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한 지 열흘쯤 되었을 때 의사가 퇴원 준비를 하라고 했다.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내의 정신이 완전하게 돌아오지는 않은 상태였다. 장마철 햇볕 쨍쨍하던 하늘에서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붓듯 아직도 아내의 행동은 예측할 수 없었다. 의사는 더 이상 입원해 있어도 환자의 몸만 고될 뿐 의학적으로 처치할 게 없다고 말했다. 퇴원해서 환경을 바꿔보는 것도 치료의 한 방법일 수 있다며, 일주일이 지나도 변화가 없다면 외래로 신경과에서 인지기능검사를 한번 받아보라고 권했다. 수술 후유증으로 인한 섬망은 보통 사나흘이 지나면 사라지는데 아내의 경우는 임상적으로 특이한 경우라고 말했다. 나이에도 영향을 받겠지만 체질이나 정신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수술이나 치료 과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니 병원을 탓하지 말라는 구차한 변명처럼 들렸다.
아들이 죽 전문점에서 단팥죽을 사 들고 왔다. 어떤 환자들은 집에서 조리해 온 전복죽이나 소고기죽으로 입맛을 돋우기도 하는데, 그의 며느리는 그런 궁량이 부족한 듯했다. 오히려 영양가를 고려한 병원 환자식이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소리로 그의 속을 긁어놓기도 했다. 그렇다고 며느리에게 화를 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내를 휠체어에 태워 병원 옥상정원으로 올라갔다. 낮에만 개방되는 옥상정원에는 환자와 보호자들을 위한 간이의자와 테이블도 있었다. 휠체어를 타거나 링거액 거치대를 끌고 다니며 볕바라기를 하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많았다. 아들이 간이 테이블에 단팥죽을 올려놓고 숟가락으로 떠서 아내에게 먹였다. 다디단 단팥죽에 아내의 식욕이 살아나는지 플라스틱 죽그릇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아내가 아쉬운 듯 빈 그릇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아들이 호주머니에서 무심코 담뱃갑을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었다.
아들은 요새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몸이 말라갔다. 가정이 그리 화목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를 대할 때도 무슨 죄를 지은 듯 기를 펴지 못하고 궁싯거렸다. 그는 아들이 늙은 부모의 인생까지 등에 걸머지고 살겠다는 무모한 욕심을 부리지 않길 바랐다. 아들이 그의 팔꿈치를 붙들고 구석으로 이끌었다. 어머니 퇴원하면 어떻게 하실 거냐고 물었다. 그는 아직 결정된 게 없다고 대답했다.
“요양병원과 요양원을 알아보고 있는데요, 요양병원은 의사들이 있어서 간단한 치료가 가능하기는 하지만 간병인도 부족하고 대부분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많답니다. 그런데 요양원은 주간에 그림 치료나 유치원생 공연 같은 활동들도 있고, 입소자 생일 잔치 같은 이벤트도 자주 한다 하네요. 요양 등급을 받으면 보조가 되어 비용 부담도 덜 수 있고. 제 생각에는 집 근처에 조용한 요양원을 알아보고 어머니를 그쪽으로 모시면 어떨까 싶은데요.”
“…….”
“아버지, 설마 어머니를 집으로 모실 생각은 아니시죠?”
“…….”
“제발 제 입장도 좀 생각해 주세요. 어머니야 기왕 저렇게 되셨으니 어쩔 수 없지만, 어머니 뒤치다꺼리를 아버지에게 맡기고 제가 어떻게 마음 편히 살겠어요? 동네 사람들이 저보고 뒤에서 뭐라 욕할지도 생각해 주셔야죠.”
아들은 아버지를 걱정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체면이 깎일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는 아들의 편안치 못한 마음자리가 안타까웠다. 혼자 사는 모습이 불안하다며 싫다는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보내버린 남자도 생각났다. 그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아들을 다독였다. 아내는 어쨌든 그가 감당해야 할 그의 삶의 일부였다. 딸들에게 아내의 소식을 알려야 하나 잠깐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그의 전화라는 걸 알면 딸들은 받지도 않을 것이다.
그의 어머니가 치매로 오랫동안 자신의 삶을 방기했을 때를 떠올렸다. 아들이었던 그에게 이제 그만 사시고 돌아가셨으면 하는 바람 같은 게 없지 않았을 터였다. 자식의 입장에서 나이 들어 늙은 부모는 밥그릇 같은 존재일지 모른다. 식사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순간 그 효용은 끝난다. 하물며 그릇이 깨어져 거치적거린다면 버리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옛적 노부모 ‘고려장’을 치렀던 자식들을 불효막심하다고 비난만 할 수는 없지 않았을까. 그런데 평생 살 비비며 살아온 아내라면? 오십여 년이 넘는 인연의 무게를 생각하며, 그날 밤 그는 어수선한 병실 간이침대에서 오랫동안 뒤척였다.
