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엄마, 다른 엄마 (짧은 에세이적소설 모음집) #보호자가 된 자식
한 통의 전화가 모든 것을 바꿨다.
그 전화를 받기 전으로는 절대 되돌아갈 수 없다.
그 이후 당신은 전화가 울릴 때마다 심호흡을 하고
3 - 4번 휴대폰의 진동을 더 느낀 후에야 천천히 "여보.. 세.. 요"라고 답한다.
지레 겁을 먹고, 마음을 단단히 고정한 후에야 통화 버튼을 누를 수 있다.
"안녕하세요. 00님 보호자 맞으신가요? 여기는 요양병원입니다"
당신의 보호자는 수십 년간 어머니였지만, 지금은 당신이 어머니의 보호자다.
보호자로 불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어색하지만 00님 보호자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뜨인다.
어머니의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어 낯설고 어색하지만 나는 그 이름과 보호자라는 말이 연달아 들리면
책임감과 함께 자책감이 같이 올라온다. 책임감과 자책감은 쌍둥이인가.
내가 책임져야지 하다가도 내가 어떻게, 무엇을 책임질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자책감이 생겨버린다.
당신이 기억하는 어머니는 긴 머리카락을 지끈 묶고 동생을 업은 채로도 저녁 식사를 거뜬히 준비하던
슈퍼 직장 우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짧은 머리카락을 하루에도 수백 번씩 빗어대며
없는 머리카락을 동여매기 위해 분주한 할머니가 되었다. 그것도 치매 중증 환자.
수많은 세월을 조리대 앞에서, 설거지 앞에서, 화장실 앞에서 머리를 단단히 묶으며
가사를 해내던 강인했던 어머니는 이제 없다.
하지만 여전히 어머니는 머리를 묶는다. 아니 없는 머리를 모아다 끈으로 묶고 핀으로 꽂아
단단히 무언가 고정시키려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빗질과 머리끈 찾기로 하루 반나절을 보낼 어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쓰리다.
지금, 현재를 의식하지도 못하시는 분이 여전히 과거 자신을 조여왔던 책임과 의무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일까 싶어 마음이 아프다.
머리를 단단히 묶고 가정을 꾸려나가야 했을 젊은 날의 어머니 뒷모습과
구부정한 허리에 없는 머리카락을 잡고 또 모으는 어머니가 겹쳐지면서 눈이 새빨갛게 차오른다.
엄마가 '치매'라는 소식을 들었던 그날도
오늘처럼 느닷없이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은 무슨 전화일까?
당신이 기억하는 어머니의 모습과 지금의 어머니의 모습은 너무 다르다.
그만큼 보호자가 돼버린 당신의 존재도 낯설다.
어머니의 보호자가 될 수 있을 만큼 어른이 됐지만 여전히 어머니의 어린 자식으로만 살고 싶다.
그러나 이미, 당신은 커버렸고
당신이 기억하는 어머니는 현실에 없다.
당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머릿속 곳곳에 남아 있는
어머니의 기억이 오늘의 당신을 만들었고
그렇게 큰 당신은 오늘
떨리는 손과, 착잡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는다.
단단히 마음을 동여맨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