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권태롭지 않은 노년을 위하여(4/5)

⁋ 이게 소설이라고?... 08

by 둘리아빠




예전에 아내는 혹시 자신의 정신이 오락가락하거든 요양병원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중증 치매를 앓는 아내를 십여 년간 혼자 집에서 돌보다가 결국 목 졸라 살해하고 자신도 따라 죽으려다 실패한 팔십 대 노인에 대한 텔레비전 뉴스를 보던 중이었다. 오랜 가난과 병고에 자식들의 발길도 뜸했던 외로운 부부였다. 아내는 ‘아이고 저런, 저런. 어쩌면 좋아’ 장탄식하며 안타까워했다. 충격을 받았는지 아내는 저런 상황이 오면 주저하지 말고 자신을 요양병원에 보내달라며 그의 다짐을 받기까지 했다. 절대로 원망하지 않겠다고, 가족들이라도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얼마 후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는 올케의 면회를 다녀와서 아내는 며칠 동안 침울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내와 비슷한 연배이기도 한 올케는 뇌졸중 후유증으로 식물인간이 된 지 3년 넘게 요양병원에서 하루 종일 누워만 지내고 있었다.


그날 밤도 아내는 수면유도제를 먹고 한참을 혼자 중얼거리다 잠들었다. 그는 조용히 병실을 나왔다. 파리한 형광 불빛이 드리워진 복도를 따라 십여 미터를 가면 열 평 남짓한 휴게실이 있었다. 중년 여자 하나가 의자에 앉아 음료수 자판기에서 쏟아지는 불빛에 의지해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중이다. 아내의 병상 맞은편에 골반을 다친 노인을 돌보는 간병인이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간병인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소리 없이 웃었다. 오십 대 초반쯤 되었을까, 중국에서 온 조선족 출신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여기저기 식당에서 주방 보조원으로 일을 했었는데, 2년 전부터 간병 일에 뛰어들었단다. 몸이 좀 고되기는 하지만 그럭저럭 적응해 가는 모양이었다. 최저임금도 안 되는 보수였지만 얼마간의 용돈만 빼고 나머지는 전부 중국에 있는 집으로 보낸다고 했다. 병실에서 간병인들 사이에 오고 가는 이야기들을 주워들어 알게 되었다.


“힘드시죠?


그가 의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옆자리에 앉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녀가 돌보는 노인은 간병인들이 하는 일 없이 돈만 많이 받아 간다고 대놓고 군욕질을 하곤 했다. 밥 먹여 주고 기저귀 갈아주는 것 말고 하는 게 뭐가 있느냐면서. 간병인들끼리 시끄럽게 수다를 떠는 통에 낮잠도 제대로 못 자겠다고 투덜대기도 했다. 병문안을 온 아들에게 간병인을 내보라는 말도 여러 번 했다. 뻔히 간병인들이 듣는 앞에서였다. 그럼 누가 어머니 간병을 하느냐며 아들은 오히려 역정을 냈다. 노인은 돈 때문이라기보다는 아들이 자신 옆에 있어 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아닙니다. 막일하는 것도 아니고 별로 힘들지 않습니다.”


한국에 들어온 지 오래되었는지 말투나 억양으로는 조선족인지 잘 분별할 수 없었다. 그는 간병인으로 생활한다는 게 어떤 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성질이 괴팍한 환자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식사는 제대로 챙겨 먹는지, 샤워나 빨래는 어디서 하는지, 불편한 잠자리에 몸이 견뎌내는지, 간병인을 머슴 부리듯 하는 간호사들의 비위는 어떻게 맞추는지……. 그렇다고 생판 낯선 여자에게 물어보는 것도 어색했다. 여자는 그를 귀찮아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먼저 말을 붙여오지도 않았다. 오 분쯤 앉아 있다가 침묵이 부담스러워 그만 일어서려는데 여자가 조심스러운 어투로 그에게 말했다.


“주제넘은 이야기인 줄 압니다만, 제가 도와드렸던 노인분들은 대부분 집에 가고 싶어 하더군요. 내일 퇴원하실 옆 침상의 할머니도 그랬잖아요. 죽더라도 집에서 죽고 싶다고. 그런데 그게 쉽지 않잖습니까.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가족들이 많더라고요. 선생님네 할머니도 집에 가기를 원하실 텐데. 저렇게 치매기까지 있으시니 선생님께서 걱정이 많으시겠어요.”


다음 날 오후에 고관절 수술 노인이 퇴원했다. 환자의 아들이 퇴원 수속을 받고 자신의 차에 태워 요양병원으로 데려갔다. 노인은 맹수 앞의 무력한 초식동물처럼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걸음걸이가 약간 불안해 보였지만 노인은 걸어서 병실을 나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겁에 질린 듯한 아내의 시선이 노인의 뒤를 쫓았다.


