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는 과정도 소중한 목적이 되는 사람이 있다.

by 한지원

제 글을 읽으시는 독자는 이미 주지하시는 사항이지만 다시 부연 설명하면, 시골 버스는 목적지까지 한 번에 직선으로 가지 않는다. 중간중간에 외딴 마을을 돌아서 목적지까지 간다. 그것은 시골버스가 존재하는 이유 이기도 하다. 신체 곳곳을 연결하여 생명을 유지시키는 실핏줄처럼, 마을과 마을을 이어 시골 소도시가 소멸되지 않게 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그러나 거리가 긴 노선은 짧은 노선의 목적지를 노선의 선상(과정)으로 거치면서 최단거리로 지나가 버린다.

누구에게는 지나치는 과정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소중한 목적지가 되는 것이다.

이번 달 나의 노선은 두 가지다.
첫째는 괴산을 출발하여, '광석'이라는 곳과 '장연'을 거쳐 다시 괴산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2호선과 같은 방식의 순환노선과 '괴산'에서 '감물'을 거쳐 '목도'를 왕복하는 노선이다. 물론,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중간에 외딴 마을을 들렸다가 '목도'로 간다. 괴산에서 '목도'로 직접 가게 되면, 채 30분이 걸리지 않는다. 25분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바다의 밀물이 갯벌을 훑듯이 마을이란 마을을 모두 들러 목도로 가게 되면, 최소 50분이 소요된다. 시골버스의 승객들은 거의 모두 이 사실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그 시간대의 그 노선버스를 타는 사람도 있다. 산골의 깊은 가을을 만끽하고 싶어서...
"이 버스 목도 가나요?"
칠십 대 아주머니 목소리다,
자세하게 어디를 거쳐서 간다고 말씀을 드려야 되었으나, 시골 어르신 치고 거의 아는 내용이고 그날따라 몸이 피곤도 하여 한 마디만 했다.
"네!"
버스는 터미널을 출발하여 부지런히 '목도'를 향하여 가고 있었다. 아니, 목적지만 '목도'이지, 시골 외딴 마을을 드나들고 있었다.
'괴산-감물-목도' 이렇게 가는 것이 최단거리지만, 나는 괴산-감물-박달리-주월리-율리-하문리-이담리-목도 요렇게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따라 유람을 하고 있었다. 목도가 지나가는 과정 중 하나인 사람에게는 속이 터지는 노선일 수밖에...
"아니, 목도는 도대체 언제 가요?"
'하문리'를 들어서는데 칠십 대 아주머니의 복장 터진 감정이 실리는 질문이다.
"이렇게 꼬불꼬불 온다고 했으면 안 탔지!"
내가 자세하게 설명 못한 것은 나의 불찰이지만, 듣기에 따라서 상당히 기분 나쁜 발언이었다.
버스 앞 유리창에 음식점 메뉴 써넣듯이 쭉 걸려있는 행선판은 못 보았는지, 늦은 밤 방배동 룸살롱 골목의 술집 간판처럼 버스 이마빡에 번쩍거리는 전광판은 안 보이는지... 아니면, 눈을 감고 버스에 올라탔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오늘 중에는 가겠쥬? "
시골 버스기사의 뻔뻔한 대답.
"어떻게 해~드릴까~유? 택시 타고 가시게 내려드릴까~유? "
삼일 전에 의사의 고혈압 진단을 받고, 약 처방을 받아 태어나서 처음으로 혈압약을 먹기 시작했다. 혈압이 떨어지니 나의 말투가 달라졌다. 느릿느릿 충청도 사투리를 섞어가며 상대방 염장지르기 신공이 나타났다. 내가 봐도 신기하다.
중국 황하(黃河 ;황허) 강 상류에 등용문(登龍門)을 통과 못하여 용이 되지 못하는 물고기들이 용문(龍門) 계곡에 득시글 하다고 하더구먼, 이 괴산 바닥에 용이 되지 못한 시골버스 기사가 오래 묵어 능글능글한 이무기가 되었나?
'저 아줌마 열 좀 받으시겠는 걸...'
마음속으로는 아줌마가 안돼 보였지만 결코 내 잘못은 아니다.

의사에게 고혈압 진단받는 날 이제부터 열 받지 말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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