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팬, 법정에 서다

제7화 토끼섬으로 귀촌한 후크 선장

by 임재도

임재도 작가의 법률감성소설

피터 팬, 법정에 서다

존엄사법이 제정되지 않아 살인범이 된 어느 소년의 아버지에 대한 지극한 간병과 사랑이야기






제7화 토끼섬으로 귀촌한 후크 선장



당시 소년과 아이들이 살았던 섬마을은 행정 구역상 창성시에 속한 초도(草島)라는 작은 섬이었다. 그러나 그 섬의 주민들이나 인근 해안 마을 사람들은 오히려 이 섬을 <토끼섬> 또는 <풀섬>이라고 불렀다. 초도라는 행정 명칭은 <풀섬>이라는 이 섬의 한글 이름을 일제강점기 때 한자명으로 바꾼 것이라고 했다.


<토끼섬>이라는 이름은 이 섬의 형태가 귀를 쫑긋 세운 토끼가 두 발을 들고 서 있는 특이한 형상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고, <풀섬>이라는 또 다른 이름은 옛날부터 이 섬에는 섬 주민들이 <토끼풀>이라고 불렀던 한국 춘란이 군락을 이루어 자생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야생 토끼의 먹잇감인 이 토끼풀 춘란이 섬의 곳곳에 군락을 이루어 지천으로 널려 있었기 때문에 이 섬에는 유독 야생 토끼가 많이 서식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사람들은 이 섬을 <토끼섬> 또는 <(토끼)풀섬>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섬마을은 원래 40호가 넘는 제법 큰 마을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농어촌 마을처럼 이 섬마을 사람들도 도시화의 물결에 밀려 한 집 두 집 육지로 떠나 버리고, 내가 병원에서 소년을 처음 만난 10년 전 당시에는 겨우 10여 가구만 이 섬에 남아 있었다. 그나마 젊은 부부와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고는 소년과 유일한 여자애 웬디, 그리고 투틀즈, 슬리라고 한 아이, 단 네 집뿐이었다. 존과 마이클은 피터 팬 동화에서처럼 실제로 웬디의 남동생이었다. 이 섬에 초등학교 분교가 하나 있었는데, 소년을 제외한 이들이 이 분교의 전교생이었다. 소년은 그해 2월 이 분교를 졸업하고, 면 소재지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해 있었다. 소년의 중학교는 선착장이 있는 해안 마을에서 버스로 20분을 더 가야 했다.


서쪽 산을 등진 마을에서 바다를 굽어보며 바라볼 때, 소년의 집은 마을 왼쪽 바닷가 언덕 위에 외따로 떨어져 있었다. 빨간 벽돌로 외벽을 두른 시멘트 슬래브 지붕 위에까지 담쟁이덩굴이 기어 올라가 있었다. 본채는 중앙의 거실 겸 주방 왼쪽에 안방이 있고, 오른쪽에 작은 방 두 개와 그 사이에 화장실이 있는 구조였다. 오른쪽의 작은 방 2개 중 바깥쪽 방 하나를 소년이 제 방으로 쓰고, 안쪽 방을 아버지가 서재로 썼다. 아버지의 방에는 책이 많았다. 이 본채 왼편에 역기역자 형태로 창고와 방 하나가 있는 별채가 한 채 더 있었다.


이 집 두 채와 그 앞에 있는 제법 넓은 마당을 소년의 턱 높이쯤 되는 그리 높지 않은 돌담이 빙 둘러싸고 있었다. 특히 마당 오른쪽에 소년의 아버지가 이 섬의 산과 해안가 숲에서 직접 채집한 희귀 춘란과 풍란, 석곡 등 토착 자생 난을 재배하는 3~40평 정도의 비닐하우스 난실이 있었다. 이런 특별난실까지 만들어 두고 있었던 점으로 보아 소년의 아버지는 한국의 자생 난에 상당한 조예가 있었던 것 같았다.


그 여선생이 아이들을 병원에서 데리고 나간 뒤부터 소년은 내게도 마음을 열었다. 이때 소년이 직접 해준 얘기는 상당히 의외였다. 소년은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서울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2학년 때 이 섬으로 이사를 왔다고 했다. 이 섬은 소년의 아버지의 고향이었다. 이 섬에서 태어나서 자란 아버지는 창성시 시내의 고등학교를 나왔고, 서울에서도 꽤 명문으로 알려진 법과대학을 나왔다고 했다. 소년의 어머니도 서울에서 미술대학을 졸업한 화가라고 했다.


