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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내 차를 누군가 뒤에서 박았다 1

by 산책이

퇴근길, 빨간 불에 정차하고 있던 내 차를 누군가 뒤에서 박았다.

어어어어- 엇!

쿵!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고

동시에 운전석에 있던 내 몸이 안전벨트에 고정된 채 앞 뒤로 흔들렸다.


퇴근한 지 10분도 안 된 상황.

느닷없이 교통사고를 당하게 됐다.

한 게 아니라 당했다란 표현이 아직까지 낯설다.


언제나 사고를 치는 건 나였다.

어디 가서 박고, 실수로 박고 "퍽!" 하는 소리에

"아.. 망했다"라고 읊조린 말까지 블랙박스에 찍히곤 했는데

이번에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나에게도 이런 날이 있구나. 싶었다.


세상사.. 역시 아무도 모른다.

10분 전까지만 해도 드라이브 스루로 햄버거를 사 먹어야지 하며

설레던 찰나였는데. 사고가 난 이후로 식욕도 싹 사라졌다.


어쩌지.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나한테 누명을 씌우면 어떻게 하지?


오토바이를 타고 넘어진 사람이 많이 다쳤으면 어떡하지?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지?


여러 가지 생각이 범벅이 되며 혼란스러웠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최고 나쁜 상황을 상상을 한다.

내 파국적 사고 회로는 불안에 참 취약한 자동문이다.


"괜찮으세요?"


차에서 내린 뒤 내뱉은 첫마디였다.



다행히 헬맷을 쓰고 계셨고, 혼자 일어나실 수 있었으며

큰 외상이 없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

사고를 당한 건 난데,

차 범퍼가 내려앉고, 찌그러지고, 도색이 벗겨나간 건 내 차인데


이상하게 내 마음이 불편하다.


20대 때 한 친구에게 들은 말이 불현듯 스쳤다.

한국사회에서는 함부로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하면 안 된다고.

그 말을 하는 순간, 잘못을 안 했어도 잘못이 네 탓이 된다고 말이다.


"죄송합니다"가 아닌 "괜찮으세요"가 나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순간 안도했다. 이럴 땐 참 씁쓸하기도 하다.


앞을 제대로 못 봐서

브레이크를 늦게 밟았고, 브레이크가 밀렸다고 솔직히 말씀해 주셨다.

내가 상상한 파국의 상황은 찾아오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었다.


하지만 사고가 나면 그 이후가 더 바빴다.

현금으로 청구할 것인지, 보험을 부를 것인지

보험을 부르면 수리는 어디로 보낼 건지

렌터카는 어떻게 할 것인지.. 어른들의 세계란 이제부터였다.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핸드폰을 붙잡고 여기로- 저기로- 전화를 하며

이 상황을 어떻게든 잘 수습하려 했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이게 내 최선이었을까. 나는 무엇을 몰랐을까. 더 지혜로운 방법이 있었을까 하며

나 자신을 의심한다.


사고 당일,

차를 곧바로 정비소에 보내고

렌터카 종류를 고르는 순간도 없이

검은 차를 탄 렌터카 직원이 나타났다.


퇴근길이었고

집에 가는 길은 더욱 막혔다.


그리고 집에 거의 다다르자

아.. 난 괜찮나? 하며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이미 병원진료가 끝난 때였다.


<다음 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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