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기사들에게는 데자뷔가 없다.
매일매일이 데자뷔이니...
고정 기사는 보통 하루 건너 하루씩 같은 코스를 운행하도록 배차가 되어 있는데, 가끔씩은 과거와 현재가 혼재되어 뇌가 혼돈을 일으킬 때가 있다. '어제 왔던가? 그제 왔던가?...'
타고 내리는 승객이 동일인(同一人)인 경우 더욱이 더 그렇다.
같은 복장, 같은 표정, 그리고 동일한 질문...
수차에 걸쳐서 시골버스를 타는 승객의 성향 및 특징에 관하여 말씀드렸듯이, 2% 부족한 분들의 질문이 대부분 그러하다.
아마, 어휘력의 부족에서 마음속에서 하고 싶은 질문은 매번 다르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언어가 동일할 수 있는 경우가 있겠고, 또는 머릿속에 궁금한 것이 그것밖에 없어서 매번 같은 질문을 할 수도 있겠다.
이도 저도 아니면 시골버스기사 염장(鹽藏) 지르려고 했을 수도...
시골버스기사는 수 차례에 걸쳐서 오랫동안 이 런 질문에 노출되면 본인을 되돌아본다.
'내가 질문에 성실히 답하지 않았나?'
그 단계가 지나면 본인의 지성을 의심한다.
'혹시, 저 사람이 철학적인 질문을 나에게 던지는 것이 아닌가?'
좀 더 시간이 지나 만성이 될 쯤에는 나의 이성에 대하여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설마, 내가 지금 환청이 들리나? '
'중말'이라는 곳에서 2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 버스에 탔다.
"기사 아저씨! 이 버스가 청안에서 오는 차인가요? 그런데 거꾸로 오네요?"
내가 지금 다니는 노선중 증평역을 출발하여 청안면소재지를 경유하여 소매리, 중말을 거치고 마을 몇 군데를 더 들려서 다시 증평역으로 들어오는 노선이 있다. 원래 증평역에서 중말을 먼저 소매리로 가는 방법이 주된 노선이어서 내가 지금 돌아오는 노선은 반대로 도는 노선이다.
"아! 이 친구가 이걸 물어보는 거구나! "
이 노선의 탄생 배경, 역사적 의미, 경제적 가치, 주변지역에 미치는 영향,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점... 중략
갖은 구라를 섞어, 길거리에 지나가는 네발 달린 생명체도 알아 들었으면 끄덕 거릴 정도로 자상하고 세세한 설명을 했다.
저 나이 또래의 젊은 친구들이 민원전화의 핵심 인물들이다. 물어보는 말에 기사가 말대꾸도 안 했다는 오해를 불신시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 결과, 머리를 아래위로 끄덕이는 것이 버스 룸미러로 보였다. 기사는 마음이 흐뭇했다.
며칠 지난 후 그 마을 정거장에 지나는데...
오십 대 아주머니가 버스에 승차하였다.
" 이 버스가 청안에서 오나요? 근데, 왜 거꾸로 와요?"
' 이 말은, 언제인가 들어본 질문이데...'
"네! 청안에서 옵니다. 그래서 이 버스 노선은 반대로 돌아요! "
'허! 이 말은 내가 해준 말 같는데... 이상하다!'
그리고 일주쯤 흘렀다.
바로 그 승강장에 팔십 대 남자 노인이 승차했다.
" 기사양반 왜 이 버스는 거꾸로 와요! 청안에서 오나?"
' 혹시, 내가 문제가 있나? 아니면, 이 마을은 이장이 마을 동계(洞契) 때 버스기사에게 물어볼 질문지를 만들어 프린트해서 돌리나? '
오늘도 이십 대 청년 하나가 이 마을에서 승차했다.
"세명이요!"
세명 모두 승차를 완료 후 버스는 출발했다.
바로 그 청년, 그 아줌마, 그 할아버지...
"엄마! 할아버지 어디 가는 거야?"
"병원에 주사 맞으러!"
"아버지! 병원 가면 좀 기다려야 해!"
"그런데 이 버스는 거꾸로 오네! "
"글쎄 말이다!"
"청안에서 오나 보지!"
나란히 앉아 있는 세명을 보고 나는 깨달았다.
'데자뷔가 이젠 복수(複數)로 일어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