귀촌한 이후로 아버지는 서울에서는 전혀 하지 않았던 힘든 바다일과 농사일을 가리지 않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힘든 노동일은 하지 않았다. 아니, 아버지가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했다. 창고 옆 별채에 있는 방은 어머니의 화실이었다. 어머니가 하는 일은 화실이나 바닷가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섬에 온 이후에도 자주 서울을 왕래했고, 때로는 서울에 있는 외갓집에 가서 한 달 이상이나 돌아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소년의 아버지가 무엇 때문에 서울의 직장 생활을 접고 고향인 이 섬으로 귀촌하게 되었는지 그 구체적인 사정은 소년도 잘 몰랐다. 소년이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는 것은 당시 수년 동안 앓아누워 있던 소년의 할아버지가 그때쯤 돌아가셨고, 외동아들이었던 아버지가 홀로 남은 할머니를 모셔야 한다면서 서울의 직장을 그만두고 섬으로 왔다는 정도였다. 그 이듬해에 할머니도 돌아가셨다고 했다. 소년도 외동아들이었다.


소년의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가두리 어류 양식장 하나와 집 주위와 산기슭 비탈에 상당한 규모의 밭을 일구어 놓았다. 그 밭 위로 아직 개간하지 않은 산도 할아버지의 산이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이 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을 따라 독특한 돌층계처럼 보이는 작은 다랭이논 10여 개도 만들어 놓았다. 할아버지가 아프기 전에는 큰 발동선도 한 척 있었다고 하는데, 소년은 보지 못했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가난했지만, 가두리 어류 양식장을 가진 웬디 네와 할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은 소년의 집은 그래도 부자라고 할 수 있었다.


소년의 집에서 빤히 내려다보이는 바닷가에는 자갈이 듬성듬성 섞인 작은 해수욕장 같은 모래사장이 있었다. 이 모래사장 오른쪽 끝에는 시멘트로 블록을 쌓은 방파제가 있고, 이 방파제 앞바다에는 웬디 아버지의 가두리 양식장이 있었다. 토끼섬은 작은 섬이지만 천혜의 경관과 갯바위 낚시 명소로 꽤 이름이 나 있었다. 그래서 투틀즈라는 아이의 부모는 이 섬에 오는 관광객과 낚시꾼을 상대로 섬마을 해변 도로 초입에 있는 가게에서 슈퍼와 낚시점을 병행하고 있었고, 슬리의 부모 또한 해변 가게에서 횟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마을 앞 방파제에서 반원형으로 굽은 만(灣)을 왼쪽으로 빙 돌아 모래사장이 끝나는 왼편 끝 지점에는 귀를 쫑긋 세운 토끼머리처럼 생긴 바위 하나가 바다로 툭 돌출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토끼머리 바위>라고 불렀다. 이 바위는 물이 차오른 밀물 때는 바다로 돌출된 중간 부분이 바닷물에 잠겨 실제로 작은 바위섬이 되었다가, 물이 빠진 썰물 때는 바닥이 드러나 모래벌판과 그 위쪽의 언덕 능선으로 이어졌다. 모래벌판과 바위섬 사이 중간중간에는 올망졸망 크고 작은 여러 개의 바위가 징검다리 역할을 해서, 어지간히 큰 밀물 때가 아니면 소년은 물에 발을 담그지 않고도 바위섬에 올라갈 수 있었다. 썰물이 되어 바닥을 드러낸 징검다리 돌 사이사이는 작은 바다 웅덩이가 되었다.


이 바위섬 오른쪽 끝 토끼의 귀처럼 뾰족 튀어나온 바위 절벽에 해송 두 그루가 우아한 낙락장송의 자태를 뽐내며 서 있었다. 멀리서 보면 그것은 오랜 기간 정성껏 가꾸고 다듬어 놓은 운치 있는 소나무 석부 분재(石趺盆栽) 같았다. 그 소나무는 흙이라고는 한 줌도 없는 바위 절벽 중간 틈에 뿌리를 박고 서로 의지하듯 나란히 서서 절벽 아래 수면 위로 부채꼴로 퍼진 잔가지와 잎을 드리우고 있었다. 이 섬마을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다고 하는데, 밑동이 있는 바위틈을 자세히 살펴보면 안에서 뿌리가 서로 엉겨 붙어 있어, 실제 두 그루인지 한 그루에서 갈라진 두 몸체인지 정확하지 않았다.


