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에 졸린 눈을 비벼가며 진도항(팽목항) 있는 연안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장장 5시간 이상 걸렸다. 도착한 이곳은 바람이 몹시 분다. 대만을 통과한다는 끄라톤 태풍의 영향인지 싶다. 서울에서 밤새 달려온 진도항의 아침 모습이다. 2014. 4. 16. 세월호 침몰로 많은 학생들이 희생되어 추모하던 항구이기도 하다. 세월호 조형물 앞에서 잠깐 그 순간을 기억해 본다. 밤새 달려온 덕분인지 배가 몹시 고프다. 도착시간은 6시 반, 편의점과 식당을 겸하고 있는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굴비가 있는 백반집이다. 배가 고파서 그런지 밥이 맛있다.
씨월드에서 운영하는 산타모니 여객선을 탔다. 이 여객선은 제주도까지 하루에 두 번 운행한다. 해남 우수영, 완도, 목포 등 여러 곳에서 추자도를 경위, 제주도까지 가는 여객선이 있다. 그중 추자도를 경유해서 운행하는 배 중 가장 빠르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은 45분이면 추자도에 도착하지만 오늘은 저속으로 운행되어 1시간 조금 더 걸렸다. 여객선은 어림잡아 400~500명은 탑승할 것 같은데만석이다. 대부분 제주도로 가는 승객이다. 우리 목적은 추자도 나바론하늘길과 제주올레길(18-1,18-2)을 1박 2일 동안 25킬로쯤 걷는 일정이다. 추자도에 도착하니 진도항과 같은 바람은 불지 않지만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진다. 비가 온다는 것은 우리가 목적으로 하고 있는 걷기가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추자도에서 제일 멋지다는 나바론하늘길로 향한다. 나바론하늘길은 제주 상추자도에 있다. 큰 산에서 독산까지 이어지는 2.1km 도보길로 바다를, 절벽을 감상하며 산의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이다. 길을 걷는 동안 추자섬에서 보이는 망망대해를 감상할 수 있으며 숲길도 있다. 그리고 상추자도항과 포구마을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아찔한 절벽의 모습이 영화 ‘나바론요새’에 등장하는 지중해 섬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나는 올봄에 3박 4일로 다녀왔고 이번이 두 번째다. 올봄에는 3년간 계획으로 걷던 제주도 올레길 437킬로 완주를 위한 것이었고 이번에는 모임에 서 추자도를 꼭 가고 싶다는 성화에 가이드를 자처한 것이다. 추자도는 상추자도 하추자도가 있다. 나는 숙소를 하추도에 있는 민박을 이용했다. 숙소는 그곳이 고향인 지인으로부터 소개를 받았다. 이 민박집은 깨끗하거나 화려한 곳은 아니지만 정이 듬뿍한 집이다. 숙소제공과 아침, 저녁 식사를 제공해 주는데, 민박집 여사장님이 직접 음식을 해주신다. 그리고 가족처럼 두 부부와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와 더불어 술을 나눈다. 식사를 같이 하면서 추자도에서 사는 이야기 그리고 그의 삶의 궤적들을 나눈다. 재미있다.
이 부부는 평생 추자도에서 사셨다고 한다. 남자는 어부이고 아내는 해녀다. 남자는 멸치잡이와 섬을 찾는 낚시꾼들을 본인 배로 낚시하는 장소까지 이동하는 일을 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추자도는 제주도의 축소판이다. 섬과 섬이 이어지다가 망망대해가 이어진다. 그리고 추자도 민박집 사장님이 말씀하시는 제주도 큰 섬(추자도에서는 제주도를 큰 섬이라고 부름) 보인다. 바다는 온통 윤슬의 잔치다. 바다가 햇빛과 한 몸이 되어 딩굴딩굴 여유롭다. 나는 해변가 산을 오르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면서 바다와 햇빛의 찐한 연애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보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바다는 언제 봐도 여유롭다. 나의 조급함을 나무라는 듯 파도는 힘껏 바위를 내리치고 아주 천천히 밀려간다. 그 물러간 바닷물은 다른 물이 밀려오기 전까지는 절대 혼자 움직이지 않는다. 게으르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기다림이라고 생각해 본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의 모습을 보면서 걷는다. 북적이던 여름철이 지난 해주욕장은 한가롭다. 여기저기 아이들이 갖고 놀던 몽글몽글한 돌멩이만 우리를 반겨준다.
추자도에는 눈물의 십자가 있다. 성지중 한 곳이다. 천주교인들이 꼭 다녀가는 곳 중에 하나인데 황경환이 묻혀 있는 곳이다. 황경환의 아버지는 신유박해 때 순교한 황사영이고 어머니 정난주는 유명한 남인이었던 정약현의 딸이다. 황사영은 ‘황사영의 백서’를 북경으로 보내려다 발각되어 대역죄인으로 처형당하고 어머니 정난주는 제주도로 유배 가는 중 아들이 평생 죄인으로 살아가야 함을 안타깝게 생각한 어머니 황경환을 예초리 바닷가 갯바위에 내려놓고 사공들에게는 죽어서 수장시켰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이진 성지이다.
우리 일행은 나바론하늘길을 그리고 제주도 올레길을 걷고, 맛있는 음식에 빠진 1박 2일을 뒤로하고 추자항에서 진도항으로 빠져든 배는 우리를 서울로 밀어냈고 아내가 잠든 집에 숨죽이고 들어온 시간은 새벽 1시, 알차고 완전한 48시간의 여행이었다. 최인아 작가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라는 책에서 ‘여행의 본질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는 게 아니라 여기를 떠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