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과 사―
그림 폐가를 철거해 텃밭을 조성하다
― 생과 사―
벽은 오래전에 숨을 멈췄다.
창은 눈을 감았고
말을 잃은 집의 살갗엔
검은 낙서들이
삶이 떠난 자리를 대신해 소리쳤다.
여기,
사는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
시간만 남아
비와 바람이 집을 갉아먹었다.
그러나
완전히 죽은 땅은 없었다.
망치가 내려오고
벽이 무너지며
사(死)는 마지막 숨을 토해냈다.
그날,
먼지 속에서 땅은 다시 드러났다.
사람들이 들어왔다.
모자를 눌러쓴 손,
흙을 고르는 손,
잡초를 뽑는 무릎.
텃밭은
누군가의 노동으로 태어났고
누군가의 웃음으로 자랐다.
수박은
버려진 집의 기억 위에서
조용히 둥글어졌고
파와 풀은
죽음의 자리를 밀어내며
초록으로 대답했다.
아이들 대신
바람개비가 돌고
울음 대신
물소리가 흘렀다.
그림이 그려진 담장은
이제 더 이상
가림막이 아니라
마을의 얼굴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멈춰 서서
땅을 바라본다.
무너진 것은 집이었고
남은 것은 공동체였다.
죽음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리를 비켜주는 일이었음을,
삶은
그 빈자리를
씨앗 하나로도
다시 채울 수 있음을
이 텃밭은 알고 있다.
그래서 이곳은
폐허가 아니라
서사다.
사(死)가 물러난 자리에서
생(生)이 다시 시작되는
마을의 서사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