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권태롭지 않은 노년을 위하여(2/5)
⁋ 이게 소설이라고?... 06
“영식아, 여기가 어디냐? 우리 집에 가자.”
몇 시쯤 되었을까, 잠결에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녁도 먹지 않은 채 줄곧 잠에 빠져있던 아내는 병실의 불이 꺼지고도 한참이나 지난 후에 깨어났다. 낮에 짧은 잠을 여러 번 자다 깨다 한 그가 쉬이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고 있을 때였다. 묵직하게 드르렁 코 고는 소리와 거칠고 불규칙한 호흡 소리들이 병실의 어둠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영식이는 그의 아들 이름이었다.
그가 서둘러 일어나서 병상 머리맡 위쪽의 스위치를 눌러 작은 형광등을 켰다. 보호자용 간이침대가 삐걱 소리를 냈다. 코 고는 소리가 잠깐 멈추었다가 다시 이어졌다. 일어나 앉아 있던 아내가 무심한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마치 낯선 사람을 대하는 듯 아무런 감정이 없는 얼굴이었다. 가슴팍과 손가락에 부착했던 기기들이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지고, 팔뚝에 꽂혀 있던 링거 주사기도 뽑혀 나뒹굴고 있었다. 흘러나온 링거액이 아내의 환자복과 하얀 시트에 어린애 오줌 자국 같은 얼룩을 만들어 놓았다.
“당신은 누구요? 아프지도 않은 사람 데려다가 왜 주사를 놓고 야단이요? 제발 우리 아들을 불러주시오. 나는 집에 가야 한단 말이요.”
아내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의사가 말한 마취 후유증인 것 같았다. 그는 간호사를 불러 주사를 다시 꽂고 환자복을 갈아입혔다. 젖은 시트 위에는 임시로 기저귀 패드를 덮어두었다. 의사는 섬망 증상으로 얼마간 사람을 못 알아볼 수도 있다고 했었다. 그는 아내의 반응이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 생각하며 마음을 편하게 먹었다.
아내는 쉬지 않고 웅얼웅얼 혼잣소리를 하면서 밤새 잠을 자지 않았다. 옆 병상에서 자고 있는 환자들이 신경 쓰여 아내 손을 잡고 달래면 아내는 그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소변 주머니를 하고 있는데도 화장실에 가야 한다며 침대에서 내려오려 용을 썼다. 그가 한눈을 팔 때마다 주사 바늘이며 소변 줄을 뽑아내려 했다. 당직 간호사가 헝겊 끈으로 아내의 양쪽 팔목을 침대에 묶자, 사람 살리라며 몸부림을 치고 욕설을 퍼부어댔다. 복도를 통해 희뿌연 새벽빛이 병실로 슬금슬금 들어올 즈음 아내가 잠들면서 기나긴 첫날 밤의 실랑이는 끝났다.
