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팬, 법정에 서다

제4화 피터 팬, VIP 병실을 점령하다

by 임재도

임재도 작가의 법률감성소설

피터 팬, 법정에 서다

존엄사법이 제정되지 않아 살인범이 된 어느 소년의 아버지에 대한 지극한 간병과 사랑이야기






제4화 피터 팬, VIP 병실을 점령하다



나는 그 환자를 우선 입원비가 제일 싼 일반병동 3층 입원실로 옮기려고 했다. 당장 퇴원시켜 아예 쫓아내 버리고 싶었지만, 보호자도 없이 어린 중학생 하나만 있는 의식불명 환자를 아무런 대책도 없이 내보낼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생명이 경각에 달린 중환자를 일방적으로 유기한 의사가 되어 법적 문제가 발생할 여지도 있었다.


그런데 일이 터지고 말았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이 간호사에게 환자를 일반병동으로 옮기라는 지시를 하고 막 오후 진료를 시작하려는데, 급히 VIP실로 오라는 전화가 온 것이다. 그 사이 혹시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환자의 예후가 워낙 좋지 않아 그동안에 무슨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나는 서둘러 특별병동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 VIP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그만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언제 왔는지 병실은 하나같이 소년처럼 땟국이 줄줄 흐르는 다섯 명의 어린 병정들에 의해 점령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들과 대치하고 있는 이 간호사를 포함한 여자 간호사 셋은 사색이 된 표정으로 출입문 입구를 등지고 선 채 손발을 덜덜 떨며 서 있었다. 이런 여자들 틈에서 나보다 먼저 현장에 달려온 매사에 사람이 좋기만 한 원무 과장도 어쩔 줄 몰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기막힌 것은 이들 점령군의 모습이었다. 제일 앞줄에 1차 방어선을 친 어린 꼬마 병정 둘은 기껏해야 초등학교 2, 3학년쯤 되어 보였다. 오른쪽에 선 녀석 하나는 만화에서나 나올법한 괴상하게 생긴 검은색 삼각 모자를 비뚜름하게 쓰고 빨랫줄 같은 노끈으로 질끈 동여맨 허리에 짧은 장난감 나무칼을 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왼쪽에 선 작은 녀석도 역시 우스꽝스러운 너저분한 밤색 중절모자를 쓰고 허리에 두른 낡은 검정 가죽 벨트 안에 조잡하게 깎은 나무칼을 차고 있었다. 이 두 꼬마 병정은 당장이라도 허리에 찬 칼을 빼 들 것처럼 간호사들을 빤히 올려다보며 허리를 비스듬히 굽히고, 오른쪽의 녀석은 왼손으로, 왼쪽의 녀석은 오른손으로 각자 허리에 꽂은 나무칼의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1차 방어선을 친 이 두 꼬마 병정의 모습은 그나마 우스꽝스럽고 애교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그 뒷줄에 2차 방어선을 치고 있는 초등학교 5, 6학년쯤으로 보이는 사내 병정 둘과 6학년이나 사복 입은 중학생으로 보이는 제법 소녀티가 나는 여군 병정의 손에 들린 물건들을 보고, 나는 그만 바짝 얼어붙고 말았다. 간호사들이 입구에 서서 벌벌 떨기만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다섯 중에서 키와 덩치가 제일 큰 중간에 선 한 녀석은 어시장에서 생선을 찍어 올리거나 생선 상자를 끌고 운반할 때 쓰는 날카로운 갈고리 요구를 오른손에 들고, 누구라도 가까이 다가오기만 하면 여지없이 갈고리를 휘두를 것처럼 허리를 약간 웅크린 자세로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녀석의 왼쪽에 선 뚱뚱한 또 한 녀석과 오른쪽에 선 여자애는 눈을 부릅뜨고, 각자 왼손에는 헝겊 심지가 달린 작은 페트병을, 오른손에는 일회용 라이터를 들고 있었다. 페트병에 담긴 주황색 액체는 분명 휘발유처럼 보였다. 이 둘은 언제라도 찰칵하고 라이터를 켜서 페트병 화염병의 헝겊 심지에 불을 붙일 것처럼 엄지손가락을 곧추세워 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뒤 환자가 누워 있는 침대 앞에서 마지막 3차 방어선을 치고 서 있는 소년은 화염병과 라이터뿐만 아니라 오른손에 날카로운 커트 칼까지 빼 들고 서 있었다. 소년의 뒤 환자가 누운 침대 아래 바닥에도 이들의 손에 들린 것과 같은, 열 개가 넘는 심지 달린 페트병 화염병이 가지런히 세워져 있었다. 그 때문에 병실 안에는 휘발유 냄새가 확 풍기는 것 같았다.


