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무늬 사각 빤스

by 한지원

시골버스 승객 중에 독특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이런 현상을 취향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좀 거리감이 있다.
정신과 의사가 보았으면, 치료할 대상으로 보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3월 초라고 하지만, 아직 날씨는 영하의 기온을 오르내리고 바람의 차가움도 봄이 오기에는 멀게만 느끼도록 하기에 충분한 날이었다. 버스기사로 발령을 받고 4주쯤 지났을까...
버스터미널 안의 사람들이 두툼한 오리털 점퍼를 걸친 채 터미널 연탄난로 옆에 옹기종기 모여있고, 나도 선배 기사들과 함께 자판기에서 따끈한 커피를 한 잔씩 뽑아 마시며 잡담을 즐기고 있었다.
옆 시선으로 난데없이 늘씬한 다리가 아른거리길래, 혹시 젊은 아가씨가 늦게 오는 봄을 빨리 오라고 가볍게 옷을 입었겠거니 하고 눈을 든 순간...

못 볼 걸 봤다.
이 남자 나이는 한 50대 초반으로 보이는데...
상의는 두툼한 파카를 걸쳤으나, 하의는 말 그대로 꽃무늬 사각팬티 하나 걸쳤다. 그것도 레이스 달린 걸로...
머리는 파마를 했는지, 아니면 원래 곱슬머린지 구불거렸고 노리끼리하게 염색까지 했다.

'별 변태 같은 놈! 시골버스기사 하면, 이 꼴 저 꼴 다 본다고 선배 기사들이 말씀하더구먼, 별 꼴을 다 보네...'
나는 충격으로 받아들였지만, 선배 기사들은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물론, 곁눈질로 흘금거리기는 하지만 대놓고 이상한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은 없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이런 패션으로 나다니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닌 모양이다.

운행 시간이 다 되어 홈에 대 놓았던 버스로 가려는데, 선배 기사 한 분이...
"한 기사! 운전에만 신경 써! 다른 거 다 무시하고..."
'초보 시골버스기사에게 조언을 하는 것이리라!'
아무 생각 없이 버스에 오르는 순간,
버스 중간에 노란 머리가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밖에 없는 승객이 하필 저 놈 이내! '
'어쨌거나 저 놈도 나의 승객이니, 목적지 까지만 무사히 데려다주면 되겠지! '
아무것도 아닌 척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터미널을 빠져나와 목적지로 운행을 시작했다.
한 5분쯤 지났을까...
스님의 독경 같기도 하고, 독실한 크리스천의 방언 같기도 한 소리가 버스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2~3분 더 지났을까...
그 소리가 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해석이 되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무슨 기적이란 말인가?'
나는 내 귀를 의심하면서 내용을 잘 들어보았다.
" 개ㅇㅇ!, 씨ㅇ새ㅇ,ㅇ같은... "
이런 내용이었다.
욕(辱)과 조사(助詞) 몇 개 만으로도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는 그놈의 귀신같은 작문실력에 혀를 내두를 판이었다.

흉한 모습은 눈을 감음으로서 보지 않을 수 있고,
마음이 어지러운 말은 입을 닫음으로 얘기 안 할 수 있다. 그런데 내 평생 듣기 힘든 사나운 욕지거리를 두 팔로 운전을 하고 있으니 자동으로 귀에 들어오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뭐라도 한마디 하고 싶었으나, 초년병 버스기사가 경험도 없었고, 혹시 저 변태 같은 놈이 뒤에서 나를 덮칠까 봐 두렵기까지 했다.
조금 전 터미널에서 선배 기사가 한 말은 내 노선버스에 그놈이 승차할 것을 미리 알고 한 조언이었다.
' 그래! 다른 거 무시하고 운전에만 신경 쓰자! 저놈이 나한테 지껄이는 것도 아니잖아!'
' 저 놈도 세상에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모양이지!'

도 닦는 마음으로 마을을 몇 개 지났을까...
"띵똥~, 띵똥~"
' 앗싸! 드디어 그놈이 내리나 보다!'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버스 뒷문 개폐 레버를 힘 껏 내렸다.
문이 열리고 그놈은 별일 없이 자기 갈 길로 갔다.

괴산으로 귀농을 하기 전, 귀농할 마을의 입주
예정자들과 모임을 몇 차례 갖은 적이 있다.
모임의 주된 목적은 입주자 소개와 미래에 같이 살게 될 이웃들과의 소통이었다.
서로 다른 직업과 가치관을 가지고, 평생 자신만의 삶을 살아온 도시의 사람들이 과연 한 마을에 어깨를 맞대고 살 수 있을까? 그 모임을 관통하는 가장 큰 주제는 '이웃과 함께하는 삶'이었다.
입주자 중 누군가가 질문을 했고, 사회를 보던 친구가 답을 했다.
"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마을은 남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
그 마을은 구성원들이 입주하여 10여 년이 지났으나, 미완(未完)으로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팬티가 아니라 짧은 바지만 입었어도,
나와 다름으로 인정할 텐데...
그러나, 그놈은 팬티라서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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