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조용히 살아라(3/4)

⁋ 이게 소설이라고?... 03

by 둘리아빠


일주일쯤 전이었다. 모처럼 일찍 퇴근했다. 저녁을 먹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지 일주일 넘도록 몇 페이지 넘기지 못한 소설을 읽고 있었다. 열 시가 채 안 되었을 것이다. 밖에는 오늘처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야간 자율학습을 끝낸 큰애를 학교에서 독서실로 데려다주려고 자동차 키를 챙기는 참이었다. 또각또각, 계단을 올라오는 하이힐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발소리가 멈추는가 싶더니 갑자기 여자의 비명이 이어졌다.


“악, 왜 이래요! 누구예요?”

무언가 문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음과 함께 도와주세요!, 하는 여자의 다급한 외침이 뒤를 이었다. 윤수는 잠시 멍하게 서 있었다. 아이에게 줄 간식을 챙기던 아내도 놀란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지?” 아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글쎄.”

그 사이에도 퍽, 퍽 거리는 소리와 여자의 비명이 연이어 들려왔다. 그의 다리가 후들거리는 게 느껴졌다.

“나가 봐야 하잖아!”

“내가? 왜?”

“…….”


아내의 한심해하는 듯한 표정에 떠밀려 윤수는 신발장에서 야구 방망이를 꺼내 들었다. 아이들 어릴 때 쓰던 건데 버리기 아까워 처박아 둔 방망이었다. 이런 용도로 쓸 줄은 몰랐다. 아내도 그의 뒤에 바짝 붙어 따랐다.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자, 문틈으로 옆집 여자가 계단참에 널브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여자를 향하던 주먹이 허공에서 멈칫거리는 모습도. 문을 활짝 열자 후다닥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남자의 뒷모습이 눈에 잡혔다. 모자를 눌러쓰고 검은색 점퍼와 청바지 차림을 한 중키의 남자였다. 뒷모습만으로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여자의 머리채는 보기 흉하게 흐트러져 있었고 얼굴을 맞았는지 이마와 입술 주변이 피투성이였다. 일회용 우산이 일 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중간에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아내가 어머, 하며 뛰어나가 여자를 부축하고 일으켜 세웠다. 윤수는 방망이를 오른손에 든 채 어쩔 줄 모르고 서 있었다. 뭐해? 쫓아가 봐야지! 아내의 목소리에 그는 급발진하는 차처럼 계단을 두어 개씩 뛰어 내려갔다. 주차장을 지나 도롯가에서 좌우를 살펴보았지만 남자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간이술집까지 달려갔다. 비가 내리는 거리는 오가는 사람 하나 없이 조용하기만 했다. 간이술집 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TV에서는 개그맨들이 나와서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주차장으로 돌아와 주차된 차량 사이를 훑어보았지만 남자의 흔적은 없었다.


머리에 달라붙은 빗물을 털며 이 층으로 올라갔다. 빼꼼히 열려있는 여자의 집 문틈으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내가 여자를 집으로 들여보낸 모양이었다. 윤수는 문을 열고 여자의 집으로 들어가 현관에 엉거주춤 선 채로 아내와 여자를 쳐다보았다. 아내는 수건에 물을 적시고 피 묻은 여자의 얼굴을 닦아주고 있었다. 여자의 원피스 앞자락이 열려 새하얀 허벅지가 드러나 있었다. 그는 눈길을 신발장 쪽으로 돌려 외면했다. 아내가 원피스 앞자락을 다독이며 그를 향해 빨리 경찰에 신고해! 라며 소리쳤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신고할 것까지는 없어요.”

누워 있던 여자가 손까지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래도 이렇게 다쳤는데……. 여보, 뭐 해, 빨리 112에 신고해!”

아내의 재촉에 여자가 재차 손을 저으며 말렸다.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두 여자만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다니까요. 잃어버린 것도 없고, 경찰을 부르면 더 피곤하기만 해요.”

“정말 괜찮겠어요?”

아내가 다시 물었고 여자가 고개를 힘없이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야구 방망이를 손에 들고 신발장에 시선을 둔 채 어정쩡하게 서 있는 윤수를 향해 아내가 고갯짓했다. 집에 먼저 들어가 있으라는 말 같았다. 그는 여자를 힐끗 쳐다보고 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방망이를 신발장 곁에 세워 놓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휴우, 하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이를 태우러 갈 시간이 지났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소파에 앉아 있는데 아내가 들어왔다.

“아니, 여태 안 나가고 뭐 하고 있어? 애가 기다릴 텐데.”

“여자는 괜찮데?”

그런 것 같애, 하는 아내의 말을 뒤통수로 받으며 차 키를 들고나왔다. 야구 방망이를 들고 갈까. 잠깐 멈칫거리다 그만두었다. 야구 방망이를 손에 쥐었다고 해도 그 정체불명의 사내와 싸워서 이길 자신은 없었다. 윤수는 몸을 움직이는 운동에는 전혀 소질이 없었고 치고받는 싸움이라면 더욱 그랬다. 아까 얼떨결에 쫓아 나가기는 했지만 남자를 따라잡는다 해도 난감한 상황이 펼쳐질 뻔했다. 그로서는 남자가 사라져 준 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로에 면한 주차장은 조용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차에 시동을 걸고 학교를 향해 가면서도 그는 백미러를 통해 힐끗힐끗 뒤를 확인했다. 혹시 아까 남자가 어디 숨어 있다가 자신을 덮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뭐 하는 여자래?”

