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버스요금 내십시오!"
버스에 승차해서 자리에 엉덩이를 붙인 지가 얼마가 지났을까? 기사의 레이저가 나오는 눈초리를 외면하고 창밖만 쳐다보고 딴청을 피우시는 할매에게 한 마디를 했다.
물론, 그 사이 버스를 출발시키지 않음은 당연하다.
이런 때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데,
하나는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버스비 내는 걸 깜빡했네! "이고,
또 하나는 "그깟 천오백 원 누가 떼먹나? 몇 푼 되지도 않는걸..."
이럴 때 기사의 답이다.
첫 번째 경우의 답 " 젊은 저도 깜빡깜빡하는데 나이 드시면 그럴 수 있죠!"
두 번째 경우의 대답 " 차라리 떼 잡수세요! 버스 운행 중에 버스비 낸다는 핑계로, 걸어 나와서 내리고 싶은데 내려달라고 하지 마시고..."
그리고 두경우 대화의 억양(抑揚)과 음색(音色)이 확연히 다르다. 첫 번째는 부드럽고 웃는 듯한 목소리로, 두 번째는 거칠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버스기사가 상황에 따른 연기(演技)를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아무리 감정을 억제하려고 해도 몸이 따라주지를 않는다. 마음속의 감정이 그대로 표출되는 것이다. 버스기사는 그 한 마디를 내뱉음으로써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
그러나 후자의 승객들에게는 버스기사의 기분 따위는 안중에 없다. 오롯이 자신의 목적을 관철하기 위하여 버스기사와의 말싸움 정도는 별로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다.
두 눈에는 전투의지가 활활 타오르는 것이 느껴지며, '네가 아무리 그렇게 말하여도 나의 의지는 꺾이지 않는다! '는 결기가 얼굴에 보인다.
이쯤 되면, 자존심 싸움이 된다.
버스기사와 시골 할매와의...
버스기사가 졌다.
더 이상 말싸움을 하기가 싫어, 요금을 받지 않고 그냥 버스를 운행하고 있는데...
"헤! 헤! 기사양반 나 조 앞다리께 좀 내려줘유!"
돈통에 떵끄렁하고 동전 떨어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 얼굴을 돌려보니 실랑이하던 그 할매다.
버스기사가 운전에 정신이 팔려 전방(前方)만 주시하는 사이에 벌써 걸어 나와 기사 옆에 서 계신 거다. 물론, 그러리라 예상은 했지만, 막상 일에 닥치니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끓어오르는 감정을 삭히고, 이성적으로 대처하기로 했다.
" 어르신!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됩니다.
내리실 곳을 미리 말씀하시면 가능한 한 어디든지 내려 드릴 테니 제발 좀 자리에 앉아 계세요! 제가 어르신 안 내려드리고 모시고 가도 써먹을 때도 없어요!"
"호, 호, 호 알았어유! "
시골 버스기사의 진심이 통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났다.
다시 그 노선...
터미널 홈에 버스를 대고 환전을 하기 위하여 사무실에 올라갔다가 일을 마치고 버스에 올라보니 대 여섯 명의 승객이 미리 버스에 타고 있었다.
버스요금 단말기와 돈통에 있는 돈의 액수를 보니 한 사람이 빈다.
" 버스요금 안 내신 분 요금 내세요! "
모두들 딴청을 피우시며 감감무소식...
한 번 더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그냥 출발했다.
어디쯤 갔을까...
" 땡그랑! "
돈통에 동전 떨어지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옆을 돌아보니 이틀 전 그 할매다.
' 에고 그러면 그렇지! 진심은 개뿔....'
모든 물체는 자신의 운동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다. 정지한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 하고, 운동하는 물체는 원래의 속력과 방향을 그대로 유지하려 한다.
이렇게 물체가 외부의 힘을 받지 않는 한 정지하거나 동일한 운동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는 상태를 물리학 용어로 관성(慣性)이라고 한다.
그러나 관성이 꼭 물질세계에만 존재할까?
여러분들은 이런 의문을 해본 적이 없으신가?
관성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면 타성(惰性, mannerism)이 된다.
사람의 습관이나 버릇도 관성의 일종이다.
매일 술 먹던 버릇이 있던 놈은,
국가의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에도,
윗동네에서 미사일을 쏘는 날도 술을 먹어야 된다. 주변에서 아무리 술 먹지 말라고 진심 어린 충언(忠言)을 해도 고치기 힘들 거다. 수 십 년 동안 해 온 버릇이니까...
그 할매도 마찬가지다.
수십 년을 그렇게 버스를 타고 다니셨는데, 기껏 삼 년 근무한 버스기사의 충고로 행동이 바뀌겠는가? 그 할매와 그놈은 동급으로 취급해야 한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나를 고쳐야 한다.'
요즘 유행하는 말 이란다.
그런데 도대체 나를 어디를 어떻게 고쳐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