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적 에세이
나는 겉보기에는 안정적인 직장에서 무난히 도태되지 않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비춰지는 1989년생 책임감 넘치는 소년 김지훈(필명)이다.
그러나 이미지 한 장 앞면을 살짝 들어 뒷면을 들어보면 나의 삶은 기구하고 처연했다. 초연하기도 했다.
나의 유아기는 부모의 거친 다툼을 반복적으로 보며 자라왔는데, 5살에 결국 엄마에게 작별 인사도 했다.
어린아이가 딱 무너지기 쉬울 때에 정말 다행히도 나의 진정한 부모가 나타나 나를 받아주고 키워주셨다. 이후 이를 악물고 세상에 나의 필요성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작은 성공의 경험들을 갈구했고, 늘 남들의 인정을 추구하는 학창 시절을 보냈다. 20대에는 이성과의 만남에 온 두뇌를 가동하며 철없는 시간을 보냈고,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초기 2년은 모자란 인성의 선배를 만나 가스라이팅에 시달렸다. 매일 퇴사를 되뇌었으니. 서른에는 집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무리하게 프로젝트하듯이 추진해 버려 양 당사자 모두 큰 아픔과 상처를 겪었고, 아내와 나는 서로를 난도질하는 데 점점 더 정밀하고 고도화된 무기로 변모해 갔다. 설상가상으로 나의 이성을 잃어버린 과도한 레버리지 투자로 여러 번의 마진콜과 청산까지 당하며, 나는 더없이 비참하고 보잘것없는 무기력하고 무쓸모의 남자였다.
나름의 별 일들로 성장통을 겪어온 37살의 나는 거창한 인생의 개선과 욕심 넘치는 꿈을 꾸기보다는 당장의 주어진 한 시간을 누리며 사는 것으로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다. 오늘날 나의 가장 소중한 시간은 아들과의 시간이다. 아마도 이 행복을 위해 내가 지금껏 단단해질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나 싶다. 매분 매초 아이와의 수다와 놀이에 진심으로 빠져들며 더 없는 가득 참을 만끽하고 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나의 행복 충만함을 모두 아이에게 맡겨버리고 의존하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를 경계하게 된다.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아이는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끌어갈 수 있는 순간이 올 것이고, 그때에 내가 상실감에 허우적거리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나를 위한 작은 시간들을 주기적으로 선물할 줄 알아야 한다 생각했다.
아직 가족 또는 사회에 속해서 얻는 행복의 종류 말고는 오로지 나 스스로 진정 즐기고 행복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깨우치지 못하고 있으나, 이를 알기 위한 시행착오 과정의 첫 걸음으로서 글을 써 보기로 하였다.
글쓰기 중에서도 최초의 도전이 본 연재 브런치북 "89년생 김지훈"이다.
"89년생 김지훈"이라는 제목의 배경은 "82년생 김지영”을 모티프 한 것으로, 해당 작품이 그 또래 여성들의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듯이, 나 또한 또래 대한민국 남자들의 공감이 되는 스토리를 전달해주고 싶은 욕심으로 짓게 되었다. 남자라는 생물은 좀처럼 자기 어려운 상황을 일일이 그리고 상세하게 열거할 수 있는 역량도 없고, 그럴 의지도 없기 때문에, 이 책에서 열거되는 에피소드들이 그들의 안줏거리가 되어 소소한 공감과 위로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제부터 나의 과거 기억들을 찬찬히, 면밀히 헤집으며 담담하게 조명하고자 한다. 독자께서 안면 없는 사람의 삶을 시간 순으로 읽고 싶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에피소드의 시간대 이동은 작가의 재량에 따라 구성하여 연재해 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