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니날다 Oct 25. 2022

행방불명 사건



 “선생님.”

어르신 안부 확인 요구르트 배달 이모의 전화였다. 

“선생님, 선생님,”

나를 부르는 소리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순간 안부 확인 어르신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긴장됐다.

“정순 어르신 요구르트가 이틀째 문 앞에 있어요.”

“문을 두드려도 안 나와요, 어떻게 해요.”

걱정스러운 마음에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였다. 심장질환과 혈압이 있는 팔순의 혼자 사는 어르신이라 주5일 요구르트 배달로 안부 확인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틀이나 문 앞에 그대로 있다는 것이다.      


 “날이 더워서 어디 가실 데도 없는데, 알아볼게요.”

며칠째 폭염주의보가 이어지고 있었다. 무더운 날씨에 여기저기 온열 환자가 속출하고 사망자도 나왔다는 뉴스에 다들 된더위 취약계층의 안전에 긴장하고 있던 터라 더 걱정됐다. 


 나는 사회복지 현장에서 종종 뜻하지 않는 죽음과 위험 상황을 만난다. 그런 경험들은 나도 모르는 새 트라우마로 남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면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나는 혼자 사는 가구의 죽음을 목격한 한 경험이 있던 터라 정순 어르신의 안부가 확인되지 않자 강박적인 ‘안전 레이다’가 발동됐다. 긴장감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땀이 흘러내렸다. 어르신의 안부를 얼른 확인해야 했다. 순간의 시간이 어르신에겐 결정적인 위험의 시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르신의 집은 웅장하고 높게 쏟은 고층 아파트에 가려 해가 짧아졌다는 아파트 숲 인근에 있다. 겨우 발 뻗을 정도 넓이의 3평 남짓한 단칸방과 부엌 겸 욕실이 전부이다. 한 슬레이트 지붕 아래 비슷한 구조의 총 세 가구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대부분 재개발을 노리고 투자 목적으로 내버려 둔 집들이다. 오래된 집이다 보니 낡고 녹슬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폭염엔 숨이 막힐 정도로 덥다고 했다. 그래서 늘 가림막으로 현관으로 들어오는 햇빛은 차단하고 문은 항상 열어놓고 지냈다. 그런 어르신이 며칠째 보이지 않고 문이 닫혀있는 것이었다. 안부가 더 걱정이었다. 혹시나 집 안에 쓰러져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나는 불안한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고 어르신에게 전화했다. 평소에도 전화 소리를 잘 못 들어 긴 통화음과 몇 차례 시도 끝에 통화가 가능했다. 수화기를 들고 있는 내내 손에서 진땀이 흘렀고 그 시간이 어찌나 천근만근이었는지 모르겠다.

                                            ‘당신이 얼마나 내게 소중한 사람인지 

                                            세월이 흐르고 보니 이제 알 것 같아요.’

 오십 초가량 통화연결음으로 임영웅의 목소리만 속절없이 흘러나왔다. 한 참 전화기를 들고 있었지만 받지 않았다. 옆방도 어르신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자주 가는 동네 미용실에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골목 입구 의자에도, 며칠째 어르신을 본 사람이 없어 불안감은 더 커져만 갔다.     

“OOO 씨, OOO 사회복지사입니다. 정순 어르신 아드님 되시죠?”

혹시나 아들은 어르신의 행방을 알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비상 연락망에 적힌 서울 사는 아들에게 연락했다. 

“네,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아들은 사회복지사의 전화가 의아한 듯 물었다. 

“어머님이 연락이 안 돼서요, 안부 확인 요구르트도 대문 앞에 쌓여 있고, 혹시 어머니랑 최근 연락하신 적이 있으신가 하고요?”

“아.”

아들의 짧은 감탄사에 온갖 생각이 스쳤다.

“어머니 며칠 전에 우리 집에 오셨어요.”

계속되는 더위도 걱정되고 심장약도 탈 겸 서울 아들 집에 다니러 갔다는 것이다.

“아, 다행이다.”

나도 모르게 마음의 소리가 툭 튀어나왔다. 사실 어르신이 쓰러져 있는 건 아닌지, 119를 불러 문을 따고 들어가야 하나 별별 생각을 다 하던 참이었다.

“감사해요, 죄송하고요. 너무 감사합니다.”

아들은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항상 떨어져 혼자 사는 고령의 모친이 걱정이라고 했다. 서울로 모시고 싶지만 그럴 형편도 안 되고 어르신도 고향인 부산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안부를 살뜰하게 챙겨준 것에 감사하고 나의 전화가 아들에게는 너무 안심된다 했다. 

“다음엔 서울 오게 되면 미리 연락할게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정순 어르신 행방불명 사건은 해피엔딩으로 일단락됐다.


이전 11화 때문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