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48개월 인생–(1) 아버지에 드롭킥을 드리다

엄마와 함께 했던 시간 (~1993)

by 아남과소년

나의 비효율적인 뇌가 37살까지 굳이 저장하고 있는 최초의 기억은 3~4살 언저리로, 이때의 기억은 아마도 내 성격에 큰 영향을 끼친 역사적 사건들이지 싶다. 어린이집을 어떻게 다녔는지 친구는 누구였는지 아무 기억이 없으나, 뇌가 선명하게 기억해주고 있는 단편 드라마들이 몇 개 남아 있다.


첫 번째 3살 기억은 아버지에게 회심의 드롭킥을 꽂았던 에피소드로 시작하겠다.

아버지가 밤늦게 회사 일을 마치고 술에 얼큰히 취해 집에 들어왔다. 우리 집은 피아노 학원 (당시 어린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다닐 정도로 선풍적이었던)이었는데, 엄마는 피아노 원장으로 학원을 운영했고, 학원 구석 쪽에는 세 식구가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 거실에서 나는 엄마와 함께 멍하니 티브이를 보며, 아버지가 들어오실 늦은 밤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현관문이 열렸고, 아버지는 양복도 벗지 않고 붉은 얼굴로 한 껏 취해 엄마를 껴안았고 그대로 침대로 돌진하였다. 엄마는 간지럽히는 아버지에게 "아우 왜 이래 진짜!"


그러나, 아버지는 몰랐다. 내가 그때 그 시간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으로 정신교육 되어 있었을 줄은. 엄마의 주입식 교육은 어린 내게 꽤나 효과적이었다. 아버지의 반복적인 늦은 귀가로 엄마는 기분이 유쾌할 수가 없었기에 아버지를 향한 비난과 본인이 느끼는 외로움을 자주 표출하셨다. 도화지 같은 하얀 어린이는 엄마의 성난 붓으로 그림이 계속 그려진 것이다.


엄마의 감정이 스펀지처럼 흡수되었던 나에게 엄마를 괴롭히고 간지럽히는 아버지는 재빠르게 물리쳐야 할 악당이었고, 나는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정의감으로 무장된 용사였다.


엄마는 이윽고 "으악 저리 가! 지훈아 아 엄마 좀 도와줘!”라고 말하며, 나의 충만한 정의감에 불을 붙였다. 그 즉시 용사가 된 나는 침대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점프를 한 뒤 중력을 모아 모아 아버지의 허리에 두 발로 정확하게 드롭킥을 꽂았다. 아무리 몸무게가 적은 어린아이여도 무방비의 성인 남성 허리에 그 정도 충격은 위험했다. 발끝에서 제대로 꽂혔다는 감각이 뇌를 강타하며, 아버지의 고함 섞인 비명이 들렸다.

나는 악당을 물리쳤다는 쾌감으로 드하하 웃었다. 사실 곧장 마음속을 가득 채운 감정은 부모에게 하면 안 될 공격을 했다는 죄책감이었다. 그러나 용사에게 죄책감은 어울리는 감정이 아니기에 “어떠냐. 엄마를 괴롭힌 악당아!"라며 용사의 정체성을 유지하였다.


진심으로 통증을 호소하고 있는 아버지를 보자, 마음이 계속 약해졌지만 엄마는 정말 고소하게 웃었고, 나는 엄마를 지킨 수호자라는 타이틀로서 내 죄책감을 뒤덮었다. 마음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혼내길 바랐으나,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어떤 화도 내지 않으셨다.


부모를 공격하였고, 그리고 해소되지 못한 어린 죄책감은 나의 몇 안 되는 3살의 기억을 생성해 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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