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day one me, 싯다르타, 내가 스스로 깨달아야 해
9월 8일 월요일 D-114 책 5쪽 읽고 감상 남기기 <싯다르타>
"오! 싯다르타!"
요즘은 자기 전에 한 번 외쳐본다.
불교 신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고전 문학 [싯다르타]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나도 인생의 깨달음을 얻고 싶기 때문이다.
괜히 책을 읽다 혼자 도취돼서 소리 낸다.
나는 고전문학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휘력이 부족하고, 문해력이 미흡한 시절
책 읽는 허세로 고전문학을 펼쳤다 독서의 즐거움을 잃을 뻔했기 때문이다.
번역된 문장 특유의 낯선 어투도 엄청난 걸림돌이었다.
고전문학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아직도 다양한 편집본이 세계 곳곳에서 재생산되고 있는데
독서 소양이 부족한 나는 고전문학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독서모임 책으로 [싯다르타]를 만났다.
책 모임의 장점 중 하나는 평소에 잘 접하지 않는 분야의 책을 읽을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렇다. 내 손으로 고전문학을 꺼내 읽는 건 어려운 일이다.
모임장의 추천이 없었다면 나는 밤마다 오! 싯다르타를 외칠 수 없었을 거다.
다년간 독서 모임에 참여하며 깨달은 것은,
혼자 읽을 때는 결코 알 수 없는 책의 숨은 매력을
다른 사람들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함께 읽고 나누다 보면 독서가 훨씬 풍성해지고,
생각의 폭도 크게 넓어지게 된다.
처음에 나는 싯다르타가 종교 위인전인 줄 알았다.
내가 아는 부처님 이야기인 줄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고타마 부처가 등장한다.
'하늘 아래 두 부처라니! 이게 무슨 말이지?'
알고 보니 이 책의 주인공 싯다르타는 내가 아는 부처님과 동명이인이었다.
고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사실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소리 내서 읽었다. 아니면 졸음을 참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첫 10장을 읽고 잠에 빠져 기절했다.
독서모임은 한 달 후에 있지만 책을 완독 하기 위해선
미리 조금씩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정말 마취총을 맞은 것처럼 잠들기 때문이다.
심지어 독서모임은 매달 말에 있는데
나의 생리주기가 겹치면서
그 시기에 책을 읽으려고 하면
쉽게 산만해지고 짜증이 많아지며
사람을 만나러 가는 모임을 회피하고 싶어 마음이 난리가 난다.
이런 이유로 나는 9월 초부터 [싯다르타]를 읽기 시작했고
chat gpt가 준 미션처럼 이 날은 딱 5장만 읽기로 했다.
평일 저녁에 녹초가 돼서 귀가한 후
책을 읽는 건 진짜 컨디션이 좋아야 할 수 있다.
근데, 이 날 읽은 [싯다르타]의 5장이 이 책의 핵심내용이었다.
기가 막힌 우연이었다!
싯다르타를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
유튜브에서 책 소개 영상을 몇 개 본 후 나는 확신했다.
이거구나. 오늘 읽은 게 핵심이구나!
내가 지금까지 이해한 바로는
[싯다르타]는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은 자에게
가르침을 받고자 하지만
깨달음 그 자체는 가르칠 수 없다.
깨달음을 말로 배울 수 없다.
사람들은 깨달음을 얻은 자를 존경하고 그 옆에서 수련을 받길 원하지만
그렇다고 깨달음을 전수받을 순 없다.
깨우침은 스스로 해내야 한다.
누가 시킨다고, 가르쳐준다고, 말과 행동을 보여준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고
누가 시켜서 하는 말과 행동이라면
그 경험은 나에게 깨달음을 절대 줄 수 없다.
어쩌면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다.
결국 네가 경험해야 해. 그래서 스스로 깨달아야 해.
나는 스스로 정한 인생을 살고 있는 걸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나는 선택이 여전히 무섭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무겁기만 하다.
실패의 경험 없이는
물리적인 시간의 투자 없이는
내가 버텨내야 하는 그 모든 것 없이는
내 인생을 오롯이 성장시킬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실패하기 싫고
헛돈 쓰기 싫고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언제나 선택 앞에서 불안해한다.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을 한다.
수많은 실패의 경험을 딛고 성공한 사람들.
물리적인 시간들을 버티고 멋진 삶을 얻은 사람들.
그 사람들의 겉모습만 보고 질투하고 부러워하다 좌절한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성공 말고
그들이 멋진 삶을 살기까지 고군분투한 이야기도 듣고 싶은데
사실 그런 진실된 이야기를 찾는 것도 힘들고 찾았다 할지라도
나에게 와닿는 건 더 힘들다. 그렇다. 그들이 깨달은 걸 내가 똑같이 깨달을 수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왜 그들처럼 되지 못하는가.
그 생각에 사로잡혀 때때론 열패감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노력도 하기 전에 이미 지쳐버리기도 한다.
내가 직접 경험해야 하는 일이 여전히 무섭고 두렵다.
어른이 되니까
집을 사는 일도, 투자를 하는 일도,
직장을 옮기는 일도,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 일도,
큰 금액을 소비하는 일도
다 어렵다.
집값이 떨어질까 봐,
투자에 실패해서 피땀눈물로 모은 내 노동의 대가들이 마이너스될까 봐
직장을 옮겼다가 더 나쁜 사람들을 만나고, 어려운 일을 맡을까 봐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는데, 결국 공부한다고 돈만 쓰고 시간만 낭비할까 봐
큰 마음먹고 쓴 큰돈이 사실은 필요 없는 소비였다는 걸 깨달을까 봐.
머리가 어지럽고 복잡해서 열불이 난다.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데 말이다.
내 직관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자신이 없다.
예지력을 꿈꾸지만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깨닫고 싶다.
자유로워지고 싶고 집착하지 않고 싶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꾸 찾게 된다.
그들이 얻은 깨달음을 나도 갖고 싶어서.
그러다 이런 생각도 든다.
그들이 말하는 이야기가 진짜 나에게 도움이 되는 걸까.
[싯다르타]처럼 나는 나의 깨달음을 스스로 얻어야 한다.
언제 깨달을 수 있을까?
[싯다르타]를 다 읽으면 내 마음이 조금은 진정이 될까.
이런 생각으로 오늘도 한 장 더 읽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