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100달러짜리 지폐에 등장할 만큼 존경받는 정치인 벤저민 프랭클린은 건강에 관한 명언을 많이 남겼다. ‘최고의 약은 휴식과 절식이다’, ‘최고의 의사는 최소의 약을 준다’, ‘너무 늦게 아프지도 말고, 너무 빨리 낫지도 마라’, ‘치료는 하느님이 하고 돈은 의사가 받는다’ 같은 구절은 요즘도 그 뜻을 곰곰 새겨볼 만큼 훌륭한 명언이다.
건강 명언을 남긴 본인은 과연 얼마나 건강했을까? 평생 근검과 절제 같은 청교도적인 가치관으로 무장한 프랭클린은 1790년 84세로 별세할 때까지 큰 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산 것으로 보인다. 딱히 꼽는다면 통풍과 방광결석으로 고생을 좀 했다. 통풍을 일으키는 요산이 발가락, 발목, 무릎에 이어 방광에도 쌓여 결석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통풍은 40대부터 죽을 때까지 그의 일생 절반을 따라다니면서 괴롭힌 지긋지긋한 질환이다. 외교관으로 1779년 프랑스 왕 루이 16세를 예방할 때 발작이 도져 일정을 연기해야 했다. 말년에는 방광결석 때문에 움직일 수 없어 1년 남짓 꼼짝 못하고 누워지냈다. 사망한 뒤 나온 결석이 크기는 방광만 하고 무게는 400g이 넘었다. 결석이 방광에 거의 꽉 차 있었다는 이야기다!
무슨 까닭일까? 통풍은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어 생기는 ‘황제의 질병’이다. ‘수명을 늘리려면 식사를 줄여라’고 했던 프랭클린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질환이다. 그가 20살에 정한 ‘13가지 덕목’ 가운데 첫째가 ‘절제’(Temperance)다. ‘배부르게 먹지 말고, 취하도록 마시지 말라’는 것이다. 멋진 명언을 잔뜩 만들어 놓고 정작 본인은 지키지 않은 걸까?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정치인이나 외교관은 잦은 행사와 연회로 식생활이 호화로울 수밖에 없다. 미국 최고의 정치인이자 외교관으로 활약한 프랭클린이 청교도적인 절식과 금주를 제대로 지킬 수 있었을까?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미국과 유럽을 자주 왕래하면서 그는 최고급 식단으로 대접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미국이나 유럽의 상류층이 정찬으로 즐긴 32가지 요리 가운데 16가지가 육류였다.
뜻밖에도 프랭클린은 음주를 무척 즐겼다. 글재주가 좋았던 그는 ‘술은 사람을 해치는 몹쓸 것이니 몽땅 마셔 없애야 한다’거나 ‘맥주는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행복하길 바란다는 것의 증명이다’는 식으로 음주를 예찬하는 익살스런 글귀를 남기기도 했다. 한 때 그는 술에 취해 술주정으로 적잖게 욕을 먹기도 했다.
프랭클린은 ‘막내아들의 막내아들의 막내아들의 막내아들의 막내아들’이다. 고조할아버지부터 막내-막내-막내-막내로 대를 내려온 그는 17남매의 막내아들이었기에 가업을 이을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야심 찬 그는 20대에 자수성가를 위해 지켜야 할 덕목과 규율에 이어 체크리스트까지 만들었다. 본인은 끝까지 제대로 지키지 못했지만, 그의 명언과 실천계획은 하도 인기가 많아서 요즘도 자기계발의 모범으로 활용되고 있다.
통풍은 프랭클린에게 건강 명언을 제대로 가르쳐줬다. 남달리 참을성이 강했던 그에게 다른 질병은 질환 측에도 끼지 못했다. ‘황제의 질병’을 앓은 그는 통풍을 ‘질환’이 아니라 ‘치료법’으로 승화시켰다. 노회한 정치인은 뱃심 좋게 통풍에 대한 명언을 또 하나 남겼다.
“과연 진짜 질환이라 부를만하다. 그러나 나는 통풍이 질환이라기보다는 ‘치료법’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통증이 가시고 나면, 매번 나는 건강을 되찾고 정신력이 강해지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