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권태롭지 않은 노년을 위하여(1/5)

⁋ 이게 소설이라고?... 05

by 둘리아빠




“오른쪽 고관절 골절입니다. 할머니 고통이 심하셨겠어요.”


삼십 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응급실 의사가 다가와 그에게 말했다. 남자답잖게 얼굴이 유난히 허여멀겋고 오른쪽 귓불에 작은 링 모양의 귀걸이를 달고 있었다. 의사의 목소리는 전하고자 하는 내용과는 동떨어지게 무척 건조했다. 누군가 ‘고통’이라는 단어를 포함한 문장을 발음할 때면 무의식적으로 담는 동정심이나 연민 같은 감정이 거세된 어조였다. 표정에서도 안타까워하는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내는 링거주사를 오른팔에 꽂은 채 응급실 한쪽 구석의 침대에 널브러져 끙끙 앓는 소리를 해댔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했으나 허리 아래를 움직일 때마다 주름진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의사가 보여 준 엑스레이 사진에는 골반과 허벅지뼈 사이의 연결 부위에 벌어진 틈이 뚜렷하게 보였다. 의사는 볼펜으로 골반뼈, 대퇴골, 연골 부위 등을 가리키며 고관절 구조를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 골반과 다리를 이어주는 고관절은 체중을 지탱하고 다리 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했다. 환자의 나이가 있어서 뼈가 다시 붙기는 어렵고, 인공관절로 교체하는 수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름쯤 입원을 해야 하는데 회복 속도에 따라 치료 기간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간호사가 병실이 정해지는 대로 환자를 옮기게 될 거라며 입원 수속에 관한 사항을 알려주었다.


아내가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은 것은 오후 세 시쯤이었다. 농협에서 운영하는 읍내 장례식장을 막 나서려는 참이었다. 중증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를 요양원에 보내고 혼자 살던 동네 늙은이의 장례였다. 가끔 어울려 소주 한잔했던 사이라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러 갔다. 나이는 그와 엇비슷했으나 이른 죽음인지 늦은 죽음인지, 이도 저도 아닌 적당한 죽음인지 그는 쉬이 판단할 수 없었다. 조문객들 사이에 망인이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자식들로부터 노골적인 냉대를 받았다고도 하고 혼자 너무 외로워서 그랬다는 말도 있었다. 굳은 얼굴로 조문객을 맞는 상주들에게 소문의 진위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에게 아내의 사고를 알려준 것은 전기 검침원이었다. 달마다 한 번씩 전기 사용량을 확인하기 위해 방문하는데 오늘이 그날인 모양이었다. 아내와 검침원의 말로 미루어 짐작하면 아내를 다시 보지 못할 수도 있었던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여느 날처럼 경로당에서 노인네들과 소일하다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미닫이로 된 현관문을 열려다 다리가 엇갈리면서 몸의 균형을 잃었다. 아내는 어, 어, 하면서 두 팔을 활개 치다 뒤로 발랑 넘어졌다. 본능적으로 머리를 들어올리기는 했는데 허리 언저리에서 딱! 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손을 짚고 일어나 보려고 했지만 바위에 온몸이 짓눌린 것처럼 옴짝할 수 없었다. 12월 초순이라 꽤 쌀쌀한 날씨였다. 아내는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등을 댄 채 두어 시간 가까이 멀뚱히 누워 있었다. 이대로 죽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와락 겁이 났지만 어떻게 해볼 수도 없었다. 옆집은 멀리 떨어져 있어 소리를 쳐도 들리지 않을 터였다. 때마침 전기 사용량을 조사하러 다니던 검침원이 그 모습을 발견해 119에 신고를 한 것이었다. 하늘이 도왔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저녁 무렵에 아내를 입원 병실로 옮겼다. 4인실을 원했지만 6인실밖에 없었다. 게다가 건물의 중간 부분이라 창도 없어 답답해 보였다. 아내의 병상은 출입문을 기준으로 오른쪽 가운데 자리였다. 아내의 병상 옆 안쪽으로는 근육이 전부 삭아 뼈만 남은 듯한 노인이 입을 헤 벌린 채 주검처럼 누워 있었다. 머리카락이 전부 빠지고 피부가 창백하여 나이를 짐작할 수 없었다. 그 반대편에는 폐에 염증이 있다는 노인이, 아내의 병상 건너편에는 골반에 금이 간 노인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출입문 옆 좌우 병상은 아내처럼 고관절 수술을 하고 퇴원을 기다리는 노인과 교통사고로 다리 골절을 당했다는 아가씨 자리였다. 아가씨를 제외하고는 전부 육십 대 후반은 넘어 보였다. 간병하는 아줌마가 둘이 있었고 나머지는 간병인 없이 보호자가 곁에서 병시중을 들고 있었다.


