가 사랑을 주지 않으면,
그들은 무너지고, 괴물이 된다.
동물의 세계에서
알파가 버티는 이유는
수많은 암컷과 새끼들이 '안전하다'라는 확신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어린 자식에게
다 큰 자식이, 늙은 부모에게
이룬 내가, 덜 이룬 내 여인에게
'안전하다'라는 인식을 전해주는 때가
'행복'이라는 호르몬으로 유도된다는 논리의 증명인 것이다.
우리는 사랑이란 말로
감정을 포장하지만,
사실은 안전을 주는 존재에게만 마음을 허락하는 경향이 있다.
그 안전은,
우리 모두가 '사회적 성공'인 줄 알며 노력하지만,
알고 보면 '존재로서의 신뢰감',
그 하나가 눈물의 열쇠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유부남 유부녀들이 말하지.
"야~ 내가 알려줄게 ㅋㅋ 결혼할 사람은 그냥 확 느껴진다니까?ㅋㅋ 쀨이야 쀨"
CHAP 02.
사람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라고 한다.
하지만 때로는 동물보다도 더 억압된 삶을 살게 되는 순간이 있다.
왜일까,
동물은 링을 넘으면 생선이 오지만,
인간은 사랑을 얻기 위해 자기 전체를 링처럼 휘게 만들어야 되기 때문이려나.
예쁘게 웃어야 하고,
예쁘게 말해야 하고,
예쁘게 울어야 하고,
심지어 예쁘게 버려져야 한다.
때로 '예쁨'은
칭찬이기도 하지만,
가끔은 형벌이 되는 때가 있다.
나 자신이 예뻐지려는 노력과 별개로,
타인에 의해 예뻐져야 되는 때도 존재하기에.
그리하여 삶은
1+1=2 등과 같은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
즉, 학문은 공리가 있지만
삶에는 공리가 없는 이유가 이에 기인한다.
AI와 전문가들의 연합이,
'오답'을 내는 이유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우리는 가끔,
고양이의 얼굴을 가진 사슴처럼 살아간다.
순하지만 날렵하고, 예민하지만 사랑스럽고,
겁이 많지만 눈이 커서 더 잘 보인다.
그리고 야생에서는 멸종 위기에 몰리듯,
사람들은 때로 쇼윈도에 전시되기도 한다.
그게 안정이라 착각하면서.
사람들은 그 자들을 보기 위해
창 너머에서 감탄하지만,
정작 갇힌 자들은 창 밖으로 나가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그래도 예쁘니까.
예쁨은 곧 도덕이 되고,
그 도덕은 침묵으로 이끄는 때가 있다.
예쁨은 곧 기대가 되고,
그 기대는 피로를 부르는 때가 있다.
예쁨은 곧 투자가 되고,
그 투자가 곧 빚이 되는 때가 있더라.
우리는,
조련사가 아니라,
나와 같은 돌고래를 찾고 있었을 뿐일지도.
그래서,
자꾸 공부하고,
자꾸 운동하고,
자꾸 마인드셋 하고,
돈을 모으고, 불리고, 쓰면서
'나 같은 돌고래 어딨나~'하며 여정을 떠나다가
옆동네 쇼윈도 속에 갇힌
'나 같은 돌고래'를
그냥 바라만 보게 된다지.
CHAP 03.
종(種, Species)이란 무엇인가.
생물학자 에른스트 마이어(Ernst Walter Mayr, 독일 연방공화국)에 의하면
서로 번식이 가능하고,
서로 간에 자발적으로 번식 행위를 하며,
그렇게 해서 나온 자손이 번식 능력이 있는 무리
라고 말한다.
즉,
우리 인간이다.
나,
너,
우리가 그 종이다.
하지만,
종(種)이 종(奴)처럼 여겨지는 때가 있는데
상술했듯이 '예쁨의 미학'에 비자발적으로 갇히는 경우가 그럴 때일 것이다.
예쁨은,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 된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예쁨이 '나를 지키는 무기'가 아니라
'나를 가두는 자물쇠'가 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렇게 사명을 품는다.
"나는 당신네 같은 작자들을.."
"나는 그런 생각하는 당신네들을.."
아니,
사실은 "나 같은 미천한 종은."
결국, 자존이
갑자기, 자학으로.
양자역학이라는 '알약'이
매우 자명하게 필요한 순간이다.
때문에 인간은 '진정한 사랑'을 갈망하고,
결국 우리는,
'예쁨'이라는 껍질을 벗고 싶은,
단순한 본능을 가진 동물이 되어간다.
즉, "사랑",
즉, 관측자 효과에 의해 구원되는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인문학에서는 이를 "운명",
사회학에서는 이를 "결혼",
우리네 삶에서는 이를 "쀨이야 쀨 ㅋㅋ"라고 규정한다지.
CHAP 04.
내가 그 종(種)이었다.
나는 인간이다.
내가 그 종(奴)이었다.
나는 피지배층이다.
허나,
당신도 그 종(種)이었다.
당신도 인간이기에.
당신도 그 종(奴)이었다.
당신도, 상처받은 자였기에.
그리고,
우리가 그 종이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그럼,
묻는다.
우리는 이 관계를,
보이지 않는 흑막들을 뒤집기 위해
"역전의 서막"을 설계해야 하는가?
그럼,
뭐가 필요하지?
돈?
주식?
부동산?
견고한 지지층?
결속된 세력?
위대한 조력자?
압도적인 사고력?
감정의 메시지를 설계하는 능력?
아마 어떤 분은
"Yes, 혁명가즈아~"
하실 수도 있지만
나라는 인간은
"No, 이미 난 구원받았어."
라고 외칠지도 모르겠다.
내가 읽힌다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전자가 존재가 되는 순간인 것이니까.
내가 조종된다는 것은
누군가의 종이 되어 그런 것이 아니라
마치 신사임당처럼
현명한 어버이이자 어진 동반자가 됨을 의미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럼 뭐,
혁명은 개뿔,
이미 구원됐네.
그러네,
낙원이네.
에덴의 동산에 왔네.
무신론자이지만,
신(神)의 얼굴을 보아버렸네.
그러므로, 뱀의 말은
더 이상 믿지 않는다네.
뱀의 혀보다 달콤한 게 있었다네.
어떤 이들은
쇼윈도 속에 갇힌 '나와 같은 돌고래'를 보고,
너도 "고양이의 얼굴을 가진 사슴처럼 예쁘구나"라며 그를 해방시킨다.
창 밖에 나가는 법을 배우지 못했던 자에게,
창 밖으로 나가고 싶어지는 의지를 일깨워주는 감각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선배님들은,
이런 걸 바로 "운명" 그리고 "사랑"이라고 불러오셨던 것 같다.
그게 쌓여,
역사가 되었겠지.
역사책은 그걸 말씀해 주시려는 일종의 매게였겠지.
그러나
역사책을 읽지 않아도 우리는 알아서 사랑을 감각한다.
사랑은 본능이고,
나, 너, 우리는 본능을 품은 종이고,
감정 아래 종처럼 살아지며,
안전지대에서 행복을 누리게 될 테니까.
드디어,
쇼윈도 밖에서
"누리는 법"을 깨닫게 되는 순간인 것이다.
드디어,
노려보던 목표를,
누려보는 순간인 것이다.
어?
여기가 낙원입니까?
아,
그냥 지구였네.
이곳은 지옥이 아니라 지구였었네.
이곳엔 지옥의 판사만 있는 게 아니라 해방의 변호인도 있었던,
여기 자체가 낙원이었네~ %%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