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버스의 노선은 매회 같은 노선이면서도 다른
노선이다. 매회차마다 도는 방향이 다르거나, 들르는 마을이 다르다. 특히 벽지(僻地) 노선인 경우, 마지막 회차는 승객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노선이 탄력적으로 운영된다. 쉽게 풀이하면, 승객이 있으면 벽지 마을에 버스가 들어가고, 없으면 안 들어가고... 그래서 노선길이가 고무줄처럼 길어졌다, 짧아졌다 이런다.
이러하니 기사가 보는 코스별 시간표에 '승객 없을 시 ㅇㅇㅇ패스'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버스기사가 실수하지 않도록....
버스를 배차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노선이 눈에 익지 않았을 시절이다. 버스노선표를 눈여겨보지 않고 있다가, 승객이 없을 시 외딴 마을에 들어가지 말라는 문구를 인지하지 못하고 마지막 회차에 버스를 몰고 깜깜한 시골 마을을 부지런히 돌아 나오는데....
마을 어귀에 있는 어둠 컴컴한 승강장에 검은 물체가 벤치에 구부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누가 보따리를 승강장에 두고 갔나? '
승장장에 버스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보따리가 꿈틀거리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아니, 사람이네! 이 시각에 웬 승객...'
순간 머리가 쭈뼛거리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예전 선배 기사의 말이 생각났다. '한 밤에 산골 승강장에서 승차하는 사람은 둘 중 하나다, 미친놈이거나, 귀신이거나'
버스를 세우는데 가까이 보니, 여자다.
너무도 무서워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버스에 오를 때 힐끗 보니, 빨갛게 충혈된 눈에, 짚 수세미 같이 산발한 머리, 그리고 입가에는 핏자국 까지...
'전설의 고향 괴산군편'이라면 딱 어울릴 상황이었다.
여담이지만, 덩치는 산만한 멧돼지 몸매로 덩치값 못하고 귀신을 무서워하는 놈이 대한민국에 나 혼자인 줄 알았는데, 요즘 청와대에 있는 귀신이 무서워 청와대에 못 들어가고 용산에 눌러앉은 놈이 있다고 하던데... 참 한심한 일이다.
어찌 되었건 버스에 올라 운전석 뒤 두 번째 자리에 앉았다.
룸밀러나 버스 실내에 있는 블랙박스 카메라에도 안 잡히는 자리...
얼마나 달렸을까? 어디서 흐느끼는 소리가 엔진 소리에 실려서 내 귀에 들려왔다. 가뜩이나 새가슴인 시골버스 기사는 숨도 못 쉴 지경이었다.
"아주머니 흐느끼지 마시고 그냥 펑펑 우세요! 제가 무서워서 운전을 못하겠어요! "
용기를 내어 한마디 했다.
울음소리가 큭큭거리는 소리로 변하더니 애써 참는 웃음소리로 변했다.
"오늘 아저씨랑 주도권 타이틀 매치 한 판 하셨습니까?"
" 야! 오늘 그 인간하고 사생결단을 낼라고 했는디유... 그래두 예전에는 아삭이만은 했어유. 그런데 시방은 쪼그라들어서 청양만 한게 달린 놈이, 꼴에 사내라고 손찌검을 하네유! "
아주머니가 보통은 아닌 것 같았다.
너구나 부부간의 내밀(內密)한 이야기를 처음 본 기사한테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아저씨와는 초등학교 동창으로 동갑내기라 했다. 이십 대 초반에 변변한 집도 없는 곳에 시집와서 손이 갈퀴가 되도록 일을 하였다고... 고추 농사를 주로 하였는데, 아삭이고추와 청양고추도 심는다고 했다. 그래서 아저씨 거기를 고추로 비유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식은 2남 2녀를 시집. 장가보냈고, 얼마간 땅도 장만하였다고 했다. 얼마 전 집도 새로 지었다는데...
이놈의 영감태기가 모두 손에 쥐어 틀고 앉아서 수전노(守錢奴) 짓을 한다고 했다.
" 두 분의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부부금실이 좋은 신 거 같은데요? "
" 올해 칠십 이유! 호호호 "
약간은 부끄러운 웃음소리다.
" 내일 아침 아저씨한테 전화해보시고 반성하는 끼가 보이면, 못 이기는 척하고 집으로 가시고, 큰 소리를 내시면, 세수하시지 말고 청주에 법원 근처에 '이혼 전문'이라고 간판 걸린 변호사 찾아가 이혼 소송하십시오! 재산 분할도 해달라고 하시구요! 그리고 고추 얘기하십시오! 그거 이혼사유된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세수는 왜유? "
"얼굴에 피딱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어야지 변호사가 사태가 심각한 줄 알고 아저씨한테 많이 받아줄 거 아닙니까? 병원에 가서 진단서도 끊으시고요! "
"그러다 진짜 이혼하자고 하면 헤어져야 하남유? "
"뭐 아삭이 만한 거 달린 놈 만나서 팔자 고치시는 거죠!"
" 호호 기사양반이 말씀을 재밌게 하시네유! 호호호..."
"아주머니 그렇게 울다가 웃으시면, 몸이 변하는데..."
"하하하"
"호호호 "
아주머니는 그렇게 마음이 풀어져서 읍내에 내렸다.
돌아오는 8월 31 일이 아내와의 28주년 결혼기념일이다. 나도 다시 재계약을 해야 하는데, 내가 지금 남의 집안 청양고추 걱정할 때가 아니다.
' 아~ 나이 육십에 이 꽈리 꼬추 어쩔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