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권태롭지 않은 노년을 위하여(3/5)

⁋ 이게 소설이라고?... 07

by 둘리아빠




수술한 지 나흘째. 아내의 섬망 증상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두서너 시간 멀쩡한 듯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정신을 놓아버리는 패턴이 반복됐다. 같은 병실의 간병인들은 치매로 진전된 게 아니냐며 쑤군거렸다. 의사는 나이가 들어 회복이 더딜 뿐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다. 아내의 발작이 심해지면 신경안정제와 수면유도제를 처방해 주었다. 의사는 다리 근육이 굳지 않게 보행 보조기를 이용해 걷기 연습을 자주 해야 한다고 했지만 아내는 완강히 거부했다. 아내의 병든 육신이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고, 온전치 못한 정신은 육신을 버거워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셈이었다.


아내는 아프지도 않은 사람을 병원에 잡아두는 법이 어디 있느냐며 집에 보내달라고 난리를 피웠다. 다른 환자나 간병인들에게 엉뚱한 전화번호를 불러주며 제발 아들에게 연락해 달라고 애처롭게 사정했다. 옆에서 달래는 그를 난폭하게 밀치거나 베개를 집어 던지기도 했다. 병실 밖까지 들릴 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그에게 욕설을 할 때도 있었다. 평생 아내의 입에서 들어보지 못한 험한 말들이었다. 그는 같은 병실의 사람들에게 미안해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병원 내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다 돌리며 사과하고 양해를 구했지만 그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병실을 1인실로 옮기는 방법도 고려해 봐야 했다.


가끔 아내는 그에게 비밀 이야기라도 하듯 소곤거리기도 했다. 한바탕 떼를 쓰고 몸부림치며 애를 먹이다가 조금 진정된 후였다. 마치 제정신이 돌아온 것처럼 표정은 차분했고 눈빛도 안정되어 보였다. 주름진 얼굴에 엷은 미소까지 머금고 있었다.

“내 얘기 좀 들어보시겠소. 우리 남편이란 사람 말이요, 참 착한 게 세상에 아마 그런 사람 다시없을 거요. 남들에게 싫은 소리 할 줄도 모르고. 좀 오래전에 얘기인데, 우리 애가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어요.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차가 와서 아이를 쳤지 뭐예요.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어요. 경찰에서도 운전자가 잘못했다고 하는데 남편은 오히려 애를 닦달합디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좌우를 살피고 차가 안 올 때 건너야 한다면서요. 나는 옆에서 듣다가 하도 기가 막혀 남편에게 따졌죠. 신호를 지키지 않은 차가 잘못이지 파란불에 건넌 아이 잘못이냐고. 다른 아빠들 같으면 운전사 멱살이라도 잡아서 혼내줬을 거라고 했어요. 그 정도로 우리 남편은 어진 사람이죠. 남 가슴 아프게 하느니 차라리 자기가 손해 보고 마는 사람이라니까요. 이날 이때껏 그렇게 살아왔으니 같이 사는 제가 속이 터질 수밖에요.”


아내는 마치 유복한 가정에서 곱게 늙은 노부인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듯 또박또박 표준말을 사용하면서 말했다. 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아내와 눈을 맞추고 귀를 기울이는 척했다. 이따금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 다 이해한다는 몸짓을 보여 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표정에 참담함이나 아내에 대한 안쓰러움이 배어 있지 않기를 소망했다.


“물론 남편에게 서운한 것도 많아요. 시어머니가 치매로 한 오 년 자리보전하다가 돌아가셨는데, 제가 똥오줌 치우느라 죽을 고생을 했죠. 정말 시집살이 한번 호되게 한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어요.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어서 남편에게 말하면, 그 양반이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시중들기 싫으면 나가래요. 아내는 다시 얻으면 되지만 어머니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는 거예요. 얼마나 섭섭하고 서운하던지, 당장 짐을 싸 들고 나갈 생각까지 했다니까요. 그렇게 잘났으면 당신이 직접 치매 어머니 수발해 보라, 라는 심정이었거든요.”


그의 기억 속에는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얘기였다. 그의 아버지는 칠순을 넘기자마자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에 별다른 병치레도 없었다. 편안하고 고요한 죽음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오래 사셨지만, 치매와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당신에게나 자식들에게나 힘든 시간이었다. 결국은 패배할 수밖에 없는 전투에서 기약 없는 소모전을 치르는 듯했다.


