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마트에서 와인 세일한다고 문자가 와서 몇 병 사들고 왔지만 와인 코너에 근무하는 주류회사 소속 직원들은 주로 자기네 회사 와인을 추천하는 경우가 많아 그들이 추천하는 와인은 그야말로 복불복이다. 나의 취향을 어느 정도 알고 추천을 하긴 하지만 성공 확률은 늘 50% 정도다. 그래서 실패하더라도 누굴 탓하지 않게 그냥 내가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가끔 아들이 한국 올 때는 좋은 와인을 맛본 적도 있었지만 우리가 그런 와인을 마시려면 삼시 세 끼나 와인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니 평상시 그런 와인들은 언감생심 눈으로만 바라보며 그저 군침만 삼킬 뿐이다. 평소 이탈리아 와인을 좋아해서 즐겨 찾는 Italy eat 등 몇 군데서 세일한다고 문자나 오면 움직일까 보통 때는 마트에 가서 눈에 들어오는 적당한 가격의 와인을 사다 마신다. 어쩌다 스페인 이나 포르투갈 와인들 중에서 맛있고 저렴한 와인을 발견하면 유레카! 누가 알까 서둘러 몇 병 더 사다 놓고 값이 더 이상 오르지 않기를 바랬다. 우리가 언제부터인가 연예인이나 유명인사 자제들을 통해 듣게 된 엄친아라는 말과 같은 뜻을 가진 그런 와인은 수도 없이 많지만 가격이 높은 게 흠인데 그중 완벽하진 않지만 엄친아에 가까운 와인이 숨어 있어 적당한 가격대의 그런 와인을 찾아냈을 때 행복감은 로또 3등 정도는 당첨된 기분이랄까 하여간 내가 처음 보는 와인을 고를 때 화려한 라벨이 붙은 와인은 절대 안 고른다. 경험상 그런 와인은 별로 여서 꾸밈없는 단순한 디자인과 포도 품종 그리고 생산연도만을 참작하여 와인을 선택한다. 그리고 해외에서 맛있는 와인을 저렴한 가격에 사마신 기억에 같은 와인을 비싸게 사 먹기는 좀 억울해서 아예 낯 모르는 와인과 만나보는 이유다. 가만히 보면 맛있는 와인은 절대 가격을 안 내렸고 오히려 점점 오르는 걸 보면 그 맛을 알게 된 주당들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얘기이며 와인이 점점 대중화돼간다는 걸 느꼈다. 어느 날 마누라와 시내 백화점 주류 코너에 들렸다가 L그룹 회장이'로마네 꽁띠'를 들고 있는 걸 보더니 마누라 왈 내가 죽기 전 저술을 먹어보는 게 소원이며 '패트리스'같은 와인도 프랑스 가면 얼마에 마실수 있다고 장황하게 설명하는 마누라에게 나 같으면 그 돈으로 맛있는 와인 수십 병을 사 먹겠다고 입을 막았다. 별로 들고 다닐 데도 없어 상자 속에 모셔둔 가방, 고가의 명품 가방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 같으면 그 가방 살 돈을 지갑에 넣고 다니는 게 더 행복할 것 같다는 마음의 비유를 해봤다. 전에 피렌체에서 로마로 가던 중 산 지미냐노 근처 어느 포도농장에서 하루를 묶었을 때 선반에 가득 놓인 와인들을 보고는 주인에게 추천을 부탁해서 저녁에 집사람과 마셨는데 지금까지 마셔본 토스카나 와인 중 최상급이었다. 거기다 너무도 저렴한 가격이라 더 있었더라면 차 트렁크에 가득 싣고 떠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오직 그것뿐이라 너무도 아쉬웠다. 이탈리아에서 내가 좋아하는 레드와인은 바를로 와인이고 화이트는 친퀘테레 나 시칠리 와인인데 친퀘테레 지역의 좁고 가파른 언덕 위에 있는 낮으막한 포도나무들을 보며 그런 곳에서 힘들게 수확하는 농부들의 노고에 그런 와인을 마실 때면 감사의 기도라도 올려야 할 것 같았다. 화이트 와인을 자주 마시지는 않지만 요즘은 뉴질랜드산 쇼비뇽 블랑에 맛을 들였는데 내가 요리한 연어나 문어 카르파초와 함께 먹으면 그야말로 홍콩 간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요리이며 곧 다가올 겨울에 맛볼 수 있는 석화가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 일 것이다. 무쇠 프라이팬에 굽는 두툼한 스테이크는 물론이고 미니족발이나 낙지볶음도 의외로 레드와인에 잘 어울린다는 내 생각이다. 대부분 남유럽 지방에서 문어 요리가 많은데 산토리니의 스핑크스 인가하는 식당에서 맛본 양념구이 문어나 오징어순대 그리고 그릭 샐러드를 곁들인 무사카 같은 요리는 눈앞에 펼쳐진 지중해의 석양과 함께 천상의 만찬이 아니었나 싶다. 바닷가 절벽길을 힘겹게 오르내리는 당나귀 냄새는 별로지만 바다를 뒤로 골목길에 서있는 당나귀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이 아름다웠고 동키 상표 맥주까지 있는 걸 보면 그곳 사람들과 가족처럼 함께 살아가는 당나귀들 인 것 같았다. 세상은 넓고 좋은 와인도 많은데 날은 저물고 안녕이 저만치 와있으니 아쉬움만 가득하다. 샌프란시스코 근처 소살리토의 어느 카페에서 와인 한잔 하며 한가롭게 여행을 즐기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곳에 가본 지도 어느새 10년이 지났나 보다. 거기서 가까운 나파밸리 와이너리를 몇 군데 돌아다녔지만 운전 때문에 제대로 즐기지를 못해 언젠가 그곳 와인투어 기차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많은 세월도 흐르고 거기다 코로나로 두 해를 날려 버렸으니 다리 떨리기 전에 갈 수 있을지 의문이며 이렇게 세월을 보내다 결국 마트의 와인이나 축내며 세월을 낚아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허지만 나의 이런 배부른 생각도 추운 날 밀라노 중앙역에 누워 있던 난민들을 생각하면 내가 너무 팔자 좋은 소리를 하는 건 아닌지 가슴이 찔린다. 그리스 아침 인사는 갈리메라 이고 오징어를 갈라 마리라고 하는데 아침에 호텔 직원에게 갈라 마리라고 인사했던 나는 역시 오징어나 문어 그리고 낙지. 주꾸미까지 모두를 좋아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라는 책에서도 문어나 오징어 얘기가 자주 나오는데 나도 좋은 와인과 함께 하기를 기대하며 늘 냉동실에 문어와 오징어를 대기시켜 놓고 있다. 와인은 늙은 남자를 위한 우유라고 안토니오 페레즈라는 사람이 말했다고 그런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링거병에 좋은 와인을 가득 채우고 줄을 통해 입으로 한 방울 한 방울 음미해보는 그런 상상은 내가 행복해질 것 같기에 실천해 보려 하며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와이너리를 가진 집안에 태어나길 바라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봤다. 이 세상에서 너무 멀리는 떠나지는 않으려 한다. 거기 길 떠난 나와 아직 낯익은 술 서로 그리움을 놓치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