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나 중장비의 조종석을 영어로 콕핏(Cockpit)이라고 부른다. 주로 항공기의 조종석을 일컫는 말로 쓰이는데, 사진으로 봐서 버스 운전석이 항공기나 전투기 조종석보다 좀 헐렁하게 보인다. 그러나 항공기 콕핏보다 부족한 것은 하나도 없다.
스티어링 휠을 기준으로...
좌측에는 승객석의 각종 등화 스위치와 히터 및 에어컨 조절기, 노선 안내기와 주렁주렁 매달린 노선 코스 표가 있고, 우측으로는 버스 문 개폐 레버, 공조기 조절기, 버스 내 방송시설(이건 거의 사용하지 않음, 그냥 소리 지르는 것이 훨씬 빠름), 요금 단말기, 노선 입력기, 환전기, 돈 통 등등...
그리고 수많은 거울들, 사이드 미러 네 개, 버스 안을 구석구석 감시하는 룸 미러 네 개, 합계 여덟 개에 달하는 거울이 있으나, 정작 버스 운전사 본인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거울은 하나도 없다.
더구나 요즘의 버스는 아무리 촌스런 시골 버스라도 컴퓨터가 장착되어 있어, 버스 운행에 발생하는 각종 정보를 LED창을 통하여 버스 운전자에게 보여준다. 브레이크의 에어 압력, 배터리의 충전 상황, 연비, 엔진의 현재 컨디션 등...
특히, 노선 안내기와 연결되어 있는 GPS(
Global Positioning System)는 버스가 제 노선으로 운행을 하는지, 노선 이탈은 하지 않는지 실시간으로 군청 교통과와 버스 회사 사무실로 송신한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빅 부라더와 동급이다.
이렇게 괴산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는 시골 버스는 영화 탑건에 등장하는 전투기의 첨단 장비에 비해 꿀릴게 전혀 없다.
또한, 시골 버스기사도 콜사인(Call Sign) 메버릭의 톰 크루즈에게 주눅이 들 이유가 없다.
내가 유체역학의 양력(揚力, lift)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영화에 등장하는 '전투기(Lockheed Martin F-22 Raptor)의 엔진 효율을 계산하라' 고 해도 톰 크루즈보다 잘할 자신이 있다.
단지, 하루에 거의 대부분을 버스 운전석에 앉아서 생활을 하다가 보니 뱃살에 고소한 지방질이 켜켜이 쌓여, 전투기가 급작스런 기동(機動)을 할 때 발생하는 중력(重力, gravity)을 전투기 파일럿처럼 견디지는 못 할 것이다.
전투기에는 순간적으로 추력을 향상하기 위해 후연기(後燃機, After burner)를 가동시킨다. 전투기가 애프터버너를 가동시키는 순간, 파일럿이 정신을 잃을 정도의 'G' 값이 상승한다고 한다.
버스에도 이런 비슷한 기능을 하는 과급기(過給機 : 터보 차저, Turbocharger)라는 것이 달려 있다.
괴산 같이 고개가 즐비한 산골마을의 도로라던가, 장날과 평일의 승객량이 현저히 차이가 나는 경우에 엔진에 붙어있는 이 터보가 큰일을 한다.
그러나 차량이 많이 노후화되고 보니, 엔진오일로 윤활되는 터보차져의 이음새 부분에서 누유 되는 경우가 있어, 터보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기도 한다. 때문에 버스의 가속 및 산길의 언덕 등반도 간신히 하고 있는 주제에, 버스기사가 1G 이상 중력가속도를 받을 일이 있겠는가?
그리고 시골 버스기사가 톰 크루즈보다 좀 못 한 게 있다면, 외모 정도...(물론, 아내에게 물어봐야 되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신들의 자리가 있다.
기계를 만지는 기술자라면, 기계 앞의 장소가 그의 콕핏일 것이고, 책상 앞에서 서류를 만지는 직업의 소유자라면 그 책상 앞이 자신의 콕핏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콕핏에서 세상을 본다.
시골 버스기사는 운전석에서 지나가는 행인들을 관찰하거나, 승객들을 룸미러로 쳐다보면서 나의 잣대로 그들을 재단한다.
판사는 재판정에서 원고와 피고를 내려다 보고, 교수는 강단에서 학생들을, 목사는 설교단에서 신자들을 내려다보면서...
서울역 지하도의 노숙자들은 지나가는 행인들을 올려다보면서 자신을 비하하고...
콕핏(Cockpit)의 어원을 보면 찾아보면, Cock(닭) + Pit(우리), 즉 닭장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영국 해군의 조타수 명칭(콕슨)과 발음 비슷해서 사용했다고 한다.
우리 모두는 어쩌면 닭장 속의 닭처럼 사육당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주인이 주는 모이를 쪼아 먹고, 매일 알을 낳으며, 새벽이 되면 울기도 하고... 그러다 때가 되면 삼계탕이나 치킨으로 변하기도 한다.
시골 버스기사는 자유의지로 본인의 운명을 결정하는 인간이길 원한다.
버스 운전석에서 내 의지대로 갈 길을 결정하면 된다. 어제 갔던 길이 아닌 다른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