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낯설다.”
오랜만에 집에서 잤다는 명자 어르신의 첫 마디였다.
이사 온 지 이년이 지났음에도 집에서 잠을 잔 건 손꼽을 정도라고 했다. 어르신에게 집은 그저 짐을 보관해 놓는 곳, 한 번씩 짐을 가지러 오는 곳이었다.
“에고, 문지방이 이래 높았나.”
방으로 들어오다 문지방에 발을 찧어 몹시 아팠다고 했다.
“화장실이 밖에 있어서 좀 불편하데이.”
이사 온 지 이년이 지났음에도 어르신에게 그 집은 여전히 낯설고 새롭다고 했다.
“무슨 정신에 집을 구했는지 모르겠다.”
막상 살려고 보니 손 볼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닌 집 상태가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팔순을 바라보는 어르신은 최근 남편을 먼저 떠나보냈다. 열아홉에 만나 육십 년을 함께 살았다고 했다. 육십 년 세월을 함께하는 것은,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시간이라고 했다. 친구이자 가족이고 동지인, 지나고 나니 더 애틋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먼저 가서 미안하고 고맙소, 이제 편히 자고 아프지 말고 천천히 오소, 문단속 잘하고.”
삼 년 동안 암 투병 끝에 먼저 간 남편은 마지막까지 어르신 걱정뿐이었다고 했다.
명자 어르신은 남편 간호를 위해 병원 보호자 침대에서 쪽잠 자며 삼 년을 지냈었다. 한동안은 낯선 병원 생활에 봄이 오는지 겨울이 가는지 몰랐다고 했다. 병원 생활이 길어지면서 병실 서랍장에 살림살이가 늘어나고, 그해 봄에는 남편과 병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벚꽃도 볼 여유가 생겼다 했다. 환자 침대와 보호자용 침대가 전부인 좁은 공간이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집보다 더 익숙하니 편안함을 줬다고 했다.
“지하에 편의점 말고 병원 뒷문에 작은 슈퍼가 하나 있어요, 거기가 더 싸고 물건도 많아요.”
삼 년이 되던 해에는 집 근처 시장보다 병원 근처 마트와 맛집을 훤히 꿰뚫고 있어 다른 보호자들에게 알려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삼 년간은 병원 보호자용 간이침대가 어르신의 집이었다.
남편이 떠나고 일주일쯤 지나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어르신 옷가지랑 물건이 병실에 몇 개 있어서 챙겨놨어요.”
남편의 옷과 물건을 찾아가라는 전화였다. 남편의 손때와 냄새가 배어 있는 물건이라 서둘러 가지러 갔다고 했다.
“사람 마음이 참 이상한 거라, 삼 년이나 있어가 병원은 훤하게 아는데.”
오랜 시간 있었던 곳이지만 남편이 없는 병원 공기는 낯설었다고 했다.
“병실 침대랑 어찌나 좁고 답답하던지,”
남편과 함께일 때는 몰랐는데 새삼 그곳이 좁아 답답함도 느껴졌고 기억 속 장소가 아니었다고 했다. 남편과 함께였기에 병원 생활이 버틸 만하고 ‘안식처’로 느꼈던 것 같다고 했다.
집이란 무엇일까?
많은 사람이 집은 ‘마음의 휴식처’ 같은 따뜻한 느낌이라고 한다. 아무 눈치 보지 않고 편히 지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일과 중에도 몇 번씩 입버릇처럼 ‘집에 가고 싶다.’를 달고 산다. 집에 특별한 것이 있는 것도 아닌데, 출근하려 현관문을 나섬과 동시에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나에게 집은 이렇게 휴식의 공간이고 편안한 곳이다.
명자 어르신에게 집은 ‘남편’이자 ‘남편과 함께 있는 곳’이었던 것 같다.
“여기도 병원처럼 오래 지내다 보면 익숙해지려나, 어찌 살아질끼다.”
어르신은 그렇게 병원과 이별했다. 아직 새로운 집이 낯설지만 ‘정 붙이려 애쓰는 중’이라고 했다. 어르신의 다가올 시간은 그곳에서 흩날리는 벚꽃을 마음껏 맞이할 수 있는 따뜻한 봄날이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