아들이 성인용 기저귀, 화장지, 물티슈, 일회용 비닐장갑, 생수, 세면도구 등 입원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챙겨왔다. 아들은 당장 간병인을 부르자고 성화였다. 간병비는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도 했다. 나이가 있으신데 괜히 고집부리다 아버지마저 쓰러지면 어떡할 거냐며 울상을 지었다. 아들의 표정과 목소리에 안타까움이 서려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는 자의식 때문에 마땅히 자신이 아픈 어머니를 돌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아내를 병원에 남겨두고 집에서 혼자 지내는 게 맘이 편하지 않을 것 같았다. 별로 하는 일도 없어 보이는 간병인들에게 하루 10만 원이 넘는 돈을 주는 것도 아까웠다. 아내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옆에서 말벗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며칠만 아내 곁에 있어 보겠다고, 힘들면 그때 가서 간병인을 부르겠다고 아들에게 말했다. 안절부절못하는 아들 곁에서 며느리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다음 날 오전에 고관절 수술을 마쳤다. 담당 의사는 수술은 잘 되었으니 경과를 지켜보자고 말했다. 별다른 후유증이 없다면 일주일 후에는 퇴원할 수 있다고 했다. 마취가 풀리면서 ‘섬망’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으니 놀라지 말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노인 수술 환자들에게 대부분 발생하는 증상입니다. 사람을 못 알아볼 수 있고 환각이나 환청, 정서불안 현상을 동반합니다. 보통은 사나흘 정도 지속되고요, 심하면 치매로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는 알았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가 하는 말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다시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저 수술 후 회복 과정에서의 주의 사항 비슷한 것이라 생각했다. 약은 하루 세 번 식후 30분 이내에 먹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키가 작고 축 처진 뱃살 때문에 둔해 보이는 중년의 의사는 환자가 너무 고통스러워하면 진통제 처방을 해드리겠다며 병실을 나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섬망이라는 게 그렇게 아내를 괴롭힐 수도 있다는 것을 그가 알 도리는 없었다. 아내는 마취 기운 때문인지 오후 내내 잠만 잤다. 그는 간이침대에 누워 쪽잠을 자거나 병원 복도를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아내는 올해 일흔여섯 살이었다. 그보다 두 살이 어렸다. 돌이켜보니 아내와 함께한 시간도 오십 년이 훌쩍 넘었다. 그는 지방직 공무원으로 생계를 꾸리다가 정년퇴직했다. 아들 하나와 딸 둘을 낳았고, 남들 입방아에 오르는 일 없이 얌전하게 자란 애들을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나이에 짝을 맺어 분가시켰다. 터무니없는 욕심이나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그저 가족들이 건강하고 편하기만을 바랐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주변에 아쉬운 소리도 하지 않고 살아왔다. 큰 굴곡도 없었고 신문에 이름 한 번 실릴 일도 없었던 지극히 평범한 생애였다. 굳이 그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꾸려왔을 법한 삶. 가족의 안녕을 앞세우다 보니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게 뭐였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말년에 자식들 때문에 약간 속상한 일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만하면 한세상 용케 잘 견뎌왔다 싶기도 했다.


노년에 접어들면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 같은 것인지, 자신과는 상관없을 거라 여겼던 뇌졸중이 느닷없이 그를 찾아왔다. 칠순 잔치 핑계 삼아 자식들에게 한껏 대접을 받은 며칠 후였다. 오른쪽 다리와 팔을 움직일 수 없었다. 자신의 의지가 닿지 않는 반쪽의 육신을 바라봐야 하는 심경이 황당하고 난처할 따름이었다. 고통스러운 재활치료 끝에 이제는 거의 예전 기능을 회복하기는 했지만, 입원 기간을 포함하여 꼬박 일 년을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세끼 밥을 떠먹여 주고 대소변을 받아내며 수발하느라 아내가 팔자에 없는 큰 곤욕을 치렀다. 전생에 무슨 몹쓸 죄를 지었다고 늘그막에 그 생고생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아내는 잊을 만하면 그때를 소환하여 그의 죄책감과 부채 의식을 일깨우곤 했었다.


그가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하자 이번에는 아내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약을 먹지 않으면 숟가락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손을 덜덜 떨어댔다. 완치는 어렵고 약물로 증상을 완화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다. 그때도 아내는 ‘전생에 무슨 죄’를 불러내어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육신의 허술한 틈을 발견한 질병들은 제 세상 만난 듯 경쟁하며 아내의 몸을 파고들었다. 어스름 무렵이면 까닭 없이 불안해하며 가슴과 머리 통증을 호소하기도 했다. 거기다 퇴행성 관절염, 위궤양, 호흡기 질환 들이 묵은빚 문서를 들이대는 빚쟁이들처럼 시도 때도 없이 아내를 찾아왔다. 입원이라도 할라치면 담당 진료과를 정하지 못해 의사들이 골머리를 앓을 정도였다. 지금 아내는 하루에 열 가지가 넘는 약을 밥처럼 먹는다. 약을 그렇게 많이 받아들이고도 위벽이 견뎌낸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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