아내 몫으로 나온 밍밍한 환자식으로 아침을 때우는데 의사가 회진을 다녀갔다. 아내의 상태를 설명했더니 의사는 예상한 일이라며 덤덤하게 받아넘겼다. 생리적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걱정하지 말라고도 했다. 점심때가 다 되어서 아내가 깨어났다. 그는 수건에 물을 적셔 아내의 얼굴과 손발을 닦아주었다. 묶여 있던 손목의 끈도 풀었다. 검붉은 자국이 선명한 아내의 손목을 한참 동안 주물러 피를 통하게 했다. 끈을 풀려고 몸부림치다 침대에 부딪혔는지 팔뚝 여기저기 피멍이 든 자국도 보였다. 술김에 아내에게 주먹질을 했다가 술이 깨어 자책하는 소심한 술주정뱅이처럼 그는 고개를 외로 꼬고 아내의 상처를 외면했다. 수술하지 않은 왼쪽 다리의 뭉쳐진 근육을 풀어줄 때 아내는 간지럽다는 듯 움찔거렸다. 그의 손길을 내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점심으로 생선이 들어있는 미역국과 소고기 조림, 김치 반찬이 나왔다. 그제 오후부터 먹은 게 없어 배가 고팠는지 아내는 숟가락을 들고 식판에 달려들었다. 그러나 매일 먹던 파킨슨 약을 거른 탓인지 아내는 손을 심하게 떨었다. 찰기가 없는 밥알들이 식판에서 아내 입으로 가는 동안 반 이상 밑으로 떨어졌다. 미역국은 숟가락 위에서 제멋대로 출렁거리다 대부분 흘러내렸다. 젓가락질도 제대로 하지 못해 반찬을 집어 먹을 수 없었다. 아내의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던 그가 숟가락을 뺏어 밥을 떠먹였다. 식사를 마치고 간호사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의사는 불편하더라도 얼마간 파킨슨약 복용을 중단하는 게 좋겠다고 간호사를 통해 알려왔다. 회복을 위한 처방약과 약효가 서로 부딪힐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밤은 낮 동안 세상을 움직였던 에너지들이 재충전을 위해 휴식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병원의 밤은 바깥세상과는 거꾸로 에너지를 발산하는 시공간이다. 해가 떠 있는 동안 움츠려 있던 통증들이 슬그머니 되살아나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병실이나 복도, 화장실 등에 숨어 있던 수만 가지의 병균들이 새로운 숙주를 찾아 어둠 속을 배회하기도 한다. 그들이 다시 은신처로 돌아가 웅크리는 아침이 오기까지 환자들은 탈출로가 막혀버린 포로들처럼 수굿하게 체념하면서 더 강한 진통제를 달라고 간호사 호출 벨을 누른다.
아내에게도 밤은 고통의 시간이었다. 낮 동안 주변의 어수선함에 휩쓸린 듯 얌전하다가도 밤만 되면 환청과 환영에 시달렸다. 마치 앞에 앉은 누군가와 대화하듯 혼자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툭하면 집에 가겠다며 병상에서 내려오려 했다. 병실 출입문을 가리키며 누가 자신을 잡으러 왔다고 겁에 질려 소리를 질렀다. 천장 위에서 시끄럽게 구는 쥐새끼들을 어떻게 좀 해달라고 그를 닦달했다. 가만히 있는 옆 병상의 환자에게 느닷없이 왜 남의 흉을 보냐며 듣기 거북한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는 아내를 붙잡아 침대에 눕히거나 아내의 입을 손바닥으로 눌러 막았다. 어떤 때는 화를 참지 못해 찰싹 소리가 나게 아내의 손등을 때리기도 했다. 병실의 다른 환자들이 제발 잠 좀 자자, 며 불평하면 간호사에게 수면제를 얻어다 억지로 먹였다. 아내는 수면제를 먹고도 삼십 분쯤 그와 실랑이를 벌이다 잠이 들곤 했다.
밤에 잠을 설치는 것을 빼면 아내를 간병하는 것이 생각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하루 세 끼 식사를 받아 떠먹여 주고, 식사가 끝나면 틀니를 빼어 칫솔로 깨끗이 닦은 후에 다시 끼워 주고, 젖은 수건으로 얼굴과 손발을 닦아 주고, 때맞춰 기저귀를 살펴서 갈아 주면 되었다. 더러워진 환자복을 갈아입히거나 소변 주머니가 차면 용량을 체크하고 간호사에게 알려주는 것도 그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보호자용 간이침대에서의 잠자리가 불편하기는 했다. 이틀째 되는 날부터 허리가 결리고 관절 여기저기서 뿌드득거리는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왔다. 밤에 제대로 잠을 못 자서 그런지 낮에 쪽잠이 늘었다.
