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녀석

by 한지원

그 녀석은 고등학교 학생이었다.

일 학년 때부터 지켜봤으니 꼬박 삼 년을 본 셈이다. 버스에 탈 때에는 항상 조수석 맨 앞자리에 앉았다. 보통 학생들은 버스를 타면 맨 뒷자리로 가는 것이 정석인데...

버스 타는 것을 좋아해서 그러려니 생각했다.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공부는 별로 열심히 하는 것 같지는 않았고, 학교 성적도 썩 신통한 편도 아닌 것 같았다.

그걸 버스기사가 어떻게 아느냐?

성적이 괜찮거나, 집이 원거리인 친구는 학교 기숙사 생활을 한다. 이도 저도 아닌 친구들은 야자(야간 자율학습)를 하고 밤늦게 야자 버스를 타는 것이 보통인데...

이 녀석은 학교가 파하기 무섭게 집부터 가는 놈이다. 그 녀석에게는 자존심이 좀 상하는 질문이지만 성적을 대놓고 물어봤다.

" 역사 선생님을 하려면 사범대학 역사교육학과를 가거나, 일반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해야 할 것 아닌가? 너 4년제 대학 갈 실력은 되냐? 반에서 몇 등급인데? "

우물거리면서 확실한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 정황상 4년제 대학 갈 실력은 안 되는 것이 분명했다.

이런 대화가 오고 간 것은 그 녀석이 고3이 되어

수능이 한 육 개월쯤 남겨놓은 시점이었다.

특이한 점은 나와는 대화를 하는데, 학생들끼리는 말을 섞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는 왜 뒷자리 학생들 하고는 아는 척을 안 하니? 모르는 친구들인가? "

"아니요! 별로 친하지 않아서 그래요!"

"역사 선생님이 되고 싶다며.... 그러려면 4년제 대학을 가서 역사를 전공해야 하는데 공부는 언제 하냐? 집에 가서 열심히 하기는 하나?"

"아닌데요!"

순진하고 착하기는 한데, 도무지 대화가 되는 않는 녀석이었다.

'이거 욕망만 있지, 노력은 안 하는 놈 이구만!'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입 바깥으로 새어 나왔다.

물론, 시끄러운 버스의 엔진 소음 덕분에 그 녀석이 내 독백을 알아듣지는 못했을 거다.


그 녀석의 모친 하고 함께 버스를 탈 때면, 인사조차도 안 하는 것은 물론, 나를 아는 척을 안 하는 것이었다. 그런다고 섭섭하지는 않았지만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너는 엄마하고 같이 타면 왜 아저씨를 모른 척 하니? "

"엄마가 창피해서요!"

나이는 40이 좀 안 되었고, 뭔가 정신적으로 부족해 보이는 여자였다.

아버지는 살아계셨으면 65세가 됐었을 거라 하였고, 서울에 큰 어머니와 아들 두 명이 살고 있다고 했다. 나이는 삽 십 대 중. 후반... 그 두 명은 그 녀석의 배다른 형제였다.

엄마는 아버지의 첩(妾)이었고, 녀석은 자신이 서자(庶子)라는 사실과 정신적으로 부족한 친어머니가 부끄러웠던 거다.


"어머니 애가 선생님이 되고 싶어 해요! 가능한 한 대학을 보내주셔야 합니다."

그 녀석이 하도 안쓰러워서 주제넘은 조언을 그 여자에게 했다.

그 여자는 자기 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군대를 가야 한다고 반복하여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그 두 명의 형들이 그렇게 하라고 했다고 한다. 나는 그 여자가 나의 말뜻을 알아들을 때까지 몇 번 더 얘기했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면서 형들에게 다시 얘기한다고 그랬다.


그 녀석이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몇 개월이 지났을까...

증평 우체국 앞 승강장에서 그 녀석이 승차했다.

칙칙한 교복을 벗고, 말끔한 사복 차림이었다.

등에는 책가방같이 보이는 배낭을 메고, 한 손에는 원두커피를 담은 큼지막한 플라스틱 컵을 들고 있었다.

" 안녕하세요!"

자신감 있는 표정과 밝은 목소리로 나에게 인사를 했다. 나는 그 녀석이 대학에 진학한 것을 직감했다.

"대전에 있는 ㅇㅇ전문대예요!"

"서울에 있는 형들이 보내줬어요!"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읊어댔다.

그리고는 쏜살같이 버스 뒷자리로 가서 앉았다.

'하! 녀석 많이 변했네!'

학교 기숙사에서 지내다가 집으로 가는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그 녀석이 사는 마을에 이르자 버스 정차벨이 울리고, 정차한 버스에서는 나에게 잘 가시라는 한 마디 인사도 없이 그 녀석이 내렸다.


한 때의 객기로 저질러놓은 부친의 실수를 만회하려는 두 아들들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천 터미널로 돌아온 시골 버스기사는 다음회차의 운행을 준비하려다가, 그 녀석이 앉았던 자리의 근처 버스바닥에 흥건히 쏟아놓은 커피를 발견했다.

'그래서 인사도 안 하고 도망치듯 내렸구나! 아이고 녀석 촌스럽게 시럽은 우라지게 많이 넣었네! 끈적거려서 잘 안 닦이잖아! "


대걸레로 바닥을 문지르던 시골버스기사는 버스 안을 가득 채우는 향긋한 커피 향처럼, 본인의 얼굴에 미소가 환하게 번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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