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이다. 아내가 친정에 목돈이 필요한 일이 생겼는데 어디 구할 데가 없냐고 물어왔다. 달리 방법이 없던 윤수는 시골에 있는 아버지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부탁했다. 그 당시 아버지는 과수원을 하다가 힘에 부쳐 갈아엎고, 당근이나 양파 등을 재배하여 밭떼기로 팔아 생활하고 있었다. 얼마 후에 통장으로 돈이 들어왔고 아내를 통해 처갓집으로 보냈다. 그때는 아버지가 여윳돈이 있어서 선뜻 내주셨나보다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나중에 그가 시골집에 다니러 갔을 때 아버지의 태도가 예전 같지 않았다. 말씀도 별로 하지 않고 뭔가 큰 걱정거리가 있는 것만 같았다. 아무 일도 아니다. 무슨 일이냐고 그가 물어도 아버지는 신경 쓸 것 없다면서 외면했다. 돌아오는 길에 골목 어귀까지 따라온 어머니가 주저하며 털어놓는 말을 듣고서야 상황이 이해됐다.
당근 수확 철이 되어 예전처럼 밭떼기로 팔기 위해 내놓았는데, 사겠다는 상인들마다 예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을 제시했다고 한다. 다른 지역에 당근이 풍작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농약에 비료값, 인건비는 건져야 할 게 아니냐며, 당근을 재배한 동네 어른들끼리 의논을 하고 버티기로 했단다. 그 와중에 윤수가 돈을 구해달라 했고, 수중에 돈이 없던 아버지는 손해를 보면서 당근을 팔아 버렸다. 동네 어른들과의 약속을 깨버린 것이다.
그 소문이 금세 퍼졌고 아버지는 궁지에 몰렸다. 어느 어른 하나는 밤중에 술을 잔뜩 마시고 찾아와 욕설을 퍼붓고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웃돈은 얼마나 받아 처먹었냐, 혼자 얼마나 잘사나 두고 보자, 며 멱살잡이 직전까지 갔단다. 평소에는 형님, 형님 하며 따르지만 술을 마시면 위아래를 알아보지 못하고 난동을 부려왔던 터라, 동네에서 경원시하는 사람이었다. 젊었을 때는 이웃 사람을 두들겨 패 경찰서를 들락거리기도 자주 했다. 이번 담합 건도 그 사람이 주도했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뒤를 따라 눈치를 보던 사람들이 하나둘 상인에게 당근을 팔아버린 후로, 그 사람은 그때까지도 걸핏하면 술을 마시고 찾아와 아버지를 협박하듯 으른다는 것이다.
그 사건으로 아버지가 겪었을 불안감이 손에 잡힐 듯 윤수에게 전해져 왔다. 특히 그가 나이 들어서 알게 된 할아버지의 비참한 죽음의 사연을 떠올리면 아버지가 느꼈을 공포감을 헤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마흔이 되기도 전에 죽었다. 해방 직후 이념 대립의 풍랑은 작은 시골 마을에도 예외 없이 밀려들었다. 가난한 집안의 큰아들이었던 할아버지는 집안 건사하느라 시절에 한눈팔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어느 쪽에든 중간은 불온한 것으로 치부되던 시대였다. 할아버지의 태도는 좌우의 양쪽으로부터 미움을 샀고, 결국 시류에 휩쓸려 다니던 동네 청년들에게 맞아 죽었다. 보리쌀이라도 팔아 가족을 먹이려고 이웃 마을에 품앗이 갔다 돌아와 저녁을 먹는 중이었다. 할아버지가 피를 흘리며 죽는 것을 아버지는 보리밥이 든 숟가락을 손에 든 채로 목격했다. 그때 아버지는 열두 살이었다.
윤수는 이 말을 아버지가 아닌 고모로부터 들었다. 가정의 삶을 송두리째 부수어 놓은 폭력의 경험이 아버지의 뇌리에 틀고 앉아 그 후의 삶을 지배했을 것이다. 할아버지를 대신해 식구들을 돌보면서도 아버지는 자신의 존재감을 가능하면 숨기며 살아왔다고 한다. 주변과의 분쟁을 만들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고 설령 다툼이 있더라도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조용히 해결하는 쪽으로 마무리하곤 했다. 어쩌면 그때까지도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무자비한 폭력의 기억에 붙들려 있었을지 모른다.
어머니의 말을 듣고 돌아오자마자, 윤수는 집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아 아버지에게 빌려온 돈을 갚았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느꼈을 공포감까지 되돌려 놓을 수는 없을 터였다. 그는 아버지에게 큰 죄를 지은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그 정체 모를 인간이 너를 해코지할지도 모른다는 거네?”
답답한 마음에 윤수는 고등학교 동창인 기자를 만나 상의한 적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는 해에 민주화의 바람으로 우후죽순 만들어진 지방 신문사에 발을 들여놓은 친구였다. 좁은 지역에 대여섯 개의 신문사가 난립하고 인터넷 신문까지 가세하면서, 월급 한 푼 집에 가져다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술을 마실 때마다 그만두어야지, 하면서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 아직껏 신문사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친구였다. 그동안 두세 군데 신문사를 옮겨 다니다 지금은 처음 기자 생활을 시작한 신문사로 돌아와 사회부장 자리를 꿰차고 앉아 경찰서를 출입하고 있었다.
“그래, 아직 특별한 움직임은 없는데, 꼭 내 주변을 배회하며 기회를 노린다는 기분이 들거든.”
