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에서 목도를 가는 노선이 있다.
이 노선의 중간에 "대상동"이란 마을을 거친다.
이 마을의 승강장에서 종종 술 취한 아저씨가 한 명 타는데, 술이라도 한잔 거하게 걸친 날이면 버스기사들에게 눈을 부라리면서 시빗거리를 찾곤 했다. 그리고 얼마나 아는 척을 하는지,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사람의 심리 등을 포함하여 이 친구가 모르는 일이 거의 없다.
남이야 듣건 말건...
버스에 타는 순간부터 내릴 때까지 떠든다.
시골 버스기사는 그래서 피곤하다.
한 두 번 윽박지르기를 하여 조용히 가는 날도 있지만, 이 친구가 버스에 타는 날이면 그날은 하루 종일 풀약 맞은 논두렁의 잡초처럼 기분이 누렇게 변한다.
"형! 거! 대상동에서 버스 타는 꼴통 아세요?
그 인간 도대체 몇 살이나 먹었어요?"
"아! 그놈 술주정꾼... 한 기사보다 두세 살 어릴걸! 왜 한 기사한테 뭐라고 시비해? 자꾸만 신경 쓰이게 하면, 혹시 영길이 아냐고 물어보고, 안다고 하면 한 기사가 친구라고 해! 그러면 조용해질 거야! 하. 하. 하"
읍내에 살았다고 했는데, 이름은 ㅇ영길...
부친이 경찰관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걸 믿고 그랬는지 동네 얘들을 모두 줘 패고 다니는, 괴산에서는 아주 유명한 건달쯤 되는 놈이었다고...
나이는 나하고 동갑내기라고 하니, 올해로 쉰아홉이 됐을 거라고 했고, 지금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 또래 학생들치고 그놈에게 시달리지 않은 학생이 없을 정도로 악명이 높았다는데...
결국, 법무부가 운영하는 교정시설에도 몇 번 들락거렸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ㅇ영길" 하고 동갑이고 친구였다고 하면 그 술주정꾼이 다시는 시비 붙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덧붙여서 그 술주정꾼이 영길이를 엄청 두려워했다고 했다.
선배 기사에게도 시비를 붙길래 " 내가 영길이 선배인데, 너 영길이 아냐? " 이렇게 물어봤더니
"저~ 영길이 혀~ㅇ 이요! " 하고 얼굴빛이 변하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되묻는데, 그놈을 두려워하는 눈치가 역력해 보이더라고 했다.
그다음부터는 선배 기사에게 "형님! 형님! "그러면서 시비는커녕, 항상 깍듯하게 인사를 하더란다.
시골 버스기사도 이름을 잊어먹지 않기 위하여 스마트폰 메모장에 "ㅇ영길"이라고 적어서 갖고 다니면서 이제나 저제나 때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기회가 오지 않길래 우리 기사 중에 예전에 좀 노셨던, 발이 넓은 선배 기사에게 한 번 테스트도 해 볼 겸해서 물어보았다.
" 형! 영길이 알아? ㅇ영길이!..."
순간 얼굴빛이 바뀌면서...
"한 기사가 그놈을 어떻게 알아? "
"내 동기거든..."
그 선배 기사는 더 이상 나에게 질문이나, 답을 하지 않았다. 필시 그놈하고 좋지 않은 추억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분명히 효과가 있는 것이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드디어 그놈이 내가 운행하는 버스에 탔다.
나에게 말을 걸기 만을 기다리며 영길이를 물어보려고 기회만을 엿보고 있는데...
어라!~ 이놈이 아무 소리 없이 목적지까지 쥐 죽은 듯이 조용히 가는 것이 아닌가?
더구나 버스에서 내릴 때는 아주 낮고 공손한 목소리로 " 수고하십시오! " 이렇게 인사까지 했다.
원래 목소리가 하이톤에 거쉰 음색이었는데...
그야말로 개과천선(改過遷善)이란 사자성어를 몸소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그놈이 갑자기 왜 변했는지는, 나에게 노하우를 전수시킨 선배 기사에게 자초지종을 들을 수가 있었다.
며칠 전에 그 선배 기사의 버스를 그놈이 탔는데,
17호 기사는 당신보다 나이가 더 먹은 형이고 더구나 영길이 친구이니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귀띔했다고 했다.
이로서 서울 토박이가 괴산 읍내에 살았던 'ㅇ영길'과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하여간 영길이 덕분으로 내가 편해지게 생겼다.
"한 번 본 적도 없는.... 이름만 아는 영길 씨! "
" 어쨋든 고마워! 언제 만나면 내가 밥 한 번 사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