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피터 팬, 밤의 침입자를 물리치다
존엄사법이 제정되지 않아 살인범이 된 어느 소년의 아버지에 대한 지극한 간병과 사랑이야기
― 정말 신기한 아이들이에요.
― 뭐가 말이요?
― 어린애들이라 말썽을 부릴까 봐 걱정했는데, 모두 병실에 얌전히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아요.
― 그것 참 불행 중 다행이군.
― 그 여자애가 애들을 씻기고 어르며 돌보는 게 꼭 애들 엄마 같아요.
며칠이 지나서 이 간호사가 말했다. 아이들이 병실을 점령한 이후 나는 행여 그애들이 사고라도 칠까 봐 노심초사하면서 간호사들과 직원들을 하루 3교대로 배치하여 한시도 감시를 소홀히 하지 않도록 했다. 그러나 이 간호사의 보고에 의하면 그것은 기우였다. 다른 간호사들의 말도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간호사들은 아이들을 칭찬하기까지 했다. 다만 아이들은 우리가 그들을 감시하며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처럼 자기들도 주야 2교대로 번을 서면서 우리를 경계하고 있다고 했다. 애들이 장난을 쳐 병실의 가구나 기물들을 손상하지나 않을까 걱정했으나, 그것도 기우였다.
분명 아이들만의 생각으로 병실 안에 화염병을 몰래 반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 과장은 소년과 그 어머니가 휘발유 통을 끌어안고 끝까지 병실에서 저항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은 분명 소년의 어머니가 사전에 아이들을 교육시켜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이러한 행동은 철저하게 계산된 그 어머니의 음모일 것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이 여자가 나타나야 어떤 조치나 흥정이라도 해볼 수 있을 텐데, 어찌 된 셈인지 그림자도 얼씬 않고, 더구나 연락할 방법조차 없으니 정말 기가 찰 노릇이었다. 아이들을 도구로 삼아 앞에 내세우고 교묘하게 뒤에서 이들을 조종하고 있는 영악하고 독한 여자,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오기 시작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여전히 환자의 침대 밑에는 휘발유 화염병이 쌓여 있어 행여 이것으로 사고라도 날까 봐 단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나는 우선 이 화염병이라도 치워 보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그것도 여의찮았다. 며칠 뒤 자정이 넘은 시간에 나는 힘센 직원 몇 명을 데리고 불시에 병실로 쳐들어갔다.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병실 문이 잘 열리지 않았다. 문틈으로 보니 소파 같은 집기를 밀쳐 문을 막아 놓은 것이었다. 직원들이 힘껏 문을 밀었다. 문이 겨우 반쯤 열리고 우리가 억지로 방 안으로 들어섰을 때, 우리는 그때처럼 다시 얼어붙고 말았다. 어떻게 눈치를 챘는지 불이 환히 켜져 있는 방 한가운데 소년과 덩치가 큰 아이, 그리고 여자아이 셋이서 발치에 화염병들을 가지런히 세워 놓고, 양손에는 각자 화염병 하나와 라이터를 들고 우리를 노려보고 서 있었다. 제일 어린 두 아이는 조막손에 나무칼 손잡이를 쥔 채 바닥에 모로 누워 웅크린 채 자고 있었다.
― 나가요. 안 나가면…….
소년이 오른손을 천장을 향하여 치켜들고 라이터와 함께 모아 쥔 커트 칼의 칼날을 빼어 들고는 찰칵하고 불을 켰다. 두 아이도 소년을 따라 동시에 불을 켰다. 우리가 한 발짝이라도 다가가면 가차 없이 화염병에 불을 붙일 태세였다.
― 얘들아, 그러면 안 돼. 그러면 너희들은 물론이고, 침대에 누워 계신 아빠도 저 꼬마들도 다친다.
내가 당황하여 더듬거리며 말했다.
― 상관없어요. 이제는 이판사판이에요. 건드리기만 해 봐. 정말 불을 지르고 죽어 버릴 거야.
소년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아이 같지 않았다. 눈에는 불길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다시 한번 찰칵하고 라이터의 불을 켜더니 천천히 화염병으로 옮겨갔다. 다른 아이들도 소년을 따랐다. 이때 바닥에서 자고 있던 두 꼬마가 소년의 큰 목소리에 깨었나 아직 채 떠지지 않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제 딴에는 상황을 파악하는 것 같았다. 그런 한순간, 둘이 거의 동시에 나무칼을 쥐고 쪼르르 제일 앞으로 뛰어나와 방어군에 가세했다.
― 가까이 오지 마.
두 녀석이 조막손으로 쥔 나무칼을 우리에게 겨누며 호기롭게 외쳤다. 두 꼬마 녀석의 앙증스럽고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나는 그만 실소부터 터져 나왔다.
