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은 고등학교 동기동창이다.
말을 더듬던 버릇이 있어서 상대방을 속 터지게 하기도 했지만, 더할 나위 없이 똑똑하고 자상한 친구였다. 아마 말을 더듬던 버릇은 머릿속에 든 게 많아, 하고 싶은 말이 앞다퉈 나오다가 교통체증이 걸려서 그런 것이리라 여겨진다.
나도 얼굴에 핸디캡이 있던 터라 완벽한 놈 하고는 친하게 지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동병상련이라고, 아무래도 뭔가 부족한 놈들끼리 빨리 친해지기가 좋을 것이란 환상 때문이었을 거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내 나이 50 넘어서 깨닫게 되었다.
"오늘 우리 집에 가자!"
그놈 부친이 지인과 동업으로 사업을 하시다가 사업체가 망하면서 빚을 많이 지게 되었다. 공동 경영자로서 회사의 부채를 떠안는 바람에 그 충격으로 친구 아버님은 쓰러지셔서 뇌출혈로 돌아가시고, 식구들은 서초동에 살던 집을 처분하고 경기도로 자그마한 아파트를 구하여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서다.
"오 케이!"
아파트 현관 옆 문간방이 그놈의 공부방이었다.
우리는 밤늦도록 서로 시시덕거리며 놀았다.
'철커덕~덜컹!'
현관문 옆에 위치한 방이어서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시곗바늘을 보니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가! 어서 온나! 욕봤데이!"
상대방을 걱정하는 감정과 측은지심이 묻어나는 친구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이~죄송~해요~"
가늘고 낮은, 술기운이 느껴지는 여자의 음성이 뒤를 이었다.
그 소리에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나를 빤히 보고 있던 친구 놈이 "우리 형수야!" 한마디 내뱉었다.
그 친구와 형과는 여섯 살의 터울이 있었다.
의과대학을 다니던 형은 공부도 잘하고 착한, 그야말로 주변에 평판이 좋은 소위 '엄친아'였다. 집안의 기대이자 자랑이었다.
그 자랑스러운 아들이 친구들과 어울려 여성들이 시중을 들어주는 술집에 갖다가 술집 호스티스와 사랑에 빠졌다. 그녀와의 생활을 위하여 다니던 의대를 때려치우고 트럭 운전을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다. 집에서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지만, 아들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러는 사이 가장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기울기 시작한 가세(家勢)로 인해 그 착한 아들은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 노릇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트럭기사의 수입으로는 동생 대학 등록금에 생활비에...
더욱이 돌아가신 선친의 부채는 갚을 엄두도 못 내었다.
너무 어두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집안에 그 아들의 여자 친구가 나타났다.
그녀는 전직의 노하우를 되살려 스탠드바의 코너지기를 하면서 친구의 집안을 살리는 한 줄기 빛이 되었다.
그날도 술에 찌든 몸으로 가게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애틋한 사랑도 가진 것을 모두 내려놓았을 때 그 진위를 알 수 있다.
그녀가 그 남자를 진정으로 좋아했는지...
아니면, 의과대학 학생증을 사랑했는지...
그 남자가 그녀를 지키기 위하여 그의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그녀는 두 번 다시 가기 싫은 자신의 어두운 과거로 돌아가 그 남자의 가족을 지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의 결혼식이 있었고, 나는 그 결혼식에 초대를 받았다. 결혼식장에서 처음으로 그녀를 보았다.
내 나이 스물에 그렇게 가슴 저리도록 슬픈 아름다움을 간직한 신부는 처음 보았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을 모두 내려놓을 때 가능하다.
요즘 세상을 어지럽히는 쥴리...
나는...
하버드(Harvard) 출신 젊은 한량의,
요사스러운 세 치 혀로 만들어낸 금낭묘계(錦囊妙計)가, 진정한 사랑의 숭고한 정신을 훼손시키는 우(愚)를 범하지 않기 원하며, 금전이 얽힌 추악한 남녀 간의 뒷거래를,
사랑이라는 말로 포장하지 말기를 바란다.
또한, 이 아름다운 세상이 그 말에 현혹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날의 결혼식은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우리는 결혼식 직후 피로연에서 나온 갈비탕 한 그릇도 제대로 비우지 못한 채...
철딱서니 없는 스무 살 먹은 네 명의 수컷들은, 결혼식 축의금을 횡령해서 얻은 돈으로 또 다른 쥴리를 찾으러 이태원 룸살롱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