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막내 녀석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예전보다는 다양해졌지만 요즘도 교과과정 이외의 특별교육활동(特別敎育活動,extracurricular activities)을 하는 모양이다. 요즘 세대들의 다양한 문화활동 및 현재의 시대적 요구에 맞추어 자기 적성에 맞는 방과 후 수업을 진행한다고 한다. 각종 악기 연주는 물론, 프로그램 코딩 등 우리가 예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 요즘 세대가 부럽기도 하고 복잡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는 두 마음이 교차된다.
그 옛날 학창 시절 나는 소속이 문예반이었다.
지금 일기 수준의 미미한 글이나마 쓸 수 있는 것은 문예반 출신이어서 그럴 거다.
종례시간 선생님 말씀...
"지금부터 특활반을 정한다. 특활반을 호명하면 가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어라!"
"ㅇㅇ반!"
"우르르(손 드는 소리)"
"너무 많아! 서로 가위바위보 해라! "
이렇게 해서 학우들의 특활반들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문예반은 지원자가 없어서 정원 미달이었다. 다른 특활반에 밀려난 학우들 중 몇 명은 떠밀려 문예반으로 들어왔고, 지금에야 고백하지만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고리타분하게 詩나 읽고, 文學을 논하기에는,
우리는 너무 혈기왕성했다.
또한 머릿속에서 인생 그림을 그리기에는 그리 치밀하지 못한 나이였다.
물론,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위대한 문인들이 10대 때부터 詩나 소설(小說)을 쓰기도 했지만, 나 하고는 거리가 먼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날도 수업이 끝나고 동아리방에 들렸다.
동아리방에 놓여있던 철재 캐비닛 문 안쪽에
하늘같이 위대해 보이던 2학년 선배들의 이름이 검은 매직으로 쓰여있었다.
"여기 2학년들 이름은 누가 쓴 거냐?"
" 2학년 선배 중에 누군가 썼겠지!"
"그럼 우리도 2학년과 동등한 문예반 멤버이니 족보에 올려야 되지 않겠냐?"
온몸의 정기를 손 끝에 모아 일필휘지(一筆揮之) 왕희지체로, 문예반 1학년 구성원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캐비닛 문 안쪽에 적어 넣었다.
천재는 악필이라 했던가...
내가 써놓고도 초등생 칠판 글씨처럼 삐뚤빼뚤한 것이 영 보기가 안 좋았지만, 다시 지우는 방법도 마땅치 않아 그대로 캐비닛을 닫았다.
그리고 나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일주일 후 문예반 동아리에 들러 동아리방 문을 여는 순간 심상치 않게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가 내 얼굴을 휘감았다.
2학년 선배 중 검은 뿔테 안경을 끼고 깡마른 체구의 신경질적으로 생긴 인간이 하나 있었다.
"어떤 새끼가 여기다 낙서했어?"
바로 내가 일주일 전에 들여다보던 캐비닛을 열어놓고 까만 안경태가 하는 말이다.
동아리 방에 먼저 와 있던 동기 서너 명이 손을 공손히 앞으로 모으고 죄인처럼 고개를 떨구고 아무 말도 없이 기둥같이 서 있기만 했다.
비록 글씨가 맘에 안 든다 해도...
'지들은 이름이고, 우리 이름은 낙서인가...'
'새끼'라는 단어도 귀에 거슬렸지만, 특히 '낙서'라는 단어에서 1학년과 2학년을 차별하는 것처럼 들려 나도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제가 했습니다!"
"이것들이 감히 선배하고 맘먹으러 드네..."
까만 안경태는 분을 참지 못했는지 씩씩거리며 동아리 방문을 벼락 치는 소리를 내면서 여닫고 나갔다.
잠시 후 어디서 주워왔는지 어깨에 대걸레 자루를 한 무더기를 짊어지고 와서 우리 앞에 우르르 쏟아놓는 것이 아닌가...
족히 열 자루는 넘어 보였다.
" 한 놈씩 나와서 엎드려!"
군사독재 시절 국민들을 우매하게 만들고자 몇몇 여우 같은 정치가들이 3s정책을 썼다.
그중 하나가 스포츠였다고 하는데, 그중에도 프로야구의 출범은 그 친구들의 의도대로 소기의 성과는 거두었다고 보인다.
프로야구를 처음 보던 날...
특히, 알루미늄이 아닌 나무로 만든 배트로 야구공을 칠 때 만들어 지는'따~악' 소리와 하얀 야구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홈런이 만들어 내는 그림은, 비록 위정자들의 얄팍한 정책으로 만들어진 프로야구지만 그 청량감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
타석에 들어선 프로선수들의 매끈한 타격폼을 그 날 문예반 동아리 방에서 나는 몇 년을 앞서서 보았다.
서너 번의 풀 스윙을 거치면서 까만 안경태는 체력이 고갈되었는지, 허벅지, 힢, 종아리, 등허리, 머리 뒤통수까지 구분하지 못하고 대걸레 자루를 휘두르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18살 먹은 놈이 매질을 해봤으면 얼마를 해 보았겠는가? 짊어지고 온 대걸레 자루가 모두 부러진 후에야 매질은 끝이 났다.
그 후유증으로 나는 한 달을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학교를 다녔고, 일 년 내내 문예반 동기들에게 죄지은 마음으로 지내다가 2학년이 되면서 특활을 자동차 운전 동아리로 옮겼다.
아마도 그때 배운 자동차 운전으로 지금 시골버스 운전을 하는지도...
아마도 고등학교 등산모임치고는 대단위 모임은 대한민국에서 내 모교가 독보적일 것이다.
정규 산행인 경우 한 번에 보통 4~5백 명이 모인다.
대절한 관광버스 15대 정도가 나란히 이동하니 가히 장관(壯觀)이라 할 수 있다.
출발과 도착지는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주차장이다. 산행 후 뒤풀이를 할라치면 압구정동 뒷골목 생맥주집들이 빈자리가 없을 지경이었다.
시골에 온 후로는 고교 총산모임에 동참하기가 어렵지만,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에는 가능한 참석 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나도 동문 총산후 뒤풀이로 생맥주집 한 자리를 차지했다.
"아니, 이게 누구야! 형! 나 모르겠어?"
"너 지원이 아니냐? 한지원! 맞지?"
내 술자리 옆에 두 사람 건너 문예반 선배가 앉아 있었다. 나보다 일 년 선배. 그 날 에도 침묵을 지키던 목격자 중 하나...
서로의 안부 인사가 끝나고...
"형! 부탁이 있는데... 들어 줄 거지?"
"그래! 뭔데?"
"다음 총산에 올 때, ㅇㅇㅇ선배 좀 데리고 와!"
"그래! 내가 얘기해볼게! 가능한 같이 와볼게! "
"형! 고마워! 꼭 그렇게 해줘! 내 눈앞에 그 인간 나타나면 내가 손모가지를 부러뜨릴 거야!"
갑자기 선배의 말수가 적어지더니, 얼굴색이 변하는 것 같았다. 나도 얼큰히 술이 올른 터라 선배의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 ~어, ~나, ~ 화장실 좀..."
들릴 듯 말듯한 혼잣말을 하고는 내가 제정신을 차렸을 때 그 선배는 자리에 없었다.
그 후로는 그 선배도 얼굴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다.
'아~ 쪼잔한 인간들 내가 그렇게 무섭나?'
'술김에 한 소린데...'
내가 꼭 선배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형! 나 그렇게 폭력적이지도 않고 간도 크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