― 허허, 그래, 그래, 알았다. 나가마. 우리가 나가마. 얘들아, 우선 그 불부터 꺼라. 우리가 잘못했다.
완전 실패였다. 직원들도 멋쩍은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원장에게 이런 상황을 계속 감추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원장은 돈벌레라는 별명처럼 돈에 대하여 지독한 욕심을 갖고 있었으나 의외로 겁도 많아서, 김 과장한테서 들은 얘기와 이제까지 병실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자 처음에는 손까지 덜덜 떨었다. 물론 김 과장이 환자를 보냈다는 것은 숨겼다. 원장이 그런 사실까지 알게 되면 김 과장의 처지가 난처해질 것이었다.
그러나 평소 손익계산에 철저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원장은 이내 냉정을 회복하고, VIP실 하나는 기왕에 이렇게 된 마당에 어쩔 수 없이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혹시 아이들의 화염병 사건이 외부에 알려져 특별병동의 다른 환자들이 무더기로 퇴원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이 병동에 입원(?)해 있는 환자 아닌 유한 족속들이 그들과 전혀 상종조차 할 수 없는 양아치 같은 아이들이 옆방에 화염병을 쌓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누구라도 퇴원하고자 할 것이었다. 원장의 우려대로 그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처음 원장의 관심은 오직 이것뿐이었다. 돈벌레라는 별명답게 병원과 아이들의 안전은 아예 뒷전이었다. 경찰이라고 뭐 별 수가 있겠느냐는 말을 들은 탓인지, 처음부터 경찰을 부를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원장은 전 직원에게 이 일을 철저하게 비밀로 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간호사와 병원 직원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일일이 원장실로 불러, 만약 이 일이 바깥으로 새나가는 일이 발생하기만 하면 그 어느 누구라도 그냥 두지 않겠다고 침을 튀겨 가며 으름장을 놓았다.
원장의 엄명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 섣불리 경찰을 부를 수도 없었다. 사리분별력이 없는 아이들이 휘발유 화염병을 쌓아 두고 있는 병실이었다. 경찰의 강제진압 과정에서 겁에 질린 아이들이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었고, 만에 하나 경찰도 예상치 못한 화염병으로 인한 불상사가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도 없었다. 또한 이 경우 소년이 언제라도 커트 칼로 정말 제 목에 자해를 할 수도 있었고, 이것은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충분한 구체적인 위험이었다.
그러나 사실 이런 것들은 원장이 내세운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했다. 원장이 경찰을 부르지 못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이 특별병동은 원장이 탈법으로 운영하는 은밀한 현금 벌이 수단이었고, 원장은 사적으로 마약성 주사나 약을 처방해 주기도 하는 불법의료행위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일이 빌미가 되어 관계 당국에서 특별병동의 운영실태에 대하여 조사가 시작되면 그동안의 탈루 세금을 추징당해야 함은 물론 불법의료행위에 따른 형사처벌까지 감수해야 할 처지였다. 이러한 문제는 병원의 존폐가 걸린 문제였고, 나아가 지방 정계 진출이라는 원장의 꿈도 접어야 할 문제였다. 아이들 때문이 아니라 원장 자신의 불법행위 때문에 자승자박이 된 꼴이었다.
나도 원장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와중에 한 달여가 지났다. 그동안 병원에서는 소년은 물론이고 아이들의 식사도 꼬박꼬박 챙겨 주었다. 또 아이들 각자가 입고 왔던 하나뿐인 옷이 더러워져 각자의 몸에 맞는 환자복을 골라 주어 갈아입게 했다.
― 이보게 박 과장, 도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요?
처음 자기 병원에 왔을 때는 마치 간이라도 빼어 줄 것처럼 싹싹거리며 부원장이라고 부르더니, 차츰 시간이 지나자 원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슬며시 나를 과장으로 낮춰 불렀다. 그래야 원장이라는 자기의 체면이 더 살아나는 모양이었다. 원장이 그렇게 부르자 간호사나 직원들도 덩달아 그렇게 불렀다. 아마 원장이 그렇게 부르도록 지시했을 것이다.
원장은 매일같이 나를 불러 닦달하기 시작했고,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그 정도도 심해졌다. 이제 원장은 노이로제 증세까지 보였다. 원장이 아는 지인을 통해 은밀하게 법률사무소에 알아보니, 병실을 점령한 아이들이 형사미성년자라 처벌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아이들의 부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것도 마땅치 않다고 하더라면서, 이들에 대한 법적인 조치는 아예 체념한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면서 돈벌레답게 이 일로 인한 병원의 모든 손해는 전적으로 내가 배상해야 한다고 손바닥으로 책상을 탁탁 두드리며 엄포를 놓았다. 결코 손해를 보지 않는 원장의 성격에 비추어 보면, 정말 이것도 저것도 안 될 경우, 원장은 나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할지도 몰랐다.