소년은 적의가 가득 찬 형형한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오전에 잔뜩 겁을 집어먹고 눈만 껌벅거리던 순진하고 꾀죄죄한 어린 중학생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런 사태와 소년의 눈빛에 오히려 간호사들이 잔뜩 겁을 집어먹고 안절부절 벌벌 떨고 서 있었다.


― 이놈들, 너희들은 누구야? 대체 이게 무슨 짓이야?


내가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서며 호통을 쳤다. 순간 앞에 선 꼬마 녀석 둘이 동시에 나무칼을 빼 들고 나를 향해 겨누며 소리쳤다.


― 가까이 오지 마!


호기롭게 외치는 그 모습이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앙증스러워 실소를 머금다가, 나는 그 두 녀석 뒤에 선 사내아이 둘과 여자애의 단호한 동작에 그만 바짝 얼어붙고 말았다. 중간에 선 덩치 큰 녀석이 요구를 치켜들자, 화염병을 든 나머지 애들이 헝겊 불 심지로 라이터를 가져가고 있었다. 정말 여차하는 순간 곧바로 찰칵하고 불을 옮겨 붙일 태세였다. 이때 소년이 울부짖는 듯한 목소리로 절박하게 소리쳤다.


― 아빠를 데려가면 정말 불을 지르고 죽어 버릴 거야.


소년은 오른손에 라이터와 함께 모아 쥔 커트 칼을 제 목에 들이대고 있었다. 소년의 눈빛은 섬뜩했다. 햇볕에 까맣게 탄 얼굴의 눈빛이 야생상태에서 길들지 않은 정글북 아이의 눈빛 같았다. 이제 겁을 집어먹은 사람은 나였다.


― 자, 자, 얘들아. 그러면 안 돼. 그래, 그래, 아빠를 데려가지 않으마.


내가 더듬거리며 손을 아래위로 흔들어 아이들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 저엉말?


제일 앞에 선 꼬마 녀석이 나무칼을 내리며 말간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말했다.


― 약속하세요.


그 옆에 선 작은 꼬마 녀석이 여전히 나무칼을 겨눈 채 눈에 힘을 주고 말했다.


― 그래, 약속하마. 의사 선생님이 분명히 약속한다. 이제 됐니? 자, 우리는 병실에서 나가겠다. 이제 그 라이터와 화염병은 치워라. 그 칼도 치우고. 잘못하면 큰일 난다.


이런 난리에 일반병동으로 병실을 옮기지도 못하고 오후 늦게야 겨우 김 과장과 통화를 하게 된 나는 더욱 기막힌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환자는 토끼섬이라 불리는 작은 섬에서 고기를 잡아 연명하는 어부로 2년 전에 창성 병원에 입원했고, 수술비 등 1년 치가 넘는 병원비가 밀렸으나 자기 병원에서는 이미 포기했다고 했다. 더구나 그때부터 의료보험료조차 내지 않아 보험 혜택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소년과 그 어머니가 번갈아 가며 환자를 간호했는데, 아무리 퇴원을 종용해도 막무가내로 눌러앉아 있었다고 했다. 한 번은 강제로 퇴원시키려 하자, 언제 병실 안으로 가져다 놓았는지 두 사람이 함께 휘발유 통을 끌어안고 라이터를 켜며 저항하는 바람에 병원에서도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당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김 과장이 묘안을 짜낸 것이, 이들을 이용하여 그가 백안시하는 돈벌레 원장을 한번 골탕 먹이자는 것이었고, 이후 무려 일주일 동안이나 그 어머니를 설득하여 더 좋은 병원으로 보내 준다는 각서를 쓰고 그 환자를 우리 병원으로 이송했다고 했다. 환자를 싣고 온 그 인턴이 정말 우리 병원에 환자를 이송했는지 확인하기까지, 그 어머니는 여전히 병실에서 휘발유 통을 끌어안고 있었다고 했다. 이런 말끝에 김 과장이 덜컥 으름장을 놓았다.


― 애와 어머니가 어찌나 독하고 영악한지, 정말 사생결단이야. 조심해라. 그애나 어머니는 언제라도 휘발유 통에다 불을 지를 사람들이야.


