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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간병, CareTaker-가족의 감정받이

by 산책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싫고

누군가에게 연락이 오는 것도 싫은 때다.

가족도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안부인사도 생략하고 싶다.


그저 나에게 연락 오는 것들은

하소연을 할 때가 필요한 경우였다.

나를 위한 안부로 시작하지만

내가 하는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들은 -

아프고, 힘들고, 고된 이야기들뿐이었다.




가족들은 아팠다.

나만 빼고 모두 병원으로 갔던 때가 있었다.

아파서 입원하고, 간병하러 들어가고

순식간에 혼자 남았다.

물론 내 곁에는 다행히 배우자가 있었지만

원가족 모두가 병원으로 들어갔을 때 무척 슬펐다.


몸만 아픈 줄 알았는데 다들 마음도 아프더라.

병원에서 나온 이후로 언니는 고된 자식 간병을 시작했고

엄마와 언니의 끝없는 분란은 여전히 계속됐고

나는 그 사이 삼각관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계속했다.


지쳤다.

아픈 사람도 힘들고

아픈 사람을 돌보는 언니도 힘들고

아픈 손주를 돌보는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도 힘들었겠지만

나도 힘들었다.

나 혼자 멀쩡히 잘 살고 있는 것도 힘들었다.


그만 듣고 싶었다.

결혼하고 드디어 원가족에게서 탈출할 수 있다 생각했는데

너무 짧았다.

달콤한 자유의 숨결을 미처 마시고 다 내뱉지도 못했는데

여전히 원가족 굴레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는 나 자신도 싫다.



그때부터였을까.

눈 감으면 잠들고 싶고

잠들면 깨기 싫었다.

눈 감았다 눈뜨면 다시 아침이 오는 게 서러워서 자기 싫었다.



몸이 따뜻해지면서 이불과 한 몸이 될 때 여전히 기쁘기만 하다.

이 세상 너머 꿈세상으로 가는 게 더 안전하고 마음이 편하니까.


이 마음이 싫었다.

현실을 회피하는 내가 마음에 안 들었다.


웃으며 사회생활을 하고

이 악물고 일어나 새로운 걸 어떻게든 찾아다니며 지냈지만

여전히 나를 붙잡고

"먹고 싶은 게 없다, 몸이 아프다, 이미 내가 사는 건 망했다, 가족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란 하소연이

나를 잠식시켰다.


에너지 충전을 하는 거라고

마음을 가다듬는 것도 여러 번이지. 난 그저, 방전된 내 몸을 겨우 일으켜

근근이 살아가는 것뿐이라 생각한 지 오래다.

가족의 감정받이로 살아가는 샌드위치 인생 같았다.

그마저도 스스로 못 빠져나오는 무기력한 아이라고.


나를 위한 딱 적당한 온기로 쉬고 싶은데

항상 손안에 쥐고 있는 건 핸드폰이니 마음이 덤 심란하기만 했다.


카톡 프사만 봐도 어지러웠다.

다들 잘 살고 있어서-

가장 행복한 모습을 담은 사진이라는 것도 알지만

그저, 부러웠다.



마음속으로 꾹꾹 누르기만 했던

나의 상황을 글로 풀어써보려 한다.

언제나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프지도 않고, 아픈 자식도 없고,

말썽 부리는 남편도 없으니까.


그런데 왜 자꾸 나는 우울할까. 불행하진 않지만 우울함이 너무 오래간다.

글로 내 마음을 달랠 수 있을까.

나와 비슷한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까.

아니면 이런 나를 이해해 줄 사람들이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면

내가 나아질까 하는 기대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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