궁리 끝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원무과장을 환자의 주소지로 등재된 섬으로 보내 그 어머니나 다른 보호자를 찾아보라고 했지만, 그것도 매번 허사였다. 마을 사람들도 소년의 어머니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고 했고, 다른 친척도 없다고 했다. 어찌 된 셈인지 그들은 하나같이 쉬쉬하며 피해 버리더라고 했다. 섬에 있는 다른 아이들의 부모를 찾아보았지만, 그들은 아예 얼굴조차 내밀지 않더라고 했다.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고 있었다. 영악한 그 여자가 아이들뿐만 아니라 섬마을 사람들까지 조종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원장의 말대로 법적인 손해배상 책임이 내게 있을 수도 있었다. 법률사무소에 상담까지 했고, 손익계산에 철저한 원장이 아무 근거 없는 소리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단지 원장의 엄포 같은 손해배상 책임을 면하기 위하여 담당의사인 내가 보호자도 없이 목숨이 경각에 달린 입원 환자를 임의로 내보낼 수는 없었다. 최소한의 내 양심이 그것을 허락하지도 않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환자를 보호자 몰래 유기했다는 의료법 위반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었고, 만약 이 과정에서 환자가 사망이라도 한다면 형사상의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었다. 김 과장의 말처럼 그 영악하고 독한 여자가 나중에 나타나 이 일을 빌미로 까탈을 부릴 것이라는 게 훤히 내다보였다.
휘발유 통을 끌어안고 버티던 여자가 무슨 짓을 못 할까.
오히려 그 여자는 꼬투리를 잡기 위해 은연중 내가 그렇게 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이것은 원장의 손해배상 청구보다 더 골치 아픈 일이었다. 원장의 지시처럼 이 일은 외부에 드러나지 않게 조용히 처리해야 했다. 김 과장이 나에게 속임수를 썼던 것처럼 그렇게 해보려 했으나, 이미 의심을 품고 있는 소년을 설득할 수 없을 것이고, 다른 병원에서 나처럼 속아 주지도 않을 것이었다. VIP실을 찾는 환자의 예약이 계속 밀려드는데, 하나 남은 병실을 병원비도 내지 못하는 원수 같은 환자가 딱 차지하고 있으니, 찰거머리 기생충이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터였다. 원장의 말마따나 정말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렇게 한 달여가 지나는 동안 원장과 나의 조바심과는 달리 아이들은 천하태평이었다. 환자에게 주사를 놓고 링거액을 갈아 주려 병실을 드나들면서 어느새 아이들과 친해진 간호사들도 마치 먼 나라의 일인 양 무사태평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아이들은 간호사들을 보고 누나, 언니 하며 스스럼없이 따랐고, 어떤 간호사들은 일부러 과자 등 간식거리를 사다 주면서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기도 했다.
나도 근본적으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우선 대장인 소년의 마음을 열기로 하고, 회진 시간은 물론 틈날 때마다 소년과 대화를 시도했다.
첫째 날.
― 내 분명히 약속하마. 아버지는 어디에도 보내지 않는다. 내가 여기에서 치료해 주마.
― ……?
둘째 날.
― 좀 도와주겠니? 아버지의 몸을 돌려 뉘어야 등과 엉덩이 욕창을 치료할 수 있다.
― ……?
셋째 날, 개학 이틀 전이었다.
― 내일모레면 개학인데, 너희들 학교는 어떡할 거니?
적의를 품은 소년의 눈빛이 불을 뿜었다. 아차, 너무 서둘렀구나. 이제 방학이 끝나고 개학이 되면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위해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까 하고 은근히 기대하고 한 말이었다.
― 우리는 학교에 안 가요.
옆에 있던 여자아이가 매섭게 눈을 뜨고 쏘아붙였다.
― 내가 약속했지? 아버지는 여기서 내가 치료한다고. 아버지는 어디에도 보내지 않는다. 나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다. 어젯밤에는 아버지가 좀 어땠니?
― ……?
소년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제 조금 가능성이 있다.
넷째 날, 개학 하루 전.
― 오늘은 아버지 안색이 좀 좋아진 것 같구나.
― ……?
잠시 적의가 풀린 것 같았다. 마음이 열릴 것인가?
다섯째 날, 개학 날.
혹시 어제 내가 퇴근한 이후 녀석들이 학교에 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기대였다. 출근하자마자 들른 병실에는 여전히 아이들이 오글오글 모여 있었다.