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주사

취경전

by 구일권

내가 집사람을 부르는 호칭이다. 원칙을 중시하는 성격이기에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겠지만 어찌 됐던 마누라 왈 자기 눈에는 주위의 불쌍한 사람들만 보인다며 그래서 지금 까지 나를 데리고 살았다고 내게 동냥하듯 말한다. 그러면서 자업자득이니 측은지심 같은 말을 심심하면 내뱉는데도 내가 지금까지 건재한 걸 보면 서로 창과 방패의 관계가 아닐까 하는 내 생각이다. 하여간 30년 넘게 성나 자로원 등 몇 군데에 후원금 보내는 걸 보면 정이 많고 따듯한 사람인 것은 분명하며 마누라 학교 퇴직 연금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우리 집의 실질적 가장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갑질이 너무 심해 눈치만 보는 내 말년이지만 이젠 비아냥 거리는 소리도 스님의 독경소리처럼 들리니 이제 나도 선사(禪師)의 경지에 다 달은 셈이다. 요즘은 내가 글을 쓴다고 밤새는 걸 보더니, 구 작가님 어릴 때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했더라면 출세했을 거라며 나를 비웃는다. 말년에 나는 집 앞에 개울이 흐르고 전망이 좋은 산 위에 집 하나 지어놓고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사는 게 꿈이라 했더니 자기는 한남동 무슨 힐인가 하는 그런 곳에 사는 게 꿈이라며 갈 테면 혼자 가란다. 마누라 꿈이 야무 저서 좋긴 한데 내 귀에는 허튼소리로만 들릴 뿐 하도 들어서 이젠 그저 그러려니 한다. 백화점 명품관 안에 걸려있는 스라소니나 담비 털 코트 앞을 지나다 멈추면 한참 동안 떠날 줄 모르는 마누라를 볼 때마다 사냥총을 들고 시베리아로 떠나야 할 것 같았다. 그나마 집사람과 의견이 잘 통하는 것은 먹고 마시는 일이다. 비행기에 오르면 본전 뽑으려 작정한 사람처럼 스튜어디스의 걱정스러운 표정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 와인을 청해 마시다 비행기가 착륙하면 아쉬운 표정으로 일어나는 박주사 였다. 비행기에서 주는 값싼 와인에도 그렇게 행복해하는 마누라 얼굴을 보며 나까지 그러기엔 눈치가 보여 자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직선적인 성격인데도 아들한테 만큼은 끽소리도 못하는 걸 보면 역시 천적은 따로 있나 보다. 한 번은 집사람 학교 동창과 그의 지인 가족들 한 30여 명이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났는데 로마에서 여자 가이드가 출발하려는 버스에서 다 타셨지요? 하며 버스를 출발시키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중학생인 집사람 친구 딸과 같은 방을 쓰던 그 또래 또한 명이 차에 안 탔다는 걸 알고는 가이드에게 확인도 안 하고 떠나는 게 어디 있냐며 항의하는 친구에게 지새 끼 지가 챙기지 누굴 탓하냐는 마누라의 일성에 분위기가 싸해졌다. 결국 내가 가서 택시로 데려 오긴 했지만 그 일이 있은 후 냉랭한 분위기 속에 파리에 도착했는데 저녁 식사 후 아이들은 한방에 몰아넣고 가이드는 집에 보낸 후 우리는 소르본느 대학가 근처 어느 술집으로 들어갔다. 음악도 연주하는 고풍스러운 조그만 집이었는데 와인으로 피로를 달래던 중 우리와 같이 간 어느 의사 부인이 종업원에게 피아노를 좀 쳐도 되겠냐고 물어보고는 피아노 앞에 앉더니 소프라노 홍혜경 같은 놀랄만한 노래실력과 피아노 연주로 그곳에 있던 모든 손님들로부터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E대학 음대 출신이라 했다. 덕분에 그날 모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밤늦게 까지 즐겼는데 일어날 때쯤 마누라가 오늘 계산은 내가 한다며 호기를 부린 덕분에 남은 일정을 즐겁게 마무리 한적도 있었다. 그런 걸 보면 그래도 쓸만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봤다. 살면서 실수를 안 해본 것이 가장 큰 실수라 했는데 실수가 많았던 나에게 마누라는 지난 일을 가지고 날 들볶는 재미로 노후를 즐기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생시킨 건 사실 이기에 참을 忍 자를 입에 물고 꿋꿋이 지내고 있다. 결혼 한지도 어느덧 40년이 넘어 마누라도 올해 칠순이란다. 3살 차이는 친구라며 내게 말을 놓고 지내는 요즘 코로나 19로 인해 어디 갈 수도 없어 서로 붙어 있는 시간이 많으니 신경만 날카로워져서 서로 눈에 거슬리지만 소 닭 보듯 지내려 노력 중이다. 여행이라면 잠자다 맨발로라도 떠날 마음의 준비가 늘 갖추어진 박주사, 오늘도 점심은 뭘 먹을 거냐며 턱을 내민다. 팬데믹으로 인해 대부분 집에서 밥을 먹다 보니 점심은 내가 저녁은 마누라가 만들기로 합의했는데 한번 만들면 일주일씩 먹어야 하는 미역국이나 카레 등 그런 음식들 때문에 난늘 산후조리 중이다. 그러고 보니 결혼 후 지금까지 마누라가 만들어준 맛있는 음식은 뭐가 있었는지 별 기억이 없다. 이제야 인터넷으로 요리 레시피를 보고 있는 답답한 현실이니 내가 나설 수밖에 없어 손에 물기가 마를 날이 없다. 그래도 홍콩에 있는 아들이 그곳 딤섬보다는 엄마표 만두나 김밥. 잡채 등이 먹고 싶다면 신이 나서 홍콩 갈 때 가방 바퀴가 부러지게 잔뜩 담고 갈 적이 한두 번도 아니었다. 영어를 못해서 이민 가기 싫다는 주제에 해외여행 중 내가 말하는 영어에 대해서는 콩글리쉬 라며 말도 많고 타박도 많으니 늘 다툴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이태리 여행 중 고속도로에서 당신 운전이 험하다며 속도를 줄이라등 잔소리를 수없이 해대기에 벼르고 있다 이태리 포지타노 에서 아말피 가는 도로위를 총알택시처럼 달렸더니 마누라는 뒷좌석에서 손잡이를 꼭 잡고 놀이동산에 온 것처럼 비명을 질러댔다. 늘 다투며 다니는 여행이지만 베니스가 고향인 알베네 집이 있는 미라노 가는 길 어느 외진 시골 동네에서 우연히 들어간 식당의 맛있는 하우스 와인과 음식 맛에 마음이 풀리며 저절로 화해가 되기도 했다. 해외여행 이란 기대와 긴장의 연속이었고 우리는 새로운 느낌을 찾으려 여행을 떠난다. 내일 박 주사와 와인 한잔 하기로 했는데 40년을 넘게 살아온 역전의 나인데도 또 옛날 일을 끄집어내며 주사를 부릴지도 몰라 임전무퇴(臨戰無退) 정신으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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