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인디언 공주 타이거 릴리 선생님
존엄사법이 제정되지 않아 살인범이 된 어느 소년의 아버지에 대한 지극한 간병과 사랑이야기
그런데 그날 오후, 뜻밖의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꺽다리처럼 큰 키에 목 뒤에서 끈으로 질끈 동여맨 검은 생머리, 무릎이 훌렁 까진 청바지를 입은, 그러나 아직 앳돼 보이는 미모의 아가씨였다. 햇볕에 다소 탄 화장기 없는 신선한 얼굴에 건강한 야성미가 넘쳐났다.
그녀는 아이들이 사는 섬마을 분교의 담임선생이라고 했다. 개학이 되었는데도 아이들이 하나도 학교에 오지 않아 마을에 알아보니, 이곳 병원에 있다고 해서 찾아왔다고 했다. 내가 그동안 병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간추려 말하면서 화염병 얘기하자, 그녀는 깜짝 놀랐다. 설마? 농성을 하는 시위대도 아니고, 그녀가 직접 가르치는 그 순진한 어린아이들이 병실에 화염병을 가득 쌓아 놓고 있다니? 믿을 수가 없다고 했다. 우리는 곧바로 병실로 갔다.
나는 그녀가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아이들을 혼내며 화염병부터 치울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 얘들아.
병실의 문을 열자마자 그녀가 두 팔을 활짝 펼치며 아이들을 불렀다. 병실의 소파와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아이들이 고개를 들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토끼 눈을 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 선생님, 선생님!
아이들이 저마다 외치며 우르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는 쪼그려 앉아 먼저 제일 어린 꼬마 녀석의 볼에 뺨을 비볐다. 아이들과 그녀는 한참 동안 서로 돌아가며 얼싸안고 차례차례 뺨을 비비며 만남의 기쁨을 나눴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그때까지 환자의 머리맡에 멀찌감치 서 있는 소년에게로 다가가 팔을 활짝 벌렸다. 그러고는 명랑하고 기운 찬 목소리로 크게 말했다.
― 야, 피터 팬.
소년의 눈이 글썽 글썽이더니, 기어이 눈물이 흘렀다. 그녀가 다가가 소년의 머리를 가슴에 꼭 안았다.
― 피터 팬은 울지 않아. 마이클, 그렇지?
그녀가 소년의 머리를 안은 채로 제일 어린 꼬마 녀석을 보고 말했다.
― 그래요. 피터 팬은 울지 않아. 존 형아, 그렇지?
꼬마 녀석이 저보다 조금 더 큰 꼬마를 돌아보며 말했다.
― 그래, 피터 팬은 울지 않아. 투틀즈 형아, 그렇지?
그 꼬마 녀석이 다시 저보다 큰 뚱뚱한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 그래, 피터 팬은 울지 않아. 슬리야, 그렇지?
뚱뚱한 아이가 또래의 키 큰 아이에게 말했다.
― 그래, 피터 팬은 울지 않아. 웬디 누나, 그렇지?
키 큰 아이가 여자애에게 말했다.
― 그래, 피터 팬은 울지 않아. 피터 팬은 언제나 용감해.
여자애가 소년을 바라보며 말했다.
― 에이 씨이~, 그래, 피터 팬은 울지 않아.
그녀의 품에서 벗어난 소년이 주먹 쥔 손등으로 눈물을 쓱 문지르고는 멋쩍게 씩 웃으며 말했다.
― 그런데 방학 동안 마이클은 뭐 했어?
그녀가 다시 꼬마에게 물었다. 꼬마가 병실 응접탁자로 쪼르르 달려가 탁자 위에 놓아둔 짧은 나무칼을 집어 들고 허공을 휙휙 후려치며 말했다.
― 얍, 얍, 후크 선장을 지키고 있었어요. 여기에서요. 우리 모두 다요.
― 그랬구나. 그래, 모두 잘했다. 이런 줄 알았다면 선생님도 함께 있었을 텐데.
― 이제 왔잖아요. 우리 함께 후크 선장을 지켜요.
투틀즈라는 뚱뚱한 아이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 자, 자, 잠깐만…….
그녀가 재잘거리는 아이들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 인어 호수 귀양살이 바위에서 피터 팬은 어떻게 했지요?
― 아이들을 구하고 혼자 남았어요.
아이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말했다.