그 바위섬 오른쪽 해안부터는 모래사장이 끝나고 크고 작은 바위들이 울퉁불퉁 튀어나온 갯바위였고, 이 갯바위 앞 해상에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가두리 양식장이 있었다. 돌출해 있는 토끼머리 바위섬이 사나운 태풍이 불 때도 먼바다에서 밀려오는 큰 파도를 막아 주는 방파제 역할을 하고, 또한 갯바위 아래라 수심이 깊어 어지간한 적조(赤潮)도 비켜 가는 바다의 문전옥답이라 할 만했다.


소년의 집에서는 조금 먼 거리였지만, 모래사장 오른쪽 방파제 끝에 할아버지 때부터 탔다는 아버지의 낡은 목선이 옹벽 쇠고리에 묶여 있었다. 토끼머리 바위섬이나 갯바위 해안에는 배를 정박해 두기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래된 낡은 목선이지만 부지런한 할아버지가 꼼꼼히 수리했던 탓에 여전히 탈 만했다. 아버지는 이 목선으로 갯바위 아래 어류 양식장에 사료를 주고 양식장 근해에 그물을 놓아 고기를 잡기도 했다. 아버지가 그물로 잡은 고기는 양식장의 고기와는 달리 자연산이라 하여 비싼 값으로 횟집에 팔려나갔다.


동트는 새벽, 소년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방파제 끝에 매어 둔 목선으로 갔다. 목선에 오른 아버지가 모래사장 앞바다를 가로질러 왼쪽 바위섬 쪽으로 노를 저어 가면, 소년도 굴곡진 해변을 빙 돌아 달려가 새벽 밀물 징검다리를 건너 바위섬으로 올라갔다. 이윽고 목선이 바위섬 아래를 지나면 소년은 아버지에게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 아빠. 오늘도 고기 많이 잡아 오세요.


소년의 목소리가 이른 새벽 갈매기 나래를 타고 먼바다로 퍼져나갔다.


― 그래, 그래. 이제 돌아가서 학교에 가.


힘차게 노를 젓는 아버지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더운 입김이 해풍에 실려 소년의 가슴으로 밀려오고, 일렁이는 물결을 따라 햇볕에 탄 아버지의 얼굴과 구릿빛 근육질 팔뚝에서 밝아 오는 여명이 그물에 걸린 싱싱한 활어처럼 번뜩였다.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바위섬을 내려오면 징검다리 바다 웅덩이에는 물빛 머금은 해초가 하늘거리고, 떼를 지어 유영하는 알에서 갓 깨어난 작은 물고기들이 투명한 햇살에 반짝였다. 그럴 때면 소년의 가슴에도 밝은 햇살이 활짝 피어나며 푸른 바다 물결이 넘실거렸다.


소년이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어느 늦은 봄날 저녁 무렵, 그날 아침 오랜만에 선착장의 여객선을 타고 창성 시내로 나갔던 아버지가 거나하게 술에 취해 돌아왔다. 아버지의 손에는 소년이 학교에서 쓸 몇 가지 학용품과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피터 팬>이라는 제목의 제법 두꺼운 동화책이었다. 그해 여름방학이 끝나기까지 소년은 그 책을 아마 스무 번도 더 읽었을 것이다. 책을 읽다 잠든 꿈 속에서 소년은 <피터 팬>이 되었고, 아버지는 <후크 선장>이 되었다. 요정 <팅크 벨>의 금가루를 옷에 묻히고 하늘을 나는 꿈을 꾸기도 했다.


2학기 개학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소년은 아버지가 쓰는 공구함에 들어 있는 톱을 꺼내어 집 뒤 울타리의 동백나무 가지 하나를 베어서 적당한 길이로 잘랐다. 그리고는 손잡이 부분을 남겨 두고 낫과 부엌칼로 납작하게 깎아 나무칼 하나를 만들었다. 동화 속 피터 팬이 후크 선장을 무찌르던 칼을 만든 것이었다.


― 아빠, 해적놀이 하자. 얍, 후크 선장, 이 피터 팬의 칼을 받아라.