육신의 일부가 뭉개졌다고 감각이나 감정마저 훼손되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의지 대로 자신의 몸을 어쩌지 못하면서, 육신을 움직이는데 필요했던 에너지들이 옮겨와 집중된 감각은 바늘 끝처럼 날카롭게 벼려진 듯했다. 하루에 두세 번 기저귀를 갈 때마다 진땀을 흘렸다. 아내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와중에도 아랫도리를 내보이는 게 민망한지 허벅지를 자꾸 오므리며 손으로 치부를 가리려 했다. 지금의 아내에게 그는 얼굴도 모르는 외간 남자인 셈이었다. 할 수 없이 옆 병상 간병인에게 아내의 두 팔을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아내는 여자 간병인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지 허벅지의 힘을 조금 풀어주곤 했다.
그는 물티슈를 한 움큼 뽑아내어 아내의 사타구니를 여러 번 닦아냈다. 검버섯이 여기저기 피어 있는 갈퀴 같은 그의 손가락이 아내의 앙상하게 내려앉은 사타구니를 스칠 때마다 그는 연민과 비애, 애틋함 같은 복잡한 감정에 짓눌렸다. 목울대에서 난데없이 울컥하는 뜨거운 기운이 올라와 황망하게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마음 한구석에서 이 나이에 집사람 아랫도리 수발까지 해야 하느냐는 자괴감이 꿈틀거렸지만, 그가 자처한 일이었으니 그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노후 설계, 노후 설계 하는데 말이야, 그게 늙어 쭈그렁이가 되었을 때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만의 문제가 아니거든. 먹고 사는 거야 어떻게든 해결이 된다고. 그런데 갑자기 치매나 큰 병에 걸린다고 생각해 봐. 그럴 때 경제적으로 버틸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게 진정한 노후 설계야. 옛날에는 죽을 때 자식들에게 보탬이 되라고 생명보험을 많이 들었었는데, 지금은 간병비 대느라 자식들 살림살이 거덜 낼까 봐 간병보험 들어두는 노인들이 많대요.”
아내의 병상 건너편 구석의 폐렴으로 입원한 환자의 보호자였다. 육십 대 후반이나 칠십 언저리로 보이는 남자로, 늘 빨간색 모자에 얼룩무늬 군복 차림으로 지냈다. 군복은 시장에서 구한 듯 작업복처럼 품이 넉넉했다. 남자의 아내는 멀쩡해 보였다. 화장실도 혼자 다녔고 식사하는 데도 불편함이 없었다. 그런데도 남자는 하루 종일 환자 곁에 죽치고 있었다. 남자는 노동자들의 시위를 보도하는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서, ‘좌파가 별거 아니야, 정부를 비판하면 모두 좌파라고. 세금 한 푼 안 내는 것들이 먹고살게 해주는 나라에 고마운 줄 알아야지.’라며 목청을 높이곤 했다. 그러면서도 간병이나 노인 요양보호 같은 보건 정책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불만을 쏟아냈다.
“나라에서 돈 없고 불쌍한 서민들 생각해 주면 좀 좋아? 간병인을 안 빌어도 간호사들이 간병까지 하는 병원을 크게 늘려야 하는데 말이야, 왜 대학병원 같은 데서만 그런 서비스를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요양 등급을 받는 것도 문제가 많더라고.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신청도 받아주지 않아요. 요양병원에 있으면 신청할 수 있고 일반병원에 있으면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냐고? 지나가던 길고양이가 다 웃을 얘기잖아. 그런데 어르신은 요양 등급이나 받으셨수?
그는 요양 등급 제도라는 걸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때껏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세상에는 살아가는 데 큰 불편함이 없다면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들이 널리고 널렸다. 몰라도 아무렇지 않은데 괜히 어설프게 얻어들은 정보들이 삶을 복잡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마치 위장병의 증상을 알아버리면 속이 더부룩할 때마다 병원을 찾아가게 되는 것처럼. 그러더라도 조만간 건강보험공단에 전화해서 어떻게 신청해야 하는지, 어떤 혜택이 있는지 자세히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