금요일 오전에 그는 의사에게 다음 주 월요일 퇴원하겠다고 알리고 집에 다녀왔다. 입원 보름째 되는 날이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낮 동안에는 아내도 얌전하게 굴었다. 잠깐 자리를 비워도 될 것 같았다. 옆 병상 간병인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해 달라고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가는 길에 의료용품점에 들러 휠체어와 이동용 변기, 보행 보조기 등을 구입했다. 혹시나 싶어 성인용 기저귀와 물티슈, 일회용 비닐장갑도 충분히 준비했다. 집 안에 있는 탁자나 받침대, 의자같이 아내의 보행에 방해가 될 만한 것들은 모두 구석으로 옮기거나 창고로 치웠다.
아내를 집에 데리고 가겠다는 그의 말을 듣고 아들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얼굴을 찡그린 채 오른손으로 뒤통수를 긁적긁적하며 허 참, 허 참, 탄식을 해댔다. 아버지의 고집을 알고 있기에 더 따져 묻지는 않았다. 그도 아들에게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다. 우선은 며칠 같이 지내면서 경과를 지켜보겠다고만 했다. 그도 언제까지 견뎌낼지 자신할 수 없었다. 어쩌면 간병하던 아내를 살해하고 자살하려 했던 팔십 대 노인과 비슷한 상황에 맞닥뜨릴 수도 있을 터였다.
엊그제 퇴원한 옆 병실 노인 환자의 말도 그의 불안감을 더해 주었다. 그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노인은 폐와 방광에 염증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 입원을 했었다. 대학교수를 하다가 정년퇴직했다는 말을 언뜻 들은 것도 같았다. 밤마다 시끄럽게 구는 아내 때문에 싫은 소리를 할 만도 한데 노인은 그의 처지를 이해해 주었다. 노인의 아내도 치매로 고생하다 이 년 전에 죽었다고 한다. 치매 판정을 받고도 얼마간은 내외만 사는 집에서 생활했는데, 증상이 악화되면서 급기야 의부증까지 겹쳐 노인을 못살게 굴고 집에 불까지 질렀다. 결국 노인은 아내를 요양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킬 수밖에 없었다. 노인은 아내를 직접 돌보겠다는 결정을 아직도 후회한다며, 자신의 의지를 과신하지 말라고 그에게 말했다. 감당할 수 없는 것을 감당하려는 것도 오만한 태도라며.
하지만 그는 아내를 이렇게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노인처럼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시도는 해보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그의 삶에서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절실함을 갖고 덤벼들어 본 것도 딱히 없었다. 대부분 안전한 길을 택해 조심조심 걸어왔었다. 가족을 위해서라는 그럴듯한 핑계가 있었지만 어쩌면 안일하고 소심한 삶이었다. 치매라는 버거운 짐을 짊어진 아내의 시간을 함께하는 게 그의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용감한 모험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오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가장 가까운 곳에서 팍팍한 삶을 공유해 온 아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내의 정신이 온전하게 돌아와 자기 삶의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을 때까지 만이라도 곁에 있어 주고 싶었다.
그는 환자들이 모두 잠든 병실의 간이침대에 앉아 아내의 손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결심했다. 퇴원하면 아내가 정신이 좀 맑아지는 날을 잡아 동네 보석 가게로 데리고 가서, 백내장으로 흐릿한 아내의 눈에도 찬란하게 빛나 보일 금반지를 끼워 주자. 그리고 치매에 걸린 아내와의 제2의 신혼을 시작하자. 내친김에 사진관에 들러 예복과 드레스를 제대로 갖춰 입고 사진도 찍어볼까. 아마도 노년의 권태로움을 느낄 겨를도 없이 치열한 하루하루가 될 터였다. 그런데 살이 심하게 빠져 쭈글쭈글해진 아내의 손가락에 꼭 맞는 반지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응급실로 향하는 앰뷸런스의 다급한 사이렌 소리가 긴 여운을 끌며 병상의 어둠을 쓰윽 베고 지나갔다. <끝>
※ 2023년 <제주문학> 신인상 공모에 당선된 작품입니다. 원고지 106장 분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