아이를 독서실로 태워다 주고 돌아와 그가 아내에게 물었다.

“헬스클럽 강사라는데. 아마도 흑심을 품은 회원 중의 하나가 어떻게 해보려고 집까지 쫓아왔을 거래. 예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나 봐.”

처음에는 경찰에 신고했는데, 오라 가라 귀찮게만 굴고 결국은 범인을 잡지 못했다고 한다. 혼자 사는 여자라는 걸 알고는 오히려 몸가짐이 허술해서 그런 게 아니냐는 듯한 노골적인 인상에 기분만 상했었다고 했다. 그 후로는 웬만해서는 그냥 길 가다 똥을 밟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단다.


“그나저나 자기도 참 겁이 많대. 짐작은 했지만 막상 그런 모습을 마주하니 웃음이 나오더라. 나 참, 그렇게 소심해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나 몰라.”

사실이 그러했으므로 윤수는 아내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왔다. 그 난리통에 여덟 세대가 사는 건물에서 문을 열고 나왔던 사람은 우리뿐이었다는 사실을 아내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그는 출퇴근길에 집요하게 따라붙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숨어서 주시하고 있다는 느낌. 불안한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면 바쁘게 제 갈 길을 가는 사람들뿐이었다. 과민반응이야, 마음을 애써 다독여 보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 나쁜 느낌은 지금까지 따라다니며 그를 괴롭혔다. 그 일이 있고 나서는 아침 운동도 그만두었다. 여자가 반대하더라도 경찰에 신고했어야 했던 게 아닐까 뒤늦게 후회하기도 했다.


아내는 자고 있었다. 큰애는 아직 독서실에서 돌아오지 않았고, 올해 고등학교에 들어간 작은애는 자기 방에서 공부하다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이불을 펴 아이를 눕혀주고 옷을 갈아입었다. 밤늦게 돌아온 아이에게 잠자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아내지만, 피곤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아내는 초등학교에서 학습 보조 인턴교사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크기 전에 한 푼이라도 더 벌어 두어야 한다고 했지만, 십 년이 넘도록 과장에서 뭉그적거리는 윤수의 경제력을 믿을 수 없다는 뜻일 터였다.


아내를 깨워 저녁을 차려 달라고 하기가 미안했다. 뭐 대단한 일을 하고 왔다고. 냉장고를 열어 캔맥주를 꺼내 한 모금 마셨다. 차가운 맥주가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안방으로 건너가 커튼을 살짝 젖혀 도로 쪽을 살폈다. 그 사이 빗줄기는 더 굵어졌다. 주차장에 줄지어 늘어선 차량 지붕 위로 빗방울들이 떨어졌다 튀어 올랐다. 그의 차도 얌전히 제 자리에 있었다. 작은애가 태어나는 해에 구입한, 중고차 판매상에게 공짜로 가져가라 해도 마다할 소형차다. 원래는 은회색이었는데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차체의 색상마저 알 수 없을 만큼 낡았다. 저 차 밑에는 그의 집 현관문에 붙어 있는 번호와 동일한 202호라는 숫자가 하얀 페인트로 선명하게 그려져 있을 것이다. 차를 저 자리에 그냥 세워 두어도 괜찮을까?


그날 여자를 덮쳤던 의문의 사내가 해코지하려 마음먹는다면 차가 손쉬운 표적이 될 것이다. 집은 이미 노출된 상태고, 주차장에는 차들이 어느 집 것인지 알 수 있게 표시까지 되어 있었다. 우선은 차를 펑크내는 방법이 있다. 아니면 차체와 유리창에 스프레이로 지저분한 욕설을 그려 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고도 화가 안 풀린다면? 아이들이나 아내에게 눈을 돌릴지도 모른다. 며칠만 주의 깊게 살핀다면 윤수의 가족들 일상을 파악할 수 있을 테고, 그 허술한 틈을 비집고 들어와 위험한 장난을 칠 수도 있었다.


그런 걱정 때문에 그는 가능하면 회식 자리를 줄이고 일찍 퇴근하여 아이들을 챙겼다. 학교에서 독서실로, 독서실에서 집으로 차를 태워 데려다주고 데려왔다. 그를 직접 노릴 가능성도 다분했다. 밤늦게 술 취해 들어오는 그의 뒤를 쫓아와 ‘뻑치기’를 가장하여 테러를 저지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아이들보다 그를 상대로 하는 게 오히려 위험 부담이 덜하다고 판단할 가능성도 있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어중간한 나이는 웬만한 일로는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테니까. 집에 불을 지르지는 않겠지, 설마. 모를 일이다.


아내는 윤수의 조바심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여차여차해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외계인을 보듯 이상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 역시 그러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아마도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폭력에 대한 공포감 때문일 듯했다. 굳이 근원을 따진다면 그 공포감은 대물림된 것인지도 모른다. 결코 온유하고 평화로웠다고는 할 수 없는 세월을 살아 온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로부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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