그의 노쇠한 기억 회로에는 아내가 어머니를 구박하는 모습들이 초점이 맞지 않는 낡은 흑백 사진처럼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약을 먹지 않는다고, 밥을 흘린다고, 똥오줌을 너무 많이 싼다고, 밤중에 곱게 자지 않고 귀찮게 군다고……. 어쩌면 그의 기억이 왜곡되었을지도 몰랐다. 인간은 기억마저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아내는 딸들에 대한 자랑도 했다. 딸들이 똑똑해서 과외 한 번 제대로 시켜 준 적 없는데 학교 다닐 때 상이란 상은 다 받아와서 처치 곤란할 정도였다고, 작은딸은 얼마 전에 소설책도 낸 유명한 작가라고, 손자들 대학 시험 준비하고 있어서 자꾸 병문안 온다는 것을 자신이 말렸다고. 그 말을 할 때 아내의 입이 헤벌어지더니 흐뭇한 미소가 자잘한 주름의 물결을 따라 얼굴 전체에 번졌다. 마치 어렵게 얻은 귀여운 장손을 처음 안은 할머니 같은 표정이었다.


두 딸은 그의 칠순 잔치 이후로 친가에 왕래를 끊었다. 드러내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재산 문제 때문인 듯 보였다. 그가 죽으면 재산을 아들에게 물려주겠다는 사실을 하필이면 그날 딸들에게 알렸다. 그로서는 시류를 따르겠다는 생각이었다. 딸들의 시댁이 그럭저럭 먹고 살 만하다는 것도 그런 결정을 하는 데 한몫 거들었다. 그런데 시류가 달라졌다는 것을 그는 몰랐고 타이밍도 어설펐다. 미리 귀띔이라도 했으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딸들이 그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며 원망할 수도 있겠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전화도 받지 않고 외손자들도 발길을 끊자, 그는 한동안 자책하며 후회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이유로 끊어질 인연이라면 일찌감치 정리하는 것도 좋은 게 아니냐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제는 딸자식들 없는 듯 사는 게 익숙해졌다. 그 딸들 이야기를 아내는 하고 있었다. 소설책 이야기는 그도 처음 듣는 내용이었다. 아내의 머릿속에서 기억은 왜곡되고 희망 사항들이 실현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 같았다. 마음의 평안을 가장해 힘든 세상을 헤쳐 나가기 위한 생존 본능이지 싶었다.


“고관절 수술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거동은 좀 불편합니다. 치매요? 그런 증상은 아직 없습니다. 예, 예. 그럼 퇴원하면서 그곳으로 모시고 가면 되겠습니까? 의사 소견서가 하나 필요하다고요? 예, 알겠습니다. 아참, 앰뷸런스를 보내주나요? 얼만데요? 뭐가 그렇게 비싸요? 알았어요! 제 차로 모셔가죠”


화장실 쪽 병상의 노인 환자 보호자가 결국 적당한 요양병원을 찾은 모양이었다. 며칠 전부터 여기저기 전화해서 문의하는 눈치였다. 키가 멀쑥하고 눈매가 날카로운 사십 대 초반쯤의 남자로 성깔깨나 있어 보였다. 간병인에게 어머니를 맡기고 가끔 병실에 얼굴을 비치곤 했는데, 내일 퇴원하면서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입원시키기로 작정한 듯했다. 아내보다 열 살은 젊어 보이는 남자의 어머니는 수술 경과가 좋은지 보조 기구에 의지해 어느 정도 거동이 가능했다. 그의 아내처럼 수술 후 섬망 증상도 겪지 않았다고 했다. 노인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지만 남자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도 돌아가셨는데 집에 혼자 두면 자기가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고 했다. 노인은 어련히 알아서 잘할 수 있다고 했지만 아들의 거듭된 면박에 입을 다물었다.


노인이 낙담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자신을 도와 아들에게 한마디 해주기를 바라는 듯한 간절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가 관여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노인의 시선을 피했다. 노인에게는 노인의 입장이 있고 아들에게는 아들의 입장이 있을 것이다. 지금 둘은 노인의 삶의 방식을 누가 결정하느냐는 문제에 대해 서로 명분을 주장하며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삶의 결정권을 시나브로 잃어간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그게 자신의 육신에 대한 것이든 가정이나 사회생활에 관한 것이든. 늙으면 그 결정권을 스스로 포기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밖에 없으며, 그게 요양병원에 들어가기 싫어하지만 결국은 노인이 아들의 뜻을 따라야 하는 이유였다.


혼미한 정신 속에서도 병실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아내의 얼굴에 얼핏 불안한 기색이 스쳤다. 요양병원이라고 하지만 이름만 병원일 뿐, 실상은 죽음을 앞둔 이들이 잠시 거쳐 가는 중간 기착지에 지나지 않을 터였다. 회복이나 재활이 아니라 육체적인 통증만 달래다가 결국은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곳 말이다. 아내는 체념한 표정으로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는 노인을 힐끗거리다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아내의 시선을 외면하고 텔레비전으로 고개를 돌렸다. 화면 위로 요양병원 침대에 손발이 묶인 채 집에 보내달라고 소리 지르며 발버둥 치는 아내의 모습이 언뜻 나타났다 사라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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