― 그래, 그래. 자, 그럼 모두 눈을 감아 봐요.
그녀가 말하자 신기하게도 아이들이 선 채로 두 팔을 늘어뜨리고 모두 눈을 감았다.
― 지금 여기는 인어 호수예요. 인어들이 모여서 재잘대며 얘기하고 있어요. 자, 재잘거리는 인어들 얘기 소리가 들리는 친구는 고개를 끄덕여 봐요.
아이들은 눈을 감은 채로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 지금 피터 팬은 물이 차오르는 귀양살이 바위에 혼자 서 있어요. 어머머, 정말 큰일 났어요. 물이 점점 더 차올라 피터 팬이 물에 잠기려고 해요. 아이 참, 이를 어떡해, 어떡해. 아, 저쪽 물 위를 봐요. 어머머, 새가 있어요. 하얀 날개를 가진 이름다운 환상의 새가 있어요. 새가 자기 둥지를 피터 팬에게 밀어주고 있어요. 어서 제 둥지에 타라고. 아유, 이제 안심이네요. 지금 피터 팬이 환상의 새 둥지를 타고 다시 땅 밑 집 친구들에게 돌아왔어요. 자, 이제 모두 눈을 떠요.
그녀가 말하면서 짝짝 박수를 두 번 쳤다. 아이들이 눈을 떴다. 모두가 초롱초롱한 눈빛이었다. 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
― 얘들아, 지금 이 병원은 귀양살이 바위야. 피터 팬이 환상의 새 둥지를 타고 돌아오려면 우리 친구들이 먼저 이 바위를 떠나야 해. 그렇지?
― 그래요.
제일 어린 꼬마가 나무칼로 손뼉을 딱하고 치며 말했다.
― 그럼 우리는 이제 학교로 가자. 먼저 돌아가 피터 팬이 환상의 새 둥지를 타고 돌아오기를 기다려야지.
그녀가 손짓으로 다시 아이들을 불러 모아 두 팔을 벌려 한꺼번에 안으며 말했다.
― 그렇지만 이곳에는 환상의 새가 없는걸요.
슬리라는 키 큰 아이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 아니야, 있어. 선생님이 보여줄게. 자, 다시 한번 모두 눈을 감아 봐.
아이들이 한 무리가 되어 그녀의 품에 안긴 채 모두 눈을 감았다.
― 지금 환상의 새가 깜깜한 하늘을 날고 있어. 깜깜한 하늘에 하얀빛 하나가 보이지? 빛이 보이는 친구는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여 봐.
아이들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는지는 모른다. 왜냐하면 그때 나도 그녀의 말에 따라 눈을 감고 깜깜한 하늘을 나는 하얀빛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어머머, 하얀빛이 여기로 오고 있어. 이 병원으로 날아왔어. 하얀빛이 다시 하얀 날개를 파닥이는 환상의 새로 변신했어. 어머머, 그런데 이건 또 웬일일까? 환상의 새 날개가 변신하고 있어. 하얀 날개가 의사 선생님의 하얀 가운으로 변신하고 있어. 어, 환상의 새가 의사 선생님으로 변신했어. 하얀 가운 주머니에 청진기를 넣은 의사 선생님으로 변신했어.
나는 그때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손으로 내 가운 주머니에 청진기가 있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 자, 이제 눈을 떠봐. 바로 여기에 환상의 새가 있잖아. 여기 의사 선생님이 바로 환상의 새야. 존, 그렇지? 방금 너도 보았지?
― 그래요, 보았어요. 환상의 새가 의사 선생님으로 변신했어요.
― 투틀즈, 너는?
― 저도 보았어요.
― 슬리는?
― 예, 맞아요.
슬리가 말했다.
― 저도 보았어요.
― 저도 보았어요.
마이클과 웬디가 동시에 말했다.
― 자, 그럼 이제 우리는 학교로 가자. 환상의 새가 변신한 여기 의사 선생님께서 후크 선장의 병을 반드시 치료하실 거야. 그러면 피터 팬은 건강한 후크 선장과 함께 환상의 새 둥지를 타고 돌아오겠지? 안 그래?
그 순간 내가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 그래, 너희들은 지금까지 몰랐겠지만, 내가 바로 그 환상의 새란다. 너희들의 후크 선장은 내가 반드시 치료할 거야. 후크 선장을 어디로 옮기지 않고 이곳, 이 병실에서 말이야. 치료를 받고 건강해진 후크 선장은 내가 만든 환상의 새 둥지를 타고 너희들에게 돌아갈 거야. 반드시 그렇게 될 거야. 그런데 후크 선장이 왜 이렇게 되었지?