그애의 어머니가 아니라 악다구니 또래 녀석들의 휘발유 화염병 난동 사건은 이미 경험한 터였다.


― 그런데 그 악다구니 같은 녀석들은 또 뭐야?

― 악다구니라니?

― 양아치 같은 또래 녀석들이 몰려와 화염병을 들고 설쳤어.

― 아, 그놈들, 거기에도 전교생이 몰려왔던 모양이구나.

― 전교생이라니?

― 그애가 사는 토끼섬에 초등학교 분교가 하나 있어. 전교생이 모두 다섯 명이야. 여자애 하나랑 모두 다섯 명이었지?


정말 기가 찰 노릇이었다.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 김 과장에게 소리쳤다.


― 야, 그때 경찰이라도 불러서 어떻게 해결하지 않고?

― 야, 경찰을 불러 봐라, 기자가 따라붙을 것이고, 목숨이 위태로운 환자를 돈 몇 푼 때문에 강제로 내보낸다고 동네방네 나팔을 불 게 뻔하지 뭐. 그것도 그렇지만, 그 영악한 아이나 어머니가 정말 휘발유 통에 불이라도 지르면 어떻게 해. 휘발유 통을 끌어안고 사생결단으로 덤벼드는 판에, 경찰이라고 해서 뭐 별 수 있겠어? 오히려 병원 이미지만 나빠지지. 그리고 너도 이미 겪어 봤겠지만, 학교의 전교생 모두를 어떻게 감당해. 전교생이 한꺼번에 몰려와 화염병을 들고 날뛰는 판인데 어떻게 감당하냐고? 아이고야, 나는 마, 간이 떨려 못 하겠더라, 으하하, 재미있다.


― 야, 이게 웃을 일이야? 아이고, 골치야. 그런데 애 어머니는 왜 오지 않아?

― 몰라. 너희 병원에 환자가 간 것을 확인하고 우리 병원에서 나갔는데, 정말 오지 않았어? 그건 좀 이상한데?

― 그애는 네가 데려왔다며?


― 그래, 애 어머니를 겨우겨우 설득하여 애가 학교에 간 틈을 타서 환자를 이송했는데, 지난 금요일, 네 병원에 환자를 보낸 날 말이야, 마침 방학하는 날이었지. 방학이 되면 애와 전교생 모두가 병실에 죽치고 앉아 꼼짝도 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날을 디데이로 잡았어. 애가 학교에서 돌아온 뒤 다시 한번 난리가 났지. 아무리 네 병원으로 보냈다고 해도 믿지를 않더라. 그런데 토요일 저녁에 어떻게 알아냈는지, 그애가 우리 아파트까지 떡 찾아온 거야.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어. 아빠를 돌려달라고 울고, 빌고, 소란을 떨고, 집에서까지 또 한바탕 난리가 났지. 왜, 내가 마음이 좀 여리냐. 이 이십일 세기 최후의 슈바이처가 말이야. 얼마나 아버지를 생각했으면 어린것이 저럴까 싶어 한편으론 불쌍한 거야. 그래서 할 수 없이 내 차에 태워 네 병원으로 데려갔어. 내가 그애에게 싹싹 빌었다 정말.


― 야, 이거 정말 미치겠네. 퇴원은 하지 않더라도 보호자가 있으면 병실이라도 바꾸자고 해볼 텐데, 막무가내로 하나 남은 VIP실에 딱 버티고 있으니. 그렇다고 강제로 하자니 정말 네 말처럼 휘발유 화염병에 불이라도 지를 태세고. 설사 화염병이야 어떻게 강제로 수거하더라도, 정말 녀석이 커트 칼로 제 목에 자해라도 해버리면, 그거야말로 더 큰일이 아니겠어?


― 그동안 많이 벌었으니 이제는 좀 베풀면서 살라고 해라. 그 돈벌레 원장한테.

― 나 지금 농담할 기분 아냐.

― 다 너와 그 잘난 돈벌레 원장의 욕심이 빚어낸 인과응보이니라.

― 야, 거기에 왜 내가 들어가?

― 넌 돈벌레 원장한테 돈 실어다 나르는 개미 일꾼이잖아. 둘이 뭐가 달라? 지성이면 감천이니라. 부디부디 잘 모셔서 돈을 왕창왕창 버세요. 개미 일꾼님, 그럼 소인은 이만 물러갑니다.


김 과장이 다시 한번 억장을 지르고는 딸깍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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