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사료와 버스기사

by 한지원

예전 시골 외가 할머니 집에는 꼭 개 한 마리가

마당을 지키고 있었다.

그 개 이름은 메리, 쫑, 혹은 도꾸 등 셋 중의 하나일 가망성이 크다. 영국의 메리(Mary) 여왕이나, 존(John)등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면 기겁을 할 노릇이다. 차라리 도꾸(dog)라는 이름은 실용적 이기나 하지...

1,800년대에 미국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던 이름을 기르던 개 이름으로 지으셨는지 이유는 알 수는 없지만, 우리의 부모님 세대들은 서양사람들을 근본이 없다고 여겨, 그 사람들과 개를 동급으로 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물론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반려견에게 붙여주는 서양식 이름하고는 풍기는 이미지는 다르지만, 지금도 꿋꿋이 고향 시골집 마당을 지키는 개들이 각 집마다 한 마리씩은 꼭 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지만, 예전에 식구들이 많은 시절, 잔반(殘飯)을 처리하기 위하여, 혹은 복(伏) 날 아버님들 영양보충용으로 개들을 키웠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매리, 쫑 들은 먼저 돌아가신 영감탱이에 대한 험담을 잘 들어주는, 할망구의 말동무로부터 마당 한편에 정성 들여 심어놓은 고구마를 멧돼지들로부터 지키기 위한 파수꾼에 이르기까지, 도시에 사는 외모만 가꾸는 애완견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임무를 띤, 어르신들의 가족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오히려 명절 때에 얼굴 한 번 비치는 자손들 보다도, 외로운 시골 생활의 반려자로 자리매김 한지 오래다. 그러나 그렇게 귀중한 우리의 매리, 쫑들을 먹일 밥이 이제는 없다. 대부분의 시골 노인들이 혼자, 혹은 달랑 두 분만이 생활을 영위하시니, 매리, 쫑에게 먹일 잔반이 나오질 않는다.


" 개를 멕이질 말던지..."


청천 터미널에서 버스에 오르시는 할머니의 푸념이다. 그것도 시골 버스기사가 잘 듣게 큰 소리로...

앉아 계시던 승강장 벤치 옆에는 큼지막한 개 사료 한 포대가 기대어 있었다.

아마 버스가 도착하기 전, 사료를 파는 가게의 사장님이 먼저 옮겨놓은 모양이었다. 힘없는 노인이 십여 킬로그램이 넘는 개사료 포대를 옮기려 하니 엄두가 나지 않아 나오는 푸념이었다.

당신 한 몸도 가누기 힘든 노인이 거대한 개사료 포대를 들고 버스에 오르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시골 사료가게에는 우리가 애견 샾에서 볼 수 있는 세련되게 소포장되어있는 사료는 잘 취급하지 않는다. 사료가게 관계자의 전언에 의하면, 가격도 비싸거니와 시골 노인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한다.


'결국은 사지(四肢) 튼튼한 나보고 좀 옮겨 달라는 말씀이신데... 그럼 내리실 때는?...'


할머니가 조금 괘씸하시기는 했지만, 그 소중하게 기르는 개를 굶긴다고 하시니 어쩔 수 없이 개사료 포대를 들어서 버스에 올려놓았다.

" 어르신! 감당하시지 못할 물건은 사지 마세요! 앞으로는 제가 안 들어드릴 겁니다."

그냥 넘어가기가 속상해서 볼멘소리를 한 번 하였다.


" 내가 다시는 개 안 멕일 거야! 요번이 마지막이지!"


기사에게 미안하셨던지 더 이상 개를 안 멕이겠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하셨다.

앞으로 더 이상 개를 안 키운다는 말씀이다.

시골 노인들은 키운다는 말을 안 쓰고, 꼭 멕인다는 단어를 쓴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 나는 다시 그 노선으로 복귀하였다. 그 할머니와 옥신각신 하던 노선으로...


바뀐 노선을 운행하는 첫날...

터미널에 버스를 대고 버스 앞문을 열었다.

"개를 멕이지 말던지!"

어떤 노인 한 분이 버스에 오르시며 내뱉는 일성이다.


이게 웬 데자뷔(deja vu)...

버스에 올라오시는 할머니를 보니 일 년 전 그 할머니다.

'아니 이 할머니는 일 년 동안 나만 기다리셨나?'

그리고 승강장 벤치를 보니, 한 포대가 아니고 두 포대다.

'이런 우라질!'

우리의 메리와 쫑이 나 없는 일 년 사이에 새끼를 낳았나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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