나는 소년을 바라보며 물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소년의 아버지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동안 소년의 마음을 열고자 일부러 물어보지 않았고, 소년도 말하지 않았다. 소년은 이제 적의를 풀었다.
― 해애적노오리 하다가…….
소년이 고개를 숙이고 우물우물 중얼거렸다.
나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 뭐? 해애적노오리?
― 해적놀이요.
여자애가 옆에서 똑똑하게 말했다.
― 헤헤, 나는 마이클.
제일 어린 꼬마 녀석이 눈을 반짝이며 가슴을 쑥 내밀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 나는 존요.
그보다 조금 큰 꼬마의 말. 오른손에 나무칼을 들고 허공을 휙휙 후려치며 말했다.
― 히히히, 나는 곰 가죽 투틀즈.
덩치가 큰 뚱뚱한 아이의 말. 아이가 일부러 우스꽝스럽게 뒤뚱거리며 한 바퀴 맴을 돌며 말했다.
― 나는 피리 부는 슬라이틀리요. 그냥 슬리라고 불러요.
또 다른 키 큰 아이의 말. 입에 피리를 물고 손가락을 오르내리며 구멍을 열고 닫는 흉내를 내며 말했다.
― 저는 웬디요. 아이들의 엄마예요. 그리고 선생님은 인디언 공주 타이거 릴리고요.
여자애가 자기의 가슴에 손바닥을 대고 말한 후 다시 손을 내밀어 그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 나는 피터 팬요.
소년이 여전히 풀 죽은 목소리로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그런 소년의 눈에서 갑자기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소년의 어깨가 들썩였다. 그녀가 소년의 머리를 다시 한번 꼭 껴안았다.
― 선생님, 애들 옷을 갈아입힐게요.
웬디라는 여자애가 원래 아이들이 입고 왔던 옷을 꺼내 놓았다. 환자복을 벗고 옷을 갈아입은 마이클이 다시 빨랫줄 벨트에 나무칼을 찼다. 아이들이 옷을 모두 갈아입자 그녀가 말했다.
― 자, 그런데 집으로 가기 전에 먼저 할 일이 있지? 침대 밑에 감춰 둔 휘발유 페트병은 치우고 가야지.
순간, 아이들이 한꺼번에 그녀를 바라보며 와아, 하고 웃었다. 아하하, 투틀즈라는 뚱뚱한 아이는 너무 우스웠던지, 배를 잡고 그만 바닥을 뒹굴었다.
― 너희들 왜 그러니? 내 얼굴에 뭐가 묻었어?
그녀가 영문을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히히히, 여전히 웃으면서 의젓하게 나무칼을 찬 마이클이 쪼르르 달려가더니 엉덩이 골을 반쯤 드러낸 채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가 페트병 화염병을 꺼내기 시작했다.
― 선생님, 이거 기름 아니에요. 그냥 물이에요. 제가 물감을 탔어요. 심지 끝에만 살짝 기름을 묻혔어요.
유일하게 웃지 않고 있던 소년, 피터 팬이 고개를 숙인 채 화염병 하나를 그녀에게 내밀며 말했다.
― 뭐라고? 하하하.
나는 너무도 어이가 없어 그만 실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병원 전용 승합차로 그녀와 아이들을 해안 마을 선착장까지 태워 주도록 했다. 아이들이 모두 차에 탄 후 제일 마지막으로 차에 오르는 그녀에게 내가 말했다.
― 서울에 사는 선생님이 무엇 때문에 그런 외딴섬에서 혼자 고생을 해요?
아이들이 있는 병실로 오기 전 진료실에서 얘기를 나눌 때, 그녀가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고 집은 서울이라는 말을 했기 때문에, 별다른 생각 없이 불쑥 물어본 말이었다.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내 물음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입술을 삐쭉 내밀어 피식 웃고는 차의 문을 쾅, 하고 닫고 말았다. 그녀의 피식 웃은 그 표정과 꽝, 하고 문을 닫는 다소 거친 행동이 속물근성에 찌든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은 하지 말라고 따끔하게 질책하는 것 같아 나는 그만 가슴이 뜨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