情 주지 않으리라!

by 한지원

참 귀엽게 생기신 할머니다.

키가 150cm는 되시려나?

앙증맞은 배낭을 메고 이쁜 척 표정을 지으시면서 버스에 오르셨다.

"어디까지 가세요?"

"뭐?"

가는 귀가 잡수신 모양이다.

목소리 톤과 볼륨을 두 단계 더 올려서...

"어~디~에 내~리~세~요!"

"응! 장내"

'아하 장내에 내리시는구나!'

그렇게 그 할머니와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시골버스기사를 시작하고 한 달쯤 되었다.

환전을 하려고 사무실에 들렸는데, 회사 관리차장이 혼자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한 기사님! 버스기사 생활할 만하세요? 아무래도 해보시지 않던 일이라 어려우시죠?"

"이 업무가 단순해 보이지만, 생각하셔야 될 부분도 있습니다. 냉정하게 말씀드리자면, 운행 중에는 '나는 운전하는 로봇'이라 생각하시고 운전에만 신경 써 주세요! 그러면 기사 생활 무난하게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웃으면서 말은 하지만, 나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었는지 목소리에서 진중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이 버스회사에 입사 전, 운전 테스트를 끝내고 피 말리는 일주일을 기다려 노선 수습의 기회를 얻었다. 수습을 하기 위하여 출근한 첫날...

"일 하실 수 있도록 잘 가르쳐 주십시오!"

나를 견습을 가르치던 선배 기사에게 관리차장의 말이다. 그래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선배 기사는 성심성의껏 나를 지도해 주었고, 덕분에 무사히 견습을 마칠 수 있었다. 그 당시 시골버스는 보통 견습을 받다가 도중 하차하는 예비기사들이 허다 했다고 하는데, 내 주변인들의 배려로 지금의 시골버스기사란 직업을 가질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 이제 좀 적응이 되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기사양반 안녕 하시오!"

"네! 어르신! 안녕하십니까? "

"오늘은 뭐 하시다 오세요?"

" 친구랑 화투치다..."

"고스톱? , 민화투?, 육백?"

"그딴 거는 안해! "


' 아니, 이 노인네들이 쩜당 만원짜리 '섰다'로 도박 같은걸 하시나...'


" 그림 맞추기 "

'그러면 그렇지! 구십이 넘은 노인들이 화투는...'

머리가 하얀 할머니들 서너분이 화투장으로 그림맞추기 하면서 둘러앉아 계시는 상상을 하니, 혼자서 빙그래 웃음이 지어졌다.


아직은 초년병 예비기사이니 배차가 매일 바뀌는 것도 약간의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노선이 바뀌면 승강장 위치며, 과속 방지턱등 낯선 지형지물을 익히느라 신경이 쓰였다. 지금에야 그 노선의 단골승객들을 꽤뚫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고정적으로 타고 내리는 승객도 잘 알지 못하는 처지여서 그 할머니가 초년병 버스기사에게는 情이가는 유일한 단골승객이었다. 할머니에게는 얼굴이 익은 기사이다보니 아무래도 버스안이 편하신 모양이다. 가끔씩 자리 이동도 하시는 것을 몇 번 보기는 했는데, 민망하실까봐 크게 뭐라하지 않았다.

그렇게 버스기사가 모른척 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날 따라 증평읍내에 차들이 많이 막혀 시간을 지체한 터라 부지런히 목적지를 향해가고 있었고, 할머니가 하차하실 정류장인 '장내'를 가려면 앞으로도 한 참을 더 가야하는데...

버스 승강장에 승객 두분을 하차시키고, 뒷문을 닫으후 버스를 출발시켰다. 뒤에서 '어이쿠' 소리에 룸미러로 버스안을 보니, 그 할머니가 버스 통로에 털썩 주저앉아 계신것이 아닌가...

" 할머니 왜? 거기 앉아 계세요? "

" 일어날 수가 없어! "

승강장에 정차후 출발하는 버스에서 앞자리로 오시려다 넘어지신 거다.

버스를 길 옆에 정차후, 할머니를 부축하여 자리에 앉혀 드렸는데... 앉아 계시던 버스의 통로바닥이 흥건하게 당신의 소변으로 젖어 있었다. 다리에 감각이 없으시다고...

정신이 멍해지면서 가슴이 답답해왔다.

정신을 차리고 우선 119에 통화를 하여 위치및 환자의 상태를 설명후 출동요청을 하였고, 사무실에 전화하여 상황을 보고하였다. 그 날 나머지 운행을 어떻게 마무리 하였는지... 지금도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그 날밤 운행을 마치고 집에 퇴근은 하였지만, 생전처음 겪는 경험에 가슴이 두근거리며 몸에서는 경련이 날 지경이었다.


하얗게 밤을 세웠다.


다행스러운 것은 다음날이 비번 이어서 출근에 부담이 없었지만, 사무실 직원들의 출근시간대에 맞추어 버스 사무실로 향했다.

"오늘 쉬시는 날인데, 출근 하셨네요! 굳이 안 나오셔도 되는데...어제 일이 걱정되서 나오셨죠?

아침에 cctv 확인했구요, 상황대처는 잘 하셨습니다.벌써 아들이란 분이 보험접수 해 달라는 전화가 와서, 우리회사가 할 수있는 모든 조치도 모두 진행 했으니 많은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니 마음이 복잡해 졌다

미안하고, 고맙고, 안타깝기도...

"제가 병원에 한 번 가봐야 돼지 않을까요? "

"가시는 것은 한기사님 자유의지신데..."

"굳이 가시면 할머니 자식들에게 '버스기사의 실수로 발생한 사고를 합의하러 왔다'는 잘못된 판단을 줄 우려가 있으니, 잘 생각해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버스공제조합에 그 할머니의 병원 진단비 명목으로만 약 이천만원이 청구되었고, 치료비 지급은 지금도 진행중 이라고, 그 사건이 있은후 한달쯤 지나 소식을 듣게 되었다.


가슴이 아려왔다.

늙은 노모의 사고가 자식에게 목돈을 만지는 계기가 되는 것이 아니길 마음속으로 빌었다.

도의적(道義的) 책임감에 병원방문을 하려던 나의 생각도 접었다.

그 후 회사에서도 배려하는 차원인지는 모르나, 거의 2개월 동안 나를 그 노선에는 배차하지 않았다.


가수 김승덕의 노랫말이 입에서 맴돈다.

정 주지 않으리라~

정 주지 않으리라~

사랑보다 깊은 정은 두번 다시 주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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