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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돌봄>나를 지키는 호신(사후호신, 호신어)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DAY19, 1인칭 마음챙김 #깃발 #호신어

by 산책이

정의롭고 쿨하고 다정한 선배는 퇴근 후 바로 클래식 공연을 보러 간다 했다.

정확히 말하면 들으러 간다고 표현했다.

금요일도 아니고, 멀리 서울까지 버스 타고 이동하는 게 힘들지 않냐 물어봤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신선했다.


"오늘 더럽고 어이없는 말을 많이 들어서 아름다운 소리로 귀를 정화시켜야 해요."


와. 선배는 스트레스도 교양 있게 해소하는구나.라는 감탄과 함께

여기저기서 내가 들은 교양 없는 말들과,

사람들에게 두들겨 맞은 내 마음은 어떻게 달래야 하나 고민이 됐다.


나를 지키는 '호신의 킥'이 필요했다.

부조리하고 힘든 순간마다

즉시, 단칼에, 맞설 수 없는 상황이 너무 많았지만

선배처럼 '사후 호신의 킥'이라도 만들어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낯선 환경에서 낯선 사람들과 처음 만나면 어쩔 수 없이 훅! 하고 들어오는

무례함이 있다.


예를 들어 처음부터 사적인 질문을 공식적으로 묻는 행태가

2020년대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곳이 있으며

나이와 연인의 유무를 확인한 후 바로 계급과 경계를 긋는 전근대적 문화를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조직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 조직 안에서의 다양한 일들이 준 충격은 아직도 나를 흔든다.



과거가 된 일이지만,

그때, 거기에 있었던 일이 되 버렸지만.

지금, 여기서 여전히 불쾌한 걸 보면 '사후 호신'이 말끔히 되지 않은게 분명하다.

물론 100% 없었던 일처럼 삭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선배처럼 나를 정화시키기 위해 무엇이라도 더 하고 싶다.


옛 조선시대 왕 영조는 바로 귀를 물에 씻었다 하는데

나도 샤워할 때 귀를 더 세심히 빡빡 문질러야 할까.

아니면 좋아하는 노래 스밍을 돌리며 음원으로 정화를 해야 할까.



호신의 킥은 구체적일수록 좋다.

무례하고 폭력적인 말들이 나에게 훅 들어왔을 때

바로 쨉을 여러 번 날리면 좋겠지만 나는 아직 그 위치까지 가보진 못했다.


대신 쨉을 날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나만의 호신어를 창작하고, 외우고, 읽어보며 꾸준히 노력한다.


예를 들어

"제가 뒷담화 하기는 싫어서 그냥 말씀드리는 건데요."

"저 기분 나쁘라고 방금 그런 말 하신 거예요?"

"당황스럽네요.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무슨 뜻이죠?"

"저 상처받으라고 그러시는 건가요?"


지고 지난한 직장생활로 맷집이 생겼다고 하지만

여전히 나는

호신어를 업데이트하고 외운다.


호신어. 나를 지키는 말. 그게 나의 호신의 킥이 되지 않을까.

사후 호신도 중요하지만 쨉으로 날릴 수 있는 호신어를 찾고 있다.


[나를 지키는 말. 호신어를 연구하는 사람들 모임] 깃발을 만들면 그 아래에 몇명이 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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