노인이 떠난 후에 노인을 돌보던 간병인도 여행용 카트 두 개에 소지품들을 구겨 넣고 병실을 나갔다. 그녀도 조선족 출신이라고 했다. 오전에 옷가지와 세면도구들을 정리하면서 그에게 슬쩍 ‘간병인 쓰지 않아도 되겠어요?’라며 물어왔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아내를 남의 손에 맡기는 게 선뜻 내키지 않았다. 그녀는 무료 급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다 자기 앞에서 마감이 되어버린 노숙자처럼 실망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따로 거주지를 마련하지 않았다고 하니 새로운 간병 요청이 올 때까지 찜질방이나 여관에서 시간을 보내야 할 터였다. 다른 간병인의 말로는 빈 병실이 있을 때 간호사들의 양해를 얻어 눈치껏 시간을 때우기도 하지만 그런 행운은 드물었다.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가 하나 왔다. 초등학교 동문회에서 보낸 동네 노인의 부고였다. 늙은이들에게 이런 것은 보내지 말았으면 싶었지만 새로 회장이 된 후배가 부득불 우겨서 보내줬다.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느냐는 핑계를 댔다. 간간이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동문들의 본인 부고나 자식들의 결혼 소식을 알려왔다. 그는 망자의 이름 석 자를 입안에서 여러 번 굴리다가 죽은 여자가 아내와 친한 사이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동안 동네에서 얼굴을 볼 수 없더니 요양원에 들어간 지 10년도 더 되었다는 이야기를 아내에게서 들은 기억이 났다. 아내에게 노인의 죽음을 알릴 수는 없었다. 대신 부조금 5만 원을 아내 명의로 송금했다. 상제들 중에 아내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상관없었다.


입원 일주일이 넘어가자 아내의 상태는 조금씩 호전되는 듯싶었다. 혼자 중얼거리거나 환청을 듣는 일이 줄어들었다. 답답하다고 주사 바늘을 빼려고 하지도 않았다. 밤에도 큰 소란 피우지 않고 얌전하게 잤다. 썩 내켜 하지는 않았지만 보행 연습도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아들만 찾았다.


“당신 누구요. 누구신데 매일 내 옆에 있는 거요? ”


한번은 아내가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물었다.


“누구긴, 당신 남편이지.”


“무슨 소리요? 내 남편은 칠팔 년 전에 죽었는데. 중풍으로 반쪽 병신이 되어 고생만 하다가 죽었소. 내가 병구완하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데. 죽은 남편이 어떻게 여기에 온단 말이오?”


시간 감각을 상실하는 것도 섬망 증상의 하나라고 의사가 말했다. 그때 남편은 죽었는데 지금 내 앞에 있는 당신이 내 남편일 리가 없지 않느냐. 아내의 머릿속에서는 뒤죽박죽이 된 또 다른 시간이 나름의 질서 속에서 흘러가는 모양이었다. 그는 아내의 손등을 토닥이며 ‘글쎄,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어’라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겁먹은 눈초리로 한동안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오랜 병원 생활 탓인지 아내의 손가락은 윤기가 없이 푸석푸석했고 마디의 주름도 더 깊어진 듯했다.


병원에서의 시간은 병원 밖에서의 시간과 달리 흘렀다. 주체할 수 없는 게 시간이었다. 환자의 고통을 온전히 공감할 수 없는 보호자나 간병인들에게 병원 생활은 지루한 기다림과의 싸움과도 같았다. 정부를 비판하면 모두 좌파라던 군복은 휴대전화로 하루 종일 화투를 치느라 심심하지 않은 듯했고, 병원 생활에 이골이 난 간병인들은 책을 읽거나 병실을 돌아다니며 동료들끼리 수다를 떨었다. 시간 맞춰 낮잠을 거르지 않고 자는 간병인도 있었다. 그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졸았고 졸다가 깨어 뒷짐을 진 채 복도를 어슬렁거렸다. 사는 게 다 그렇지만 병원에서의 시간도 일상의 패턴이 되면서 익숙해졌다. 마치 고통이나 슬픔이 반복되면 신체와 정신이 서서히 적응해 가듯이.


아내와의 결혼 50주년은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용케 아들이 기억하고 있었다. 아들은 반백 년을 같이 살았는데 그냥 보내기는 섭섭하지 않느냐며 가족끼리 식사나 하자고 했다. 아내와 한 지붕 밑에서 같이 뒹굴며 살아온 게 벌써 오십 년이라니. 그의 뇌리에 압축된 채 방치되었던 아내와의 삶들이 한순간 쫘르르 풀렸다가 천천히 사라졌다. 그즈음에 아내가 뜬금없이 결혼반지 하나 해달라고 그를 졸랐다. 흔해 빠진 금반지였지만 그들도 결혼반지란 걸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엠에프인지 뭔지 하는 난리에 덥석 나라에 바쳤다. 무슨 대단한 은덕을 입었다고. 지금 생각하면, 남이 장에 간다니 거름 지고 쭐레쭐레 뒤따라가는 것처럼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가 막무가내로 우기는 통에 마지못해 반지를 내놓은 아내는 못내 섭섭해했다. 그걸 50주년 핑계에 새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들 내외랑 저녁을 먹고 사진관에서 기념으로 가족사진을 찍기는 했지만, 아내의 결혼반지는 차일피일 미루다 오늘까지 와버렸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단편소설) 권태롭지 않은 노년을 위하여(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