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에게 육아휴직이란? : 넓어지는 아빠의 역할, 이에 비례하여 증가하는 행복
“아빠, 엄마 회사 갔어?” 막내딸이 일어나자마자 묻는다. 아빠를 보자마자 하는 말이 엄마의 위치라니!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수록 더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라는 넘을 수 없는 벽을 마주한다. 그 벽은 종종 넘을 것 같기도 하다가도 늘 미끄러진다.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아이들에게는 엄마라는 단어만으로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사랑을 느끼는 것일까? 사실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엄마, 아빠의 사랑의 양을 측정할 수는 없겠지만 현실적으로 아이를 양육하고, 가정을 운용하는데 아내가 신경 쓰는 부분이 훨씬 더 컸으니까.
한편으로는 사실 내 진짜 마음은 주 양육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주 양육자는 어렵고 무한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평범한 과정이지만 모두 다 어렵고 힘들다. 출산은 임신의 끝이자 양육의 시작이듯 아이는 매번 새로운 끝과 시작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주양육자는 아이들의 육체적인 성장과 함께 정서적인 성장과 단단한 가정을 책임지는 막중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집안에서 내가 하는 일은 아내에게 넘길 수 있다는 옵션이 있지만 아내의 일은 나에게 넘길 수 없다. 아이들이 꼭 엄마와 놀고 싶다는 것을, 엄마랑 꼭 이야기하고 싶다는 것을 아빠가 한다고 무작정 우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변화하는 것이 느껴진다. 내가 어쩌다 저녁약속이 생겨다 외출했을 때, 엄마와 있어도 아빠의 빈자리를 느끼며 아빠를 찾으며, 아빠가 없는 것을 어색해한다.
사실 아이들이 클수록 점점 ‘주’라는 의미가 없어진다. 아이가 스스로 자립하고 있기 때문에 양육보다는 부모와 자식이 함께 성장한다는 의미가 더 어울린다. 그렇기에 그 성장하는 아이의 마음속에 아빠의 존재를 행복과 긍정이라는 단어와 함께 키우려 한다.
아이들의 마음속에 나의 존재가 커지고, 이에 비례한 행복이 커진다는 것은 모든 아빠가 바라는 것이다. 아빠는 단순히 돈만 버는 사람이 아니다. 이를 알게 하기 위해서는 아이들도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오늘도 함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