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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리 채움뜰 텃밭정원, 11월의 도시농부 일기

by Fire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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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서문리 채움뜰 텃밭은
풍성했던 계절을 조용히 뒤로 보내며
새로운 숨을 준비하는 중입니다.



무, 배추, 쪽파, 갓, 콩…
함께했던 작물들이 하나둘 수확되어
텃밭의 자리가 조금씩 비워지고 있습니다.


텅 빈 흙을 바라보면
왠지 모르게 허전하지만,
그 빈자리마다 다음 계절의 약속이 스며듭니다.


오늘은 그 자리에
마늘과 양파를 심었습니다.
차가운 흙 속으로 쏙 들어가는 작은 생명들—

겨울을 품고 견디며
내년 봄에는 힘찬 싹으로 다시 우리를 맞이하겠지요.


그런데도 텃밭 한가운데
국화는 끝내 자신의 계절을 놓지 않습니다.
살짝 얼어붙은 아침 공기 속에서도
옅지만 깊은 향기를 밀어 올리며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텃밭을 지켜주고 있습니다.


오늘 도시농부의 마음은
수확의 감사와
겨울 준비의 차분함,
그리고 국화가 건네는 작은 용기 사이를 오갔습니다.


흙은 쉬어가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내년을 준비하는 중입니다.
사람도, 마을도, 텃밭도
잠시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다는 걸
이 계절이 조용히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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