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과 나는 그때그때 기분 내키는 대로 명동성당도 들리고 조계사도 들리며 마음을 정화시킨다. 거기다 마누라는 친한 사람이 권유하면 교회에 성경공부도 하러 다녔다. 그리고 내가 이태원 이슬람 사원을 들려보는 것도 말하자면 다 마음의 평온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뭔가 간절할 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드리면 들어줄지도 모른다는 소망에 오대산 월정사를 찾아가 템플스테이를 하며 무릎이 아플 정도로 천배 이상 절을 한적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어떤 종교와도 가까워지지를 못했다. 국내에선 많은 사찰을 방문했고 유럽에서는 수많은 성당을 돌아봤는데도 그저 성스러운 분위기 속에 과거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 알게 됐을 뿐 어떤 종교든 내 마음속에 와닿질 않았다. 허기야 미국에서 교회에 나오라는 끈질긴 권유에도 꿈적도 않았던 나였기에 난 타고난 루시퍼 인가하는 생각도 해봤다. 할머니의 영향인지 미국에서 성당을 나가던 아들을 따라 일요예배에 참석해본 적이 있는데 어깨동무를 하고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은 옛날 명동성당 같이 엄숙한 분위기 와는 색다른 모습이었다. 기도는 조용한 가운데 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미국에서 경험한 개신교 신도들의 예배 모습은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미친 듯 울려대는 기타와 드럼 소리 속에서 울면서 몸을 흔들어대는 충격적인 모습은 곧 종말이라도 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잠자는 주님을 깨우기라도 하려는 행위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소중하지 않은 것에 미쳐 칼날 위에 춤을 추듯 산다고 한 성철 스님의 말씀이 새로웠다. 우리는 구원을 받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이스라엘 성지순례나 인도로 가는 불교 성지순례를 떠난다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그렇지만 두 달씩 가정을 비우고 가야 할 정도로 간절히 기도할게 많은 건지 아니면 꼭 그래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건지 그 명쾌한 답이 궁금하며 의문으로 남아있다. 한편으로는 세계 각국의 오지에서 그곳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성직자들을 볼 때면 스스로 짐을 짊어지고 구도자의 길을 걷는 그분들의 깊은 뜻은 알 수 없으나 자신의 희생으로 사랑을 나누려는 그분들의 숭고한 마음은 존경스러울 뿐이었다. 눈 덮인 티베트 산길에서 오체투지 하는 사람들도 그 믿음의 그 뿌리가 어디까지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표정들도 평온해 보였다. 그리스 아토스나 메테오라 수도원 같은 곳은 왜 절벽 위 높은 곳에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느님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모든 수도자의 마음은 다 같은 뜻을 가졌으리라 생각하며 믿음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본다. 포도주는 예수님의 붉은 피와 같다고 누가 그랬는데 하여간 그 덕분에 예수님 피로 너무 많은 수혈을 받아선지 요즘은 한 병으로도 알딸딸해진다. 백 마리의 양보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어린양을 찾고 계셨다던데 난 복제된 둘리인지 찾을 생각을 안 하신다. 산토리니에서 본 소박한 그리스 정교의 평화로운 예배 모습을 보며 모든 종교는 원래 선하고 아름다운 건데 자기 종교만이 전부인양 다른 종교를 배척하고 폄훼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이 꼭 오기를 원하며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종교만이 남아 있기를 바란다. 과유불급 (過猶不及) 모든 사물의 중용(中庸)이 중요하다는 말인데 가정을 등한시할 정도로 종교에 대한 믿음이 지나치지 않기를 바라는 나의 마음이다. 길을 가던 젊은 남녀가 나를 세우고는 도를 아십니까? 하는 말에 내가 도인 인데라고 대답하는 나는 진짜 도인이 되고 싶은지도 모른다.
기도: 누구나 종교를 지니고 있든 없든 기도하는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기도소리가 너무 시끄럽고 요구하는 게 많다는 것이다. 가난한 영혼이나 불쌍한 이웃을 위해서가 아니고 자신만을 위한 기도를 하니 기도가 길어질 수밖에 없고 소란스럽기까지 하다. 요구가 많은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 했다. 짧은 기도로 자기 자신을 성찰해 볼 때 아마 이기도는 이미 하늘에 닿았을 것이다. 한마디 더하고 싶을 때 참을 수 있는 자로 남기를 원하며 때로는 침묵이 강하다는 것을 알기에 시간이 흘러도 장황해지지 않기를 소망하며 주제넘지 않는 자로 남기를 바란다. 어떤 일에도 자각과 성찰이 빛나는 그런 한 해가 되기를 바라며 마음의 눈이 먼 사람들이 떠나는 순례 여행에서 그들이 치유되어 돌아올 수 있기를 기도한다. 부엔 카미노( Buen Cam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