아버지가 바다에서 돌아오는 해 질 무렵, 소년은 아버지와 함께 집 앞 모래사장에서 칼싸움을 하며 놀았다. 소년은 피터 팬이었고, 아버지는 후크 선장이었다. 모래사장에 피터 팬이 몸을 숨길 수 있도록 나지막한 모래 둔덕을 쌓고, 그 아래에 동화 속 네버랜드 땅 밑 집을 팠다. 그 모래 둔덕 위에다 해안가로 떠내려온 빨간색 헝겊으로 깃발 하나를 만들어 꽂아 두고 작은 돌을 동그랗게 늘어놓아 경계를 만들었다. 그곳은 피터 팬과 아이들이 살았던 <네버랜드>였다. 놀이는 후크 선장이 쳐들어와 네버랜드의 깃발을 빼앗는 놀이였다.


먼저 해적선(목선)에서 내린 아버지 후크 선장이 물가에서 모래를 다져 만든 주먹 대포알을 던지며 네버랜드를 공격해 온다. 피터 팬은 둔덕 뒤 땅 밑 집 바닥에 납작 엎드려 모래 대포알을 피한다. 함포 사격으로 먼저 기선을 제압한 후크 선장 아버지는 진짜 후크 선장의 갈고리 손처럼 오른손의 옷소매 끝을 묶어 집게손가락 하나만을 내밀어 구부리고, 왼손으로 나무막대 칼을 휘두르며 네버랜드로 쳐들어온다.


소년 피터 팬 역시 미리 만들어 놓은 모래 대포알을 던지며 후크 선장에게 대항한다. 그러나 후크 선장은 모래 대포알을 피하며 끝까지 네버랜드로 달려든다. 모래 대포알 몇 발을 맞고서도 끄떡없이 달려든다. 마침내 후크 선장이 네버랜드 경계선까지 쳐들어오고, 이때 피터 팬은 드디어 나무칼을 빼어 들고 후크 선장과 결투를 벌인다.


― 얍, 어디로 쳐들어오느냐. 후크 선장, 내 칼을 받아라.

― 요 꼬맹이 피터 팬, 오늘이 너의 마지막이 될 것이다. 이 후크 선장의 칼을 받아라.


탁탁, 탁탁, 피터 팬과 후크 선장의 막대기 나무칼이 서로 부딪힌다.


― 얍, 이 피터 팬의 마지막 일격이다.


후크 선장이 뒤로 주춤주춤 물러선다. 그러다가 그만 뒤로 벌렁 자빠지고 만다. 배를 위로 향하고 넘어져 있는 후크 선장의 목에 피터 팬이 칼을 겨눈다.


― 후크 선장, 오늘만은 살려 준다. 다시는 네버랜드로 쳐들어올 생각을 말아라.

― 아, 분하다. 오늘도 지고 말다니. 피터 팬, 오늘은 물러간다만 기다리고 있어라. 내일 다시 찾아와 꼭 네버랜드를 차지하고 말 테다.

― 야, 이겼다. 후크 선장이 도망간다.


이제까지 아버지 후크 선장은 한 번도 깃발을 빼앗지 못했다. 동화 속에서 끝까지 이기는 쪽은 언제나 피터 팬이었기 때문이다. 해적놀이가 끝나면 마을 뒷산에서 시작된 노을이 먼바다 위에 물감을 풀어놓은 것처럼 빨갛게 번져 났다. 아버지가 모래사장에 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소년이 아버지의 곁에 앉는다.


― 아빠, 오늘도 고기 많이 잡았어?

― 그래, 한 배 가득 잡았다.

― 아빠는 어떻게 그렇게 고기를 잘 잡아?

― 바다가 고기 있는 곳을 가르쳐 줘.


― 바다가 어떻게 가르쳐 주는데?

― 바다가 하는 말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들려. 그 소리를 따라가면 고기가 보여. 아빠는 깊은 물속 캄캄한 곳에 있는 물고기도 볼 수 있어.


― 에이, 거짓말. 바다가 어떻게 말을 해? 캄캄한 물속을 어떻게 봐?

― 귀로 듣는 게 아니란다. 마음으로 듣는단다. 눈으로 보는 게 아니란다. 마음을 모으면 눈이 열려.

― 치, 거짓말.

― 거짓말이 아니야. 네가 좀 더 크면 저절로 알게 될 거야. 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 엄마가 기다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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