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괴산으로 귀농을 했다.
귀농을 한지 올해로 열 한 해가 지났다.
자연과의 교감, 얽어 매여진 것들로 부터의 해방, 당신은 본인이 직접 조작하는, 자기 인생의 직조기(紡織機) 앞에 앉은 중년 남성의 미소를 보았는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흡족한 미소...
땀에 흠뻑 젖은 런닝셔츠와 흙 묻은 장화, 아무렇게나 풀밭에 털썩 주저앉은, 고귀한 노동 뒤의 달콤한 휴식시간...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흐르는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의 'Once Upon a Time in the West'를 배경으로 장엄한 일몰이 진행되고 있었다.
무엇이 부럽고, 무엇이 아쉬웠겠는가?
헌신짝처럼 버리고 온, 주변 사람들의 기대...
아이들의 교육을 도박판의 판돈처럼 自然에 올인한 가장, 사랑하는 아내에게 애틋한 마음 이외에는 더 줄 것이 없는 현실...
바보 같은 그 남자는 오롯이 그 행복을 위해, 미천하나마 그가 소유했던 모든 것을 정신적 자유의 댓가로 지불해 버렸다. 이 안타까운 것들을...
농부 9년 차에 농사를 접었다.
가슴에 멍울이 생겼다.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의...
멍울은 그 남자의 가슴을 옥죄고, 암세포처럼 주변 장기를 파고들어 극심한 고통을 주었다.
그리고는 남자를 무기력하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 멍울은 신경이 민감하여 사랑하는 가족들의 자그마한 원망에도 견디지 못하고 불같이 화를 내었다.
이제 남자의 직업은 버스기사다.
그 남자는 그 멍울을 조금씩 도려내어 글을 쓴다.
머리로, 논리로 쓰는 글이 아니라 가슴으로 글을 쓴다.
항상 죄지은 가족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그가 우울증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글 덕분이었고, 그 글쓰기를 가능하게 한 것은 가족의 사랑이었다.
그 버스기사는 하루 종일 시달렸던 승객들을 각자의 가정으로 모두 돌려보냈다.
늦은 밤...
그 남자는 진정한 마지막 노선을 향해 버스가 아닌 승용차의 액셀 페달을 밟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마지막 남은 승객인 자신을 가족에게 돌려보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