“참, 걱정도 팔자네. 너 요사이 꽤 살 만한가 보다. 그렇게 안달하며 지켜내야 할 것도 있으니까.”
친구는 빈 술잔을 앞으로 내밀며 빈정거리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장난이 아니야. 나는 지금 심각하거든. 아이들도 걱정되고.”
친구의 빈 잔에 술을 채우면서 윤수는 인상을 찡그렸다. 안주를 기다리며 친구는 벌써 석 잔을 비웠지만 그는 아직 잔에 입도 대지 않은 상태였다.
“누가 심각하지 않대? 왜 그런 일에 끼어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네 성격에 잠인들 제대로 편안히 자겠냐?”
“경찰에 신고할까?”
“경찰? 뭐라고 신고할 건데? 이웃집 여자를 뒤쫓아와 행패를 부린 괴한을 쫓아냈는데 그자가 보복할 것 같으니 도와주세요! 그럴 거야? 그러면 경찰이 네 집 주변을 24시간 동안 감시하면서 네 가족을 보호해 줄 것 같냐? 아서라, 경찰이 그렇게 할 일 없는 족속들이 아니야.”
“그러면 어떻게 하라고?”
윤수의 눈빛이 절박했는지, 친구는 한참을 말없이 쳐다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절반쯤 남은 술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둬. 잊어버리라고. 너는 워낙 조심스러운 놈이니까 그런 경우를 별로 당해 보지 못했을 테지만 세상에는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해. 이렇게 생각해 봐. 네가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어쩌다가 미스코리아 뺨치는 여자랑 둘이만 있다고 쳐. 서로 목적하는 층의 숫자를 누르고 우두커니 서 있을 때 그 여자가 무슨 생각을 할지 짐작해 봤어? 숫기 없는 너는 그 자리가 불편해서 언제 도착하나 고개를 들어 층을 표시한 숫자가 넘어가는 것만 볼 테지. 하지만 그 여자는 네가 어떤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불안해하며 엘리베이터가 왜 이리 천천히 가나, 생각하고 있을걸. 잔뜩 겁에 질려서 말이야. 그러니까 결론은 간단해.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에서 폭력은 일상이다, 그러니 그 폭력이나 혹은 폭력으로 인한 피해의 예감은 무시하자.’ 교통사고랑 비슷한 거야. 언제 어디서 사고가 발생해서 자신이 불구가 될지도 모르지만, 미리 걱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거든. 닥치는 대로 살아. 미리 이것저것 계획하고 계산하면서 살면 재미도 없잖아. 그리고 그놈이 보복하려 했다면 벌써 했을 거야. 그러니 마음 편히 먹고 잊어버려. 오케이? ”
거실의 시계는 한 시를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윤수는 멍하니 텔레비전에 시선을 주고 있었다. 캔맥주를 두어 개 비웠지만 정신은 말짱했다. 잠이 쉬이 올 것 같지 않았다. 뭔가 대책이 있어야 할 텐데. 이렇게 앉아서 당할 수는 없었다. 주차장에 방범용 카메라를 달면 어떨까? 낮에 인터넷을 뒤져보았더니 방범용 CCTV는 시청에서 설치해 준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이유를 대면 담당자가 수긍할까? 사비를 들여서 다세대 건물 입구에 소형 카메라를 다는 것도 한 방법이다. 설령 그것이 범죄나 폭력을 막진 못하더라도 그의 불안감은 덜어줄 것이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마음을 졸일 수야 없지 않은가.
냉장고를 열어 캔맥주를 하나 더 꺼내려는데 휘파람 소리에 이어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독서실에 갔던 큰애였다. 밤늦게 휘파람을 불면 이웃들이 싫어한다고 주의를 주었지만 큰애는 언제나 휘파람으로 자신의 귀가를 알렸다. 윤수가 현관문을 열어 주자 비에 흠뻑 젖은 큰애가 들어섰다.
“웬일? 아빠, 잠 안 자고 있었네.”
“비가 많이 오면 전화를 하지 그랬냐, 태우러 갈 수 있었는데.”
“걸어도 오 분이면 오는데 차는 무슨 차야?”
자기 방으로 들어가려던 큰애가 지나가는 말처럼 참, 아빠. 왜 전화 안 받았어? 라고 했다. 오늘 조금 일찍 끝나니 학교에 태우러 오라고 공중전화에서 집에 전화했는데 안 받길래 아빠한테 했었다는 것이다.
“정말? 몇 번 했는데?”
“두 번인가, 어제도 했었어. 나는 또 회식하는 줄 알았지.”
큰애는 윤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휘파람을 불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
이 모 씨 사건의 범인은 끝내 붙잡지 못했다.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그 시간대에 이 모 씨 집 근처를 통과한 것으로 추정되는 검은색 승용차를 방범용 CCTV로 확인했다. 그러나 카메라의 화질이 좋지 않아 차량번호는 알아내지 못했다. 경찰은 이 씨가 평소 사회적 이슈에 대한 집회 참석과 1인 시위 등으로 얼굴이 알려졌고 이로 인해 표적이 되었을 거라며 사건을 미제로 종결했다. 이 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무차별 폭력을 가한 그들이 “겁이 없다. 뭘 믿고 그러냐. 조용히 살아라”라는 말을 남겼다고 밝혔다. <끝>
※ 2010년 <제주작가> 신인상 공모에 가작으로 당선된 작품입니다. 원고지 110장 분량을 90장